낡고 찬란한 우리의 세계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라디오다.
유희열의 올댓뮤직 라디오 시그널 Fantastic Plastic Machine의 'Philter'를 처음 듣던 순간의 충격은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부시맨 브레드에 허니버터를 처음 맛보던 순간과 비견된다. "세상에 이런 게 있었어? 왜 나만 몰랐어?"하고 억울함에 휩싸였던 것이다.
라디오 키드로 키가 아닌 다크서클을 무럭무럭 키워가던 중고등학생 시절, 매일 내 세계가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유희열 오빠는 시부야계 음악, 일렉트로닉 음악의 세상을 열어주었고, 신해철 오빠는 당당하게 생과 마주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정선희 언니에게 유쾌한 화법을 전수받았고 이소라 언니에게서 사람을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라디오는 도피처가 되기도, 대나무 숲이 되기도 했다. 청소년기부터 직장인이 되고 나서 까지, 속 시끄러운 일이 있으면 늘 라디오를 켰다. 친구나 가족에게는 창피해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라디오 DJ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었다. 여기서는 나도 누구 딸 누구가 아니라, '익명을 요청한 청취자'였으니까. 라디오만 있으면 매일이 새로웠다. 내게 일어난 시시콜콜한 일을 강원도 동해의 생선가게 아주머니가 듣고 함께 울고 웃어주었다.
차에 달린, 가게 한 구석에 놓인 라디오 너머로 같은 주파수를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늘 야릇했다. 즐거운 장난을 칠 때면 우리가 작당모의를 하는 악동들 같았고, 내밀한 연애사를 들을 때면 친한 사람만 남은 3차쯤의 술자리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수개월 듣다 보면 방송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DJ도, PD도, 작가도, 심지어 청취자도 다 동네 언니 오빠 동생처럼 느껴졌다.
라디오는 아주 오래된 방송 매체다. 요즘처럼 TV 프로그램도 2~3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보는 시대엔 더더욱 '올드'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예전엔 1984년생인 내가 라디오 키드의 마지막 세대쯤이 아닐까 걱정도 했었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그 걱정이 기우일 것이라고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양방향'이 중요해진 시대, 사실 라디오는 수십 년 전부터 방송-청취자 양자 간 소통을 해오고 있었다. 80년대에는 이문세 오빠에게 엽서를 보내면 며칠 뒤 방송에서 피드백이 왔다. 그리고 2019년 현재, 신혜성 오빠에게 문자를 보내면 (운이 좋을 경우) 실시간으로 소개가 된다.
라디오는 우체국 시절부터 SNS 인스타그램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소통이라는 화두 아래서 자라온 방송 매체다. 이 빅재미를 세상이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라디오 키드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그러니 라디오를 아끼는 그대여 걱정하지 말자. 사람들이 소통을 하는 한 우리가 사랑하는 이 낡고 찬란한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에 밤과 라디오가 존재하는 한 낭만이 영원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