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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숲풀 Apr 11. 2023

나는 오늘도 실패했다.

반등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오늘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제가 잠시 '자기 검열'을 했었던 이야기를 좀 들려 드릴게요."


3월부터 총 12회기의 강의를 하고 있는데, 5회 차에는 극소수(전체 인원의 1/5)의 수강자분들만 출석하셔서 도란도란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소수 특유의 더 큰 유대감과 집중력이 있기에 그것 또한 좋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동안 내 강의가 별로였는데 겨우 참여하시다가 꽃도 피고 싱숭생숭하니 안 오신 걸까?'

'이번주 강의 주제가 너무 부담이 되셨나?'

'지난번에 한 이 이야기가 불편하셨나?'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그 습관이 또다시 되살아났다.

그러나 다행히도 예전이었으면 자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기혐오로 빠졌겠지만 지금의 나는 여전히 자책은 하지만 이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기에 어떤 문제이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지독히도 생각했다.

그렇게 오늘 강의 시작부터 '자기 검열'을 통해 수강자분들께 더 좋은 강의를 하고자 이 주제를 보완하여 가져왔음을 알렸다.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오히려 지난주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와주셨기에 더 그러하려 했다.


'앞선 여러 가지의 실패로 발전된 오늘을 맞이했으니 적어도 오늘은 좋겠지?'


나의 바람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와르르 무너졌다.  


'한 분당 3분 발표, 이에 대한 의견 나눔 역시 3분으로 제한. 모든 분들이 돌아가면서 다 하신 후에 시간이 남으면 추가로 자유롭게 대화를 더 나누겠습니다!'


첫 번째 발표는 3분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의견 나눔의 첫 발언을 하신 분이 3분을 혼자 다 쓰고 계시는 것이었다.

다른 강의였다면 이미 약속한 바가 있기에 양해를 다시 한번 구하고 끊을 수 있었겠지만, 당시 내 마음은 이러했다.


'지난번에 다른 분의 발언 시간 때문에 저분의 말씀을 끊자 그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으신 축 쳐진 모습을 보이시던데... 조금만 기다려 드릴까?'

'내가 너무 칼같이 끊으면 '치유를 위해 말하고자 왔는데 무서워서 뭐 말하겠나?' 하며 다른 분들도 못 하실 수도 있으니 기다려 보자.'


그렇게 그분은 10분이 넘게 혼자 말씀을 하셨다.

공감하며 간단한 해결책 제시와 함께 정리하려 말을 꺼냈지만 이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오히려 더 이어가셨다.

별 수 없이 끊고 다시 한번 제한된 시간을 공지하고 진행을 이어갔지만 라포가 형성될수록 시간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만큼 치유가 되고 있으실 테니 기쁘면서도 아직 한 번도 발표하지 못하신 분들 때문에 줄어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했다.

결국 약속된 강의 시간에서 20분을 더 써야 했다.

모두가 만족한다면야 무슨 상관일까?

내 눈에는 초조함/못마땅함/답답함 등을 애써 감추시는 분들의 모습이 보이고 말았다.

(짧게나마 그저 이야기를 하기만 해도, 다른 이의 상황을 듣고 공감만 되어도 기뻐하는 분들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오늘도 실패했다.'


생각이 머리를 지배할 때, 때마침 계획했던 휴가 계획도 일방적으로 취소를 당했다.

더불어 오후에는 그간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마음 한편의 어떤 일도 스멀스멀 올라오며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한껏 다운된 그 기분으로 나는 모임에 가야 했다.


불편했다.

예전 같으면 이런 모습을 애써 감추 밝은 척했겠지만, 왠지 그냥 솔직히 이야기하고 싶었다.


"제가 오늘 일을 하나 망치고 와서 기분이 축 처져 있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기운 내볼게요."


잘했다.

잘한 것이었다.

약 1시간 뒤쯤, 이야기의 주제가 마침 오늘 내 기분이 왜 이런지와 연관된 것이었고 답을 구하고자 하는 생각이 아니라, 그냥 털어놓고 기분 전환이나 하자는 마음이 길을 열어 주었다.

그분에게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것!

뜻하지 않게 받은 공감으로 치유되고, 또 해결책까지 받아 버린 셈이었다.




만약, 4회 차까지의 강의에서 실패가 없었다면? 새로운, 개선된 강의가 나왔을까?

만약, 오늘 시간관리로 인해 실패하지 않았다면? 룰이 있음에도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의 비법을 알 수 있었을까?

만약, 예전처럼 실패를 자책으로만 연결해서 개선 없이 하던 강의만 지속했다면?

만약, 예전처럼 감정에 지배당해 약속을 가지 않거나 가서 애써 괜찮은 척만 하고 있었다면?

결국 나는 오늘도 실패했기에 오늘도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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