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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크레딧 - Cocktail #4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토마스 버튼

by Chroma J

#4 사제락

토마스 버튼 from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여든 살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의 인생을 그린 영화이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거꾸로 살아가는 인생에서 엇갈리는 삶의 의미와 사랑,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고찰 등을 감정적으로 풀어낸 영화이다.



벤자민의 시간은 다른 이들과 반대로 흐른다. 그는 노인의 신체로 태어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점점 젊어져 간다. 어린 시절의 그는 늙은 외모 때문에 양로원의 노인들과 친구가 되고, 나이가 들면서 점차 육체가 젊어져 세상 밖으로 나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젊은 여인과의 첫사랑, 배를 타고 떠나는 모험, 그리고 친아버지 토마스 버튼과의 뒤늦은 재회까지, 그의 삶은 특별하면서도 외롭고 아름다운 여정으로 채워진다.


특히 뉴올리언스를 대표하는 칵테일인 사제락(Sazerac) 장면은 벤자민과 그의 아버지가 서로를 알아가는 중요한 순간을 담아내고 있다. 벤자민을 버렸던 친아버지 토마스는 늙어가는 자신과 젊어지는 아들 사이의 복잡한 감정 속에서 그에게 사제락을 권하며 유대감을 쌓고자 노력한다. 이 칵테일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과 뒤늦은 화해의 순간을 상징하는 매개체가 된다.







■ 사제락 레시피

- 라이 위스키 (Rye Whiskey) 약 60ml (2온스)

- 심플 시럽 (Simple Syrup) 또는 각설탕 1개 (약 7.5ml)

- 페이쇼즈 비터스 (Peychaud's Bitters) 2~3대시 (Dash)

- 압생트 (Absinthe) 또는 파스티스(Pastis) 소량 (잔 린스용)

- 레몬 껍질 (Lemon Peel) 1조각 (가니시용)










사제락 두 잔 주게, 브랜디 말고 위스키로


당시 성공한 사업가로 부유한 집안과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한 행복으로 가득 차 있던 토마스 버튼. 하지만 그는 가장 행복해야만 하는 날,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을 겪게 되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으며, 아내의 고통으로 태어난 아들은 80세의 외모를 가진 기이한 모습이었다.


아내를 잃은 슬픔.

80세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들.

혼란스러웠던 토마스는 결국 태어난 아들을 어느 외각에 위치한 양로원에 버리게 된다. 마치 자신의 인생에 태어난 아들이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그는 아들을 잊고 살아가는 삶을 택했다.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삶과는 반대로 그는 매일 사제락 한 잔에 자신의 가슴 깊이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과 후회를 담아보내며 인생을 버텨온 것이었다.





그렇게 무의미한 삶을 버터 오던 토마스는 뉴올리언스의 한 바에서 아들인 벤자민 버튼과 재회하게 된다. 재회하게 된 아들 벤자민은 육체적으로는 중년의 모습으로 젊어지고 있었고, 아버지 토마스 버튼은 노년기에 접어들며 노인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두 사람의 시간이 시각적으로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순간이다. 토마스는 재회한 아들인 벤자민에게 자신이 즐겨 마시던 사제락(Sazerac) 칵테일을 권한다. 술 한잔에 털어버릴 사이는 아니지만, 그들의 극명한 시간의 간극을 줄일 수 있게 된 시작점이 된 것이다.




왜 토마스 버튼은 자신의 아들인 벤자민에게 사제락을 권했을까?


사제락은 차가워야 하지만 얼음 없이 마시는 카칵테일로 강령하면서도 허브향이 감도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칵테일이다. 또한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탄생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칵테일이다. 그렇기에 토마스 버튼은 자신이 즐겨하는, 가장 오래되고 클래식한 사제락을 통해 아들인 벤자민에게 자신의 후회와 인생에 대해 어렴풋이 알려주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칵테일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뉴올리언스라는 도시의 역사와 토마스가 살아온 세월을 상징하는 매개체인 셈이다. 토마스는 벤자민과 시간을 보내면서 사제락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아들인 벤자민에게 자신의 세계,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전해주려 하였다. 시시콜콜한 일상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 어딘가 불편했던 감정들이 조금씩 사그라지는 듯한 울림을 주기도 한다. 토마스는 벤자민과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 죄책감 등에 슬픈 표정으로 그를 대하게 되고, 아들인 벤자민은 아버지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며 아무 말 없이 그가 권한 사제락을 마신다.


벤자민과 토마스는 서로에게서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들을 함께 사제락을 마시며 해소하게 된다. 벤자민은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아버지인 토마스 버튼은 아들을 버렸다는 과오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게 된 것이다. 같은 시간과 인생의 흐름이 주어졌지만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그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삶이 결국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시간을 거꾸로 사는 벤자민과 평범하게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 사이의 상실과 재회, 용서와 화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피할 수 없는 이별이라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사제락 칵테일 한 잔에 함축하여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사제락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두 사람의 복잡한 관계와 감정의 흐름을 상징하는 깊이 있는 매개체 역할이며 그들의 위태롭지만 강인한 연결고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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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비록 벤자민 버튼이라는 비현실적인 인물의 삶을 그리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의 평범한 삶이 가진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벤자민의 삶은 젊음과 늙음, 탄생과 죽음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연속선상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누구나 결국은 '끝'에 다다르는 삶의 유한함을 깨닫지만, 벤자민은 그 과정을 거꾸로 겪음으로써, 모든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지를 깨닫게 한다. 벤자민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오지만 그 속에서 만난 여러 사람과의 사랑과 이별의 아픔, 그리고 관계의 유한성을 보여주면서도, 결국 서로에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선물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일깨운다.


결국 영화는 삶의 종착역은 그들이 모두 어떠한 인생을 살던 그들의 끝은 결국 같음을 이야기한다. 벤자민이 아기가 되어 데이지의 품에서 생을 마감하는 장면은 마치 태어나는 아기가 어머니의 품에서 처음 삶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묘한 울림을 주며 인생에 있어 시간이란 무의미한 듯 유의미한 가치로 흘러가며 마치 잡을 수 없는 시련과 같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겪는 '지치고 힘든' 순간들 또한, 벤자민의 기묘한 시간처럼 우리 삶의 소중한 한 페이지일지도 모른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순간을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깊이 이해하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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