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 정림리 '살구나무' 드로잉. 작업실 '산맥' 콜라주
2016년 6월 16-22일.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86-92일 차.
옥당지와 얇은 화선지에 그린 먹 드로잉을 순지 먹 드로잉과 번짐, 장지의 먹 번짐과 함께 콜라주 하였다. 산처럼 울퉁불퉁 튀어나오는 부조 형태로 만들까 하여 <진동하는 바다> 때와 같이 산 모양의 배접지 조각들로 1차 배접을 끝냈다.
다른 종류의 종이들이 물에 팽창하는 정도가 서로 다르니 시간차를 두고 하는 조각 배접이 적당히 우그러지는 것은 괜찮겠는데 주름이 많이 접힌다. 게다가 작품의 크기가 크니 전체적으로 산모양이 나오는 것은 쉽지 않겠다.
먹 선 드로잉의 힘과 전체 형태의 힘, 그리고 주름의 파격이 서로 비등하여 색채로 거의 뒤덮었던 이전 작품과 달리 선의 힘을 살리려면 자유 형태의 부조는 쉽지 않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림 전체를 하얀 여백 안에 둘까 하다가 오히려 좀 작은 50호 틀에 얹어 비좁아 튀어나오듯 해야겠다는 판단이다.
50호 틀의 크기를 한 번에 덮는 큰 배접지가 없어 두 개를 연결하였는데 연결선 두터운 부분을 정중앙에 두었다. 마치 위아래 땅의 연결을 막으려는 휴전선처럼.
바탕 배접지 위에 얹어 먹 드로잉 콜라주 뒷면으로 연결될 여백 한지의 겹은 큰 산맥 모양으로 하여 바닥에서부터 산맥의 큰 덩어리와 힘이 이미지에 전달되도록 할 것이다.
_2016/06/18 작업노트: 산맥 50호
다른 종류의 종이를 붙이는 것은 그 수축, 팽창의 정도가 달라서 평평하게 하기 쉽지 않다. 배접마저 여러 모양의 다른 종이로 하는 것은 더더구나. 오히려 이 난제로 인해 생기는 종이의 구김을 색채가 파고들어 갈 틈으로 이용하려 한다.
_2016/06/21 작업노트: 산맥 50호
자유형태의 부조로 하려고 산 모양 조각의 겹으로 배접 했던 것을 평평하게 펴서 배접을 마쳤다. 판판하게 하는 과정에서 얇은 화선지는 밀려 찢기기도 하고 대부분의 종이가 이리저리 접혀 눌려지긴 했지만, 어찌 보면 이것이 우리의 땅 아닐까.
상처 위에
새로이
찢기고 구겨진, 상처 입은 땅. 나는 이 눌려 접힌 주름들을 이용하여 아름답고 강렬한 채색을 할 것이다. 우리의 땅이 숱한 상처 위에 새로이 역사를 만들어갔듯이.
_2016/06/22 작업노트: 산맥 50호
4월 9일 대강의 뼈대만 그려놓았던 가로수가 이제는 잎이 무성하다. 부대의 모습이 거의 가려져 나무 자체로는 즐거웠으나 중단하였다. 이제는 나무 하나만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장면에 보다 흥미를 느끼는 듯하다. 농사의 모습 혹은 지나는 사람의 모습이 담길 때 다시 연결해야겠다.
_2016/05/18
4월 어느 때쯤 나무기둥과 굵은 가지 몇을 그려놓고 중단했던 드로잉을, 5월 잎이 가지마다 빼곡할 때 잎 하나하나 자세히 그 위치에 맞게 그려 넣다 다시 중단했었다. 사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그저 나무만 그리고 있는 것이 큰 흥미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달이 지나 미완인 채로 있는 드로잉이 안타까워 나무에 가보니 그새 열매가 열렸다. 잎만 있을 때 무슨 나무일까 궁금했었는데 주홍빛 도는 노란 열매가 살구다. 이제는 잎이 무성하여 가지를 구별해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짙은 연두의 사이사이 분명히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살구를 먹으로만 그리기는 아쉬워 간단히 채색을 하였다. 무성한 잎도 색으로 그 느낌만을 넣었다. 뒤로 훤칠 자라난 옥수수가 있는 밭과 부대 건물을 완성하니 꽤 이야기가 담긴 풍경이 되었다.
_2016/06/21 드로잉노트: 정림리 살구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