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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영 Grace H Jung Mar 03. 2024

화가의 양구일기 35_직시해야 하는 현실

양구 봉화산 '태풍사격장' 드로잉

2016년 6월 28-29일.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98-99일 차. 


<태풍사격장_학조리에서> 종이에 먹, 25.8 x 36.5cm, 2016


봉화산 중턱에 마름모 모양으로 속의 흙이 다 드러나있는 저 현상이 무엇일까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목공방 팀을 통해 이곳이 군부대의 포 사격훈련을 위한 '태풍사격장'임을 알게 되었다. 표적지의 별칭은 '가오리타겟'. 군인들은 오른편의 작은 마름모를 새끼 가오리라 부른다며 목공방의 군인 동생 준환이 알려 주었다. 근래에는 지역 뉴스에도 등장하였다. 사격장의 이전을 원하는 주민들에게 의원이 공약으로 내건 곳이었다. 


<태풍사격장 가오리타겟> 종이에 먹과 수채, 18.5 x 25.6cm, 2016


풍성한 녹색 덩어리의 물결이 강원도 여름산의 자연스러운 모습인데 역으로 파여서 안쪽으로 꺾여 들어가는 곡선을 이루는 평면. 살색의 이질적인 모습. 산허리의 이 묘한 도드라짐은, 이것을 제하고는 참으로 평온한 시골 풍경이기에 더욱 추상성을 강하게 발한다. 


붉은빛 도는
허연 속살



우리의 땅이 갖는 아픔은 역사 속에만 있지 않고, 현재 여전히 지속되며 더해야 하는 아픔이다. 붉은빛 도는 허연 속살을 깎아지른 단면으로 드러내는 이 산이 바로 우리의 땅이 직시해야 하는 현실이다.  


_2016/06/28 드로잉노트봉화산 태풍사격장 가오리타겟, 학조리에서




<태풍사격장_대월 1리에서> 종이에 먹, 25 x 23cm, 2016


사격장 바로 가까이에서 타깃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 들어서 그 길을 찾아갔다. 그런데 한 무리의 군인들이 전투복으로 행군하여 나오고, 길목엔 안내를 하는지 군인들이 있어 긴장감이 넘치는 데다, 군사지역의 경고 표시들이 있어서 진입이 허용되는지 알 길도 없고, 해가 저물어 가니 걱정이 되어 깊이 들어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근처 마을을 찬찬히 탐색하며 내려가다 보니 봉화산과 가오리타겟이 한눈에 보이는 다른 지점이 발견되었다. 연둣빛 푸른 논이 잔잔히 펼쳐져 있고, 그 너머 군부대가 철제 담장과 나무에 둘러싸여 태극기를 중앙에 펄럭이며 있고, 거대한 봉화산에 파인 가오리타겟. 


<태풍사격장_대월 1리에서> 종이에 먹, 18.5 x 25.6cm, 2016


해가 거의 사라지는 때라 산은 더욱 단순한 하나의 짙푸른 덩어리로 타깃은 더욱 선명한 허연 살빛 평면으로 대치되는데, 앞의 태극기만이 하얗게 빛나며 고요 중에 펄럭인다. 


해가 완전히 지며 헬기들이 수차례 지나가고 사격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이 밤 훈련이 있는 날인가 싶다. 미술관에 돌아오고도 헬기의 호버링 소리가 계속되는 것이 대대적인 규모의 훈련인가 보다.


_2016/06/29 드로잉노트봉화산 태풍사격장 가오리타겟대월 1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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