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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디디아 Aug 13. 2020

사랑하는 이 별이 되다.

  토요일 조기축구를 간 남편이 빗길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사별 후 처음 몇 달은 처리해야 할 법적인 문제와 남편의 삶을 정리하는 일로 몸은 야위어 가고 마음은 지쳐갔다.  한동안 무엇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고 마음은 롤러코스터에 올라 탄 것처럼 멀미를 했다. 멍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생각이 많았고, 잡다한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지만 정작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사별 120일쯤 지나 남편이 죽고 첫 명절이 되었다.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되니 남편의 죽음과 부재는 평소보다  크게 느껴졌고 내 마음은 복잡한 감정들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사별 후 증상과 감정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과 글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마음에 다가오는 글을 따라가 보니 사별 카페가 있었다. 그 카페는 2006년 1월에 어느 사별자가 개설했고, 지금은 회원 수 이천 명이 넘는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만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카페였다. 나는 회원가입 후 카페에 올려진 많은 사별자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가입 시 필수로 써야 하는  자기소개서인 10문 10 답부터 사별 후 시간을 따라 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흐르는지 읽어가며 어느 사연에는 공감했고 어느 글엔 펑펑 울었으며 본 적도 없는 누군가의 고백과 도전에는 응원을 보냈다.  사별 후 A4 1장의 문서도 읽고 쓰는 것이 힘들었는데 나는 카페에 올라온 수많은 글을 읽고 또 읽었다. 비슷한 상황, 같은 상실감과 고통, 불안, 외로움, 후회... 그리고 도전. 배우자를 죽음으로 놓쳐버린 사람만이 경험하게 되는 상황과 감정을 공유함으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동병상련의 연대감을 갖게 되고 서로의 글에서 묘한 위로를 얻었다. 나는 말이 되지 못하는 슬픔을 드디어 글로 적기 시작했고 내면의 감정을 글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갔다. 상실의 광야에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광야를 건너는지 나의 감정을 글로 담아냈다.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깊은 상실감을 사별 카페에서 풀어놓을 수 있었다. 1주일에 한편씩 글을 올린 지 몇 달이 지나 사별 3년 차이며 모 대학 국문과 교수라는 분에게 온라인 쪽지가 왔다. 사별자의 진솔한 마음과 경험을 담은 사별 관련 책을 쓰고 싶은데 같이 할 수 있느냐는 제의였다.


 그는 내게 말했다.

“사별 후 도움이 될 만한 사별 관련 책을 찾아보니 대부분 외국 번역본이 많았고, 한국적 문화와 정서 속에서 겪게 되는 사별 후 경험과 감정을 사별자가 직접 기술한 책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러 책을 보았지만 결국 가장 큰 위로가 되고 마음을 움직인 글은 온라인 사별 카페에서 읽은 글이었다. 남녀가 만나 한날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지만 부부가 한날 죽는 경우는 드물고 결국 부부 중 하나는 사별로 인한 상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먼저 사별을 경험한 우리가 사별 후 힘든 마음과 변화되는 삶, 그리고 어떻게 새로운 삶에 적응해 가는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책에 담아낼 수 있다면 우리가 사별 카페에서 얻은 위로를 또 다른 사별자에게 전할 수 있지 않겠나?”


그의 제안이 좋은 의도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세상에 보이기 위해 글을 쓴 게 아니며, 사별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또 세상에 내가 과부가 되었다고 스스로 떠들고 싶지도 않다’며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나의 단호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으니 다시 생각해 보라며 내 생각이 바뀌길 기다렸다. 교수님의 제안을 받고 몇 달 후 나는 다시 다른 사별 친구에게 같은 권유를 받았다. 그리고 두 번째 제안을 한 친구는 내가 이 일을 하기로 결정한다면 본인이 죽지 않는 한 같이 책을 쓰겠노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별의 감정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죽도록 노력해야 마땅한 시기에 되려 사별 후 고통과 슬픔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그 감정들을 날것으로 대면하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사별자의 고통까지 들어가며 글로 옮겨 쓰는 것이 과연 나 자신에게 옳은 일인가?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해보지 않은 일이고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하지만 내 안 깊숙한 곳에서 또 다른 자아가 내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을 슬픔의 시간으로만 끝내지 말자. 한 발로 슬픔을 딛고 다시 한 발로 상실의 고통을 딛고 한발 한발 인생의 계단에 올라서는 너를 보여줘. 지금이 네가 인생에 도전장을 던져야 할 시간이야!”      


  나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고 교수님께 사별 책에 대한 나의 의견을 전달했다. 나는 사별 후 슬픔과 탄식만을 모아놓은 책을 원하지 않았다. 사별 후 상실의 절망 속에서 신음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연대의 위로가 될 수 있으며, 사별 후 경험할 수도 있는 온갖 상황과 감정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에 대해서 우리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모아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가진 더 많은 사별자의 경험과 생각이 필요했다. 나는 교수님께 사별 책을 써갈 수 있는 사람들을 더 찾아야 한다고 말했고 교수님은 그 일을 내게 맡겼다. 연령, 성별, 죽음의 형태, 자녀의 유무, 사별 연차 등을 고려하여 글을 쓸 만한 사람들을 물색했고, 최종 명단에 오른 몇 사람에게 사별 책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메일을 보냈다.     


   2019년 8월 15일 나이, 종교, 직업, 사는 곳과 살아온 배경이 모두 다르지만 배우자를 죽음으로 잃은 6명의 사별자가 대전에 모였고 “사랑하는 이 이 되다.라는 '사별 책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전국에 흩어져 사는 우리는 매주 일요일 10시에 온라인 회의를 했고, 책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토론했다. 우리는  다시 슬픈 사별의 기억을 헤집어 내며 서로의 사별 경험을 나누고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고 무엇이 우리에게 힘이 되었는지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물어 가던 상처와 슬픈 기억을 되짚어가는 것이 지독히 힘들었던 두 사람은 몇 달 후 그만두었고, 결국 넷만 남아서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각자의 일상으로 바쁜 중에 이런 책을 처음 써보는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다양한 사례를 알아보기 위해 사별 카페에 올라온 수많은 글을 읽었고, 여러 사별자를 만나 직접 대화를 나누었으며, 관련된 책을 읽고 자료를 검색했다. 어설픈 실력으로 열심히 글을 썼지만 내가 쓴 글을 읽고 나면 책으로 내기엔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도전이지만 아마추어의 미숙함과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니 부끄럽고 실망스러워 자꾸만 힘이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글을 써 내려가고, 서로에게 질문과 대답을 던져가며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     


  많은 사별 선배들이 사별 후 상실의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는데 보통 3~4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깊은 슬픔에서 회복되도록 도와줄 수는 있는 특별한 방법과 노력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주는 회복을 얻으려면 결국 상실의 시간을 통과하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예외가 될 수 없는 나도 슬픔과 외로움을 등에 업고 675일째 상실의 시간을 걷고 있다. 다만 책을 쓰기로 결심하면서 나는 그 길을 같이 걸어가는 동행을 얻었다. 그들은 웃음 뒤에 숨은 나의 눈물을 이해하며, 뜨거운 국밥을 들이켜는 말없는 나의 허기진 속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난 이 책이 누군가의 시선에는 서점에 꽂힌 허다한 책 중 그렇고 그런 한 권의 책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이 책은 죽음과 상실이라는 슬픔의 강을 건너야 하는 너와 나를 우리로 묶어 한배에 태운 조각배와 같다.      


나는 작은 조각배를 함께 타고 상실을 강을 건너는 우리들의 애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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