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이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헝가리 심리학자 마리아 나지에 의해서 처음 이루어졌다. 아동 사별 연구의 선구자인 나지는 죽음에 대한 아이들의 인지도를 대략 세 단계의 연령층으로 구분하였다. 아이들은 나이와 기질, 발달 정도에 따라 죽음에 대한 이해와 반응이 다르다.
6세 이하 아동의 경우 대부분 아직 죽음에 대한 이해가 불완전하다. “아빠가 죽었다”로 말해주어도 며칠 후 “근데 아빠는 언제 집에 돌아와?”라고 물을 수 있다. 이 시기 아이들은 만화영화의 주인공이 차에 깔려도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죽음이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며, 회복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죽음은 회복될 수 없는 것이며 다시는 고인을 볼 수 없다’라고 분명히 말해주어야 한다. 어쩌면 고인의 죽음과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는 살아있는 부모마저 죽게 되어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부모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분리 불안이 생길 수 있고, 간혹 성장 과정의 퇴행이나 불안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그럴 경우 아이가 불안과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도록 계속 설명해 주어야 한다. 또 더 많은 스킨십을 통해 아이에 대한 충분한 사랑과 애정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초등학교(7세~10세)에 들어가게 되면 죽음에 대한 이해가 훨씬 실제적이다. 죽음은 육신의 종말을 의미하며 죽은 사람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질병과 사고 등 다양한 원인으로 누구든 죽을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간혹 죽음과 사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기도 한다. 또 학령기의 아동은 어른과 같이 슬퍼하기도 하지만 혼자 남은 부모를 슬프고 힘들게 만들까 봐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도 한다. 아동은 일반적으로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응을 보이거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슬픔을 잊기 위해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는 등 자신이 익숙한 놀이와 활동에 몰두하기도 한다. 고인을 애도하지 않는 듯한 아이의 이런 모습이 어른들에게는 죽음에 대한 이해나 감정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동의 슬픔에 대한 반응은 어른과는 달리 더 간헐적이면서 더 장기화될 수도 있다. 이 시기의 아동 중 상당수는 부모가 사망 후 몇 달에서 1년 또는 2년이 지나서야 사별 후 힘든 감정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무심하고 괜찮은 척 보이지만 죽음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품고 있다. 아이들은 간단하고, 정직하며 정확한 답변을 더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이 연령층의 자녀를 두었다면 장기간 주의 깊게 아이를 살펴보고, 진솔하고 따뜻한 대화를 자주 나누길 권한다.
만 10세 이상에서 사춘기가 되면 죽음에 대해 완전한 이해가 가능하고 감정이 세분화되어 죽음과 사별에 대한 반응은 어른들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수 있다. 사랑하는 부모가 죽었을 때, 이 시기의 자녀들은 집중력 부족이나 학업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으며 자주 우울하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불평불만이 많아지고, 의욕 상실 및 다소 무기력해 보일 수 있고, 가족 및 친구들과 잦은 갈등을 빚기도 한다. 대부분은 가족 구성원이나 가까운 친구와 슬픔을 나누고 위로를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상실의 슬픔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 또 부모와의 사별을 경험한 비슷한 또래의 친구나 선배를 만나 교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상실의 슬픔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살아있는 부모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 시기의 자녀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자녀의 말을 주로 들어주는 대화 파트너가 되어주는 것이 좋다.
어떻게 자녀에게 부모의 죽음을 전해야 할까?
대부분 어른들은 부모의 죽음을 어린 자녀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사실대로 말을 해 주어야 하나?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비밀에 부쳐야 하나? 과연 어린아이가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있을까? 그로 인한 충격과 슬픔을 견딜 수 있을까? 등 여러 가지 걱정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죽음에 대한 이해가 모자란 어린 자녀들에게 죽음을 전해야 한다면 슬픈 소식을 직접적으로 단순하게 전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과 함께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기에 늦지 않도록 되도록 빨리 전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마다 성장과 이해력의 차이가 있으니 구체적인 나이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자녀가 죽음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나이라고 판단된다면 되도록 부모의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좋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자살이나 타살이라 할지라도 죽음의 원인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 자살방지재단(AFSP)은 ‘고통스러운 나쁜 소식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은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나. 자녀에게 진실을 가리는 것은 서로의 신뢰를 해칠 수 있으며, 대대로 지속될 수 있는 수치심과 비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당신은 아이들의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하고, 그들을 안심시키는 언행과 적절한 위로를 통해 아이들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다.’ 고 조언한다. 만약 10세의 아동에게 부모의 자살이나 타살에 대해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대부분의 자녀는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달라진 상황에 민감해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작은 속삭임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당신이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말해주지 않은 것들을 자녀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우연히 알게 되거나, 경솔한 사람들의 말이 섞인 소문을 듣고 사실과 다르게 오해하게 된다면 그들이 어떤 마음을 품게 되고 어떤 행동을 취할지 생각해보라. 우리가 정직하지 않다면 그들 또한 우리에게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정직하게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모의 죽음을 들은 아이들은 침묵할 수도 있고 많은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우리는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 최선을 다해 정직하고 따뜻하게 대답해 줘야 한다. 만약 남아 있는 엄마나 아빠도 죽는 거냐고 묻는다면 영원히 살 거라는 거짓 약속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단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라고 설명해 줘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아이들의 삶이 조금 달라질 순 있지만 남은 가족들이 그들을 지켜줄 것이니 크게 흔들리진 않을 것이며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라고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 여전히 아이를 사랑하는 다른 가족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이 위기를 가족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반복해서 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부모를 잃게 된 자녀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고인에 대해 후회와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고인의 죽음이 자녀의 잘못이 아니며, 자녀들이 고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는지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것만 깨달아도 자녀는 고인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을 내려놓고, 상실의 슬픔을 극복하는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1살의 예은 양의 어머니는 4년간 암으로 투병하셨다. 어머니가 사망하신 뒤 예은 양은 최선을 다해 엄마를 돌봐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자책하며 우울증을 앓았다. 상담치료를 받으면서 사별 후 처음으로 아버지와 예은 양은 서로의 속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아버지는 예은 양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엄마가 죽은 후 나도 너와 같은 마음으로 괴로웠단다. 하지만 예은아, 너는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했고 네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아빠가 알고 있어. 엄마의 죽음은 네 탓이 아니며 너는 엄마의 가장 큰 기쁨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