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을, 교통사고로 남편과 갑작스런 사별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큰 비를 동반한 태풍에 사고를 당했지만, 내 삶은 갑작스런 화마에 불타버린 듯 했다. 남편과 관련된 모든 일상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감각도 뇌도 마음도 화상을 입은 것처럼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책을 읽어도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는 난독증이 생겼고, 드라마를 보아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며 평범한 일상과 사소한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내가 아닌 나로 버티며 살아가는 시간이었다.
감사하게도 그 시절 나를 위로하며 삶이 회복될 수 있도록 마음 써주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00선배다. 어느 월요일 저녁 그녀가 식재료를 사들고 일터로 찾아왔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에 가서 밥해먹자!”
우리는 집으로 가서 밥을 하고 순두부찌개를 끓여서 늦은 저녁밥을 함께 먹었다. 장례 후 아이들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나는 집에 혼자 남아 맛도 모르겠는 음식을 씹으며 모래알 같은 밥을 꾸역꾸역 삼켜야 했다. 마음이 시린 시절 그날의 온기 가득한 밥상은 허기진 마음을 채우는 위로였다. 그녀는 그렇게 몇 번의 월요일 저녁식사를 나와 같이 먹었다. 선배는 하는 일이 많아 시간을 쪼개가며 분주히 살고 있는 것을 잘 알기에 그녀의 행동이 얼마나 특별한 마음씀인지 잘 알았고 너무 고마웠다. 신은 애통하는 자에게 위로의 복을 주신다. 어느 저녁 우리는 밥을 먹으며 춤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고, 그녀가 내게 춤을 배우자고 제의했다.
“우리 춤을 배워보자! 우리가 언제 예쁘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어보겠어? 우리 이거 배워서 예쁜 옷 입고 춤 춰보자!”
사실 우리는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걸 매우 어색해 하는 몸치들이다. 그런 우리가 춤을 춘다고……. 헐! 춤이 배운다고 될까? 싶었지만, 마음 한편으론 도전해 보고 싶었다. 사실 혼자가 되고 나니 삶이 두려워졌다. 반평생을 살아도 해본 적 없어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은데 이젠 웬만한 일을 내가 결정하고 처리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두렵고 부담스러워서 기가 죽었다. 기댈 수 있는 남편도 없는데, 기죽어 초라해진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내가 못하는 것, 해본 적 없는 것 중 무엇이든 하나는 도전해 보고 싶었다. 사별 2달째, 나는 춤을 배워보기로 결심했다.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모든 동작을 춤이라 할 수 있겠고, 세상에는 많은 춤이 존재한다. 그중 내가 배우는 춤은 댄스스포츠다. 댄스스포츠는 한 쌍의 남녀가 다양한 종류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신체활동으로 스포츠적 특성에 무용, 음악, 연극적 요소가 함께 접목된 종합스포츠예술 중 하나다. 국제 경기로 발전하면서 세계적인 공통된 기술을 도입하고 음악과 춤의 예술적 가치를 덧입혀 오늘날의 댄스스포츠로 발전했다. 댄스스포츠는 크게 모던볼륨댄스와 라틴댄스로 나눈다.
모던볼륨댄스는 왈츠, 비엔나왈츠, 탱고, 퀵스텝, 폭스트롯의 5종목으로 세분화 되는데 보통 왈츠와 탱고를 많이 배운다. 모던댄스 5종은 다양한 기원과 동작, 템포, 미학(美學)을 갖고 있다. 유럽 각국의 민속 무용이 모여 Court Dance로 발전된 곳은 영국왕실무도였다. 시민혁명 후 특권 귀족층이 몰락하면서 Court dance는 서민사회로 확산되었고 대중적인 모던댄스로 발전했다.
모던댄스의 3대 핵심은 1) 좋은 자세로 2) 음악을 잘 표현하면서 3) 멋지게 추는 것이다. ‘춤을 추는 사람은 서 있는 자세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자세는 춤의 매우 중요한 요소다. 모든 동작은 커플이 실행하는데, 남성은 자신감과 지배력으로 춤을 리드하고 여성은 유연하고 섬세함으로 따라간다. 상대는 그릇이고 나는 그릇에 담기는 물이라고 생각하며, 그릇의 모양이 달라져도 자연스럽게 담기는 물처럼 상대에게 맞추어 서로를 배려할 때 멋진 모던댄스를 출 수 있다.
라틴댄스는 노예 신분으로 자유를 갈망하며 추던 춤, 고통과 슬픔을 잊고 위해 향수에 젖어 만들어 낸 행복한 몸짓, 이런 마음이 응축되어 담긴 음악을 따라 서민과 노예들이 추던 춤에서 유래되어 발전했다. 그래서 라틴댄스는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내면의 감정과 삶의 애환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몸으로 표현한 춤이다.
라딘탠스는 룸바, 차차, 삼바, 파소도블레, 자이브 5종목으로 국제 표준화되었다. 룸바는 사랑의 갈등을 표현한 춤으로 느린 동작의 매혹적인 춤사위를 표현하는 춤이다. 차차는 룸바에서 변형된 경쾌한 춤으로 익살스럽고 요염한 표현이 이 춤의 묘미다. 자이브는 폭넓은 리듬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매우 빠르고 유쾌한 춤이다. 삼바는 허리와 어깨운동이 독특한 율동을 지닌 생동감 넘치는 춤으로 '배꼽'이라는 뜻을 지녔다. 파소 도블레는 스페인의 투우가 연상되는 춤으로 남성이 투우사이고 여성은 투우의 역할을 담당하는 박력 있는 춤이다. 스포츠댄스의 변천사를 보면 세계 역사가 숨어 있다. 모던댄스는 유럽의 역사를, 라틴댄스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품고 있다. 또한 라틴댄스는 유럽인과 흑인, 원주민의 이질적인 문화가 섞여 새로운 문화로 거듭나는 문화적 융합과 재창조를 보여준다.
춤을 시작하던 날 어느 시집에서 읽은 짧은 글이 생각났다.
“춤 춰라,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지 않는 것처럼. 살아라, 지상이 천국인 것처럼 ”
시가 마음에 박혔다. 사별 후 나는 몸과 마음의 힘이 빠지며 무력해졌다. 감각과 기억이 퇴행했고, 마음은 움츠려 들었다. 나는 무게 중심을 잃고 회전력을 상실한 팽이처럼 휘청거렸다. 그런 내가 서럽고 어지러운 마음을 숨긴 채 댄스화를 신었다. 그리고 기죽지 않는 것처럼,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낯선 박자를 세며 엉성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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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 동안 나는 왈츠와 탱고, 라틴댄스 5종목까지 총 7종목의 춤을 배우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교류가 줄어든 동안 마스크를 착용한 채 춤을 배웠다. 학원도 수강생이 줄어 간신히 유지되었지만, 소수정예로 수업을 받다보니 밀착 지도를 받을 수 있어서 초보인 나에겐 좋은 시절이었다. 스포츠댄스는 남녀가 한 쌍으로 추는 춤이다. 하지만 춤을 배울 때 파트너의 손을 잡지 않고 혼자서 춤을 추는 연습을 계속 반복한다. 선생님은 춤을 가르치면서 이런 말을 자주 했다.
-혼자 춤을 출 수 없다면, 누군가와 같이 출 수 없습니다.
-자신의 동작을 이해하고 혼자 춤출 수 있는 사람이 파트너의 손을 잡았을 때 끌려 다니지 않고 섬세하게 멋진 춤을 출 수 있어요.
- 좋은 자세를 유지해야 파트너와 신호와 텐션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바른 자세를 지키세요!
- 스포츠 댄스는 상대방에 의지해서 추는 춤이 아닙니다. 그런 춤은 상대를 빨리 지치게 만들어서 즐겁게 춤출 수 없습니다.
- 서로의 회전력으로 서로를 회전시키며 춤을 춰야 합니다.
- 무게중심을 바르게 두어야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춤을 출 수 있어요.
-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춤이 달라집니다.
- 움츠리지 말고 가슴을 쫙 펴세요! 당신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세요.
춤을 배워보니 춤의 기본기와 인생의 기본기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말에서 ‘춤’을 ‘삶’으로 바꿔 적용해보면 틀린 말이 없었다. 혼자서 춤출 수 있는 사람이 춤을 잘 추듯, 혼자서도 자기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 타인과 함께 하는 삶도 잘 살 수 있다. 춤이나 인생이나 둘 다 바라볼 곳과 무게중심을 제대로 알아야 흔들리지 않고 진행 할 수 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것처럼 가슴을 쫙 펴고 당당하고 유연하게 남은 인생을 춤추듯 산다면 인생이 근사할 것 같았다.
나는 춤을 출 때 춤곡을 따라 몸이 흘러가는 느낌이 좋다.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기만 할 때랑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출 때의 느낌은 매우 다르다. 춤곡을 따라 춤을 출 때 비로소 그 음악을 온전히 느끼며 곡의 감정이 내면으로 스며온다. 그래서 마음이 슬퍼 울고 싶을 때, 몰래 우는 대신 슬픈 곡을 따라 왈츠를 추면 위로가 된다. 또 우울하고 지루한 감정을 떨쳐버리고 싶을 때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자이브나 차차를 추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나이 오십이 넘어, 춤을 배우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춤을 추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억압된 삶을 살면서 라틴댄스를 추던 원주민과 노예들, 관광버스의 좁은 통로에서도 흥겁게 춤을 추던 80년대의 어머니들, 딱딱한 광장 바닥을 무대삼아 춤추는 청춘들... 누군가에게 춤은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는 설렘이고, 두려움에 대한 도전이다. 또 기분을 바꾸는 지혜이며, 세상을 느끼고 표현하는 영혼의 감추어진 언어다. 그래서 우리는 온갖 이유로 춤을 추고, 세상은 춤추는 이들로 가득하다.
만약 귓가에 음악이 들려온다면, 눈을 감고 그대 영혼의 감추어진 언어를 꺼내보라
춤추라 ,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