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윈난 Prologue
지난 인도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자주 해주자!
내가 좋아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나 자신을 위해서 충분히 해 주면서 살자는 것.
언제나 그렇게 지내온 나였지만, 최근의 나는 한국에 조금 더 정을 붙이려고 노력을 하던 차였고 언제고 다시 이 곳에 돌아 올 때마다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나의 삶을 조금씩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본성을 따라서 스스로 살아 갈 수 있도록 길을 내어 주고 마음껏 그 길을 따라 행복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 내 몫이자 역할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다.
머리 속에 있는 이상들을, 꿈들을 그대로 두지 말고, 실행으로 옮길 것!
이번 한 해는 그런 한 해가 될 것 같다.
가장 나답게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위해 최선을 다 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마음껏 누려볼 작정이다.
그렇게 조금 더 내가 원하는 시간들을 보내기로 한 올해, 마음 속 머뭇거림과 죄책감을 덜어 내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서 원하는 시간들을 보내 보려고 한다. 더 많이, 더 충실하게.'
그런데 왜 나는 중국 윈난을 떠올렸을까?
오래 전 2년 가까웠던 여행의 첫 시작점이 중국이었다. 중국 쓰촨성의 청두! 그저 티베트만 보고 도착한 곳이었다. 그 곳에서 티베트로 들어갈 수 있다기에! 물론 현지인들에 묻어서 육로를 따라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갖은 방법을 알아 보다가 결국 칭짱열차를 타고 들어 가는 보편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가장 추운 1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혹독한 동티베트 고원의 추위를 온 몸으로 느끼며 험한 길을 끝없이 달리던 때가 있었다. 그야말로 눈바람이 휘몰아치고 칼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곧 폐차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로컬 버스를 타고 티베트 고원의 3, 4000m 굽이 언덕들을 반 나절에만 대 여섯 차례가 넘게 오르락 내리락하던, 더없이 시리게 추웠던 그 날들. 버스 안에 외국인은 단 두 명! 모두 티베트인들이었다. 현지인들도 멀미로 구토를 하던 버스 안. 그 춥디 추운 날에 오래된 차의 창문은 닫히지 못하고 반쯤 열린 채로 그렇게 우리는 눈을 뚫고 달렸었다. 마침내 15시간 넘게 걸린 길 끝에 해발고도 4000m가 넘는 리탕에 도착했을 때 모두 안도의 박수를 쳤던 그 길들. 그 겨울, 청두-캉딩-리탕-따오청-야딩-더친-중디엔-리장으로 이어졌던 쓰촨성-윈난성의 차마고도 길은 내게 곧 모험의 길이었고 탐험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깊게 어우러져 들어갔던 중국의 차마고도는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 힘든 놀라운 비경과 낯설기에 더욱 흥미진진한 깊은 문화적 면모를 보여 주었다. 나는 쓰촨성의 험하지만 날 것 그대로의 자연과 윈난성의 평안하고 안온한 매력에 빠져 이 곳들에 계속해서 머물고 싶은 마음에 빠져 버렸었다. 무엇보다 출발선상에 서 있는 여행자에게 길 위의 설렘을 새겨 주었던 이 곳은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감을 배가시켜주는 최적의 여행지였다. 어쩌면 이 곳이 나의 짧았을 여행을 2년 가까이 쭉쭉 늘린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을 지도 모른다. :)
그 윈난을 늘 마음 속에 그렸다.
윈난은 내게 늘 ‘시작’이었고 ‘처음’이었다.
설레는 배낭여행자의 마음을 오롯이 느끼게 해주었던 ‘최초’의 여행지였다.
늘 윈난을 떠올릴 때면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처럼 애틋함과 따스함의 두 가지 감정이 함께 차올랐다.
가보지 못했던 도시 ‘따리’ 역시 궁금했다.
리장에서 수많은 여행자 친구들이 꼭 가보라고 했던 곳. 티베트 일정 때문에 리장에서 돌아설 수밖에 없어 결국 아쉬움을 남겼던 곳이다.
거대한 면적을 차지하는 얼하이 호수(바다와 같이 거대해서 ‘바다’라는 의미를 쓰는 윈난성의 호수)와 서쪽의 창산(Chang San) 사이에 위치해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1900m 고도에 위치한 풍요와 여유의 고장을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
그 때로부터 무려 8년이 지나서 개발의 흔적이 짙어졌겠지만 지금이라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나의 감각으로 느껴 보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번 결정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그 수많은 선택지들 중에서 이 곳을 떠올렸던 것을.
"구름의 남쪽" 이라는 윈난성. 운남성.
말할 필요조차 없이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는 곳.
아마도 높디 높은 히말라야 자락의 티베트 고원에 걸려서 한참을 쉬고 있는 구름 남쪽에 위치한 곳이라는 의미일 테다.
쓰촨성 히말라야 자락의 차마고도와 맞닿으면서 그 이름답게 더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곳이다. 남쪽으로는 베트남, 라오스, 서쪽으로는 미얀마와 접해 있는 곳이자 태국 치앙마이와도 비행기로 '겨우' 1시간 반 떨어진 곳이다. 26개의 소수민족들이 오랜 시간 동안 터전으로 삼아 평화롭게 지내온 지역으로 분명 한족의 중국과는 또다른 이국의 매력이 있는 곳을 나는 더 깊게 보고 알고 싶었다.
중국 윈난은 문화적으로도 더없이 풍요로운 곳이다.
중국 자체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도 있지만, 26개 소수민족들의 삶의 터전으로서 그들의 고유한 역사와 어우러져 독특한 시간의 겹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티베트가 토번국이라는 독립국으로 번성했던 때가 있었듯이, 윈난 따리를 중심으로 한 대리국은 한 때 더없이 풍성하고 강성했던 독립국이었다.
백족, 이족, 나시족, 회족 등 다양한 삶의 형태를 지닌 소수민족들의 삶의 면면을 엿볼 수 있는 문화적 풍성함은 윈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매력이다. 이들은 각각 다양한 종교적 특징과 각 민족만의 문화적 특수성을 온전히 간직한 채 자신들의 생활을 통해 그 시간의 겹을 오롯이 보여 준다.
나를 설레게 했던 것은 이 곳의 다층적이고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되어 온 풍요로운 문화적 면면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윈난의 다양한 음식과 요리들도!
사실 이번 시간에 기대한 것은 많지 않았다.
그저 이 곳의 자연적, 문화적인 풍요로움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느끼면서 나를 이 곳에 스며들게 하고 싶었다.
급하고 싶지 않았고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느릿느릿, 천천히 이 곳의 느낌과 분위기를 스스로 체득해가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기에 내가 좋아하는 책, 그 책을 읽기 적당한 조용한 숙소, 그리고 가끔씩 필요할 맛있는 커피가 있는 까페! 딱 그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하고 떠난 시간이었다.
오랜 여행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다. 친구는 여행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절대 이해 못할 말이라며,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걸 굳이 그 먼 외국에서 하겠다며 가는 걸 누가 이해하겠느냐며 장난스레 웃는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나는 그 평범한 일상을 다른 곳에서 갖고 싶어서 굳이 한국을 떠나 물리적으로 낯선 곳으로 왔다.
나와 연관된 끈들을 놓아 두고 완벽히 한국에서의 나와 차단된 곳에서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원했다. 내가 있는 공간에서 똑같이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없음은 나의 부족함이다. 하지만 새로운 맥락에 놓인 나는 새로운 환경에 맞게끔 또다른 나로서, 혹은 가장 나다운 나로서 온전히 시간을 보내 간다. 나는 그 시간이 필요했다. 늘 그랬듯이.
가장 나다운 여행을 하고 싶어서 가이드북 한 권 제대로 챙기지 않고 그냥 떠나왔다.
지난 윈난 여행의 기억으로부터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절절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읽을 수 없는 한자만이 가득한 곳에서 교통수단을 타는 것 하나 쉽지 않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하는 거지 뭐, 그런 생각만으로 왔다.
그렇게 오랜만에 완전히 낯선 환경에서 오롯이 해나가야 하는 상황에 스스로를 두어 보고 싶었다.
익숙하고 편한 것에서 벗어 나서, 부러 나를 불편하게 두는 시간!
오감이 깨어 나고 주위를 한껏 둘러볼 수밖에 없기에 내가 하는 경험이 나의 몸과 마음에 정확히 아로 새겨질 수밖에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불편함을 부러 찾아 가는 과정과 시간은 내가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기에.
무엇보다도 남의 여행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도 없었고, 숙소의 느린 와이파이에만 겨우 의지했다.
좌충우돌의 당황스러운 상황을 당연히 끝없이 마주할 테지만, 그것 또한 여행을 한층 흥미롭게 변화시키는 과정 아니었었나? 늘 그래 왔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늘 감사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럴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설레는 걸음을 내딛었다.
내가 사랑하는 음식과 요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비록 대단한 음식이 아니라 해도 어떤가?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직접 찾고 발견해서 나의 오감으로 즐기고 나만의 경험을 내 안에 차곡차곡 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곳에서 말 한 마디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 아니, 입을 떠듬떠듬하기 시작하는 아가와 같은 수준이랄까. 내가 원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손짓 발짓을 다 동원해야 표현할 수 있었다. 그 답답함과 막막함이 때때로 나는 왜 이리 낯설면서도 재미있었던 걸까?
그동안 너무나 편하고 쉽게만 한 여행이었다.
쉬운 길은 때로는 새로운 것을 보는 눈을 가로 막을 수 있다.
늘 같은 사고에만 의지해서 세상을 보게끔 할 수도 있다.
조금 더 눈을 열고 싶었고, 조금 더 마음을 활짝 열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나 다행이고 감사했다.
이 여행을 마무리지으면서.
익숙한 여행을 할 때에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흥미진진한 모험의 시간과 예상 밖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조용함과 고요함을 기대했던 나의 여행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시끌시끌한 시간이 되어 갔다. 하지만 혼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산책을 했을 그 시간들보다 나의 마음과 시간은 더없이 충만하게 채워져 갔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결국, 내가 원했던 모든 것들이 이 곳에 있었다.
그리고 미처 몰랐지만 내게 필요했었던 그 이상의 것들을 나만의 속도로 담뿍 채워 넣어 갔다.
이들의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 온 최고의 맛을 지닌 흥미로운 음식들
여유롭게 책을 읽어 나가기에 적당한 조용한 숙소
맛있는 커피가 있는 소소하고 편안한 까페
현지인들의 생활을 바로 곁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
마음을 안온하게 해주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자연
하지만 내가 지금 이 곳을 다시금 그리게 된 이유는 의외로, 사람이다.
내게 가장 중요한 모든 것들을 넘어 서는 윈난의 사람들과 그 곳에서 만난 중국 친구들!
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다.
이렇게 여행은 여전히 내게 새로움을 안겨주는 시간이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다.
모든 것은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그 시간을 자연스레 따라가다 보면, 도리어 더욱 행복한 시간으로 여백의 시간들이 채워진다는 것.
여전히 알다가도 모를 여행의 매력이다.
내게 중국은 마치 펼치지 않은 책과 같았다.
아니, 차마 펼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책.
그 서문을 살짝 맛보고서 엄청난 흥미를 지녔었지만, 한 번 발을 들이면 그 거대한 책의 내용에 압도될 것 같은 느낌에 제대로 펼쳐서 살펴 보기를 미루고 또 미루고 있는 것과 같았다.
이번에 드디어 그 책을 펼쳐 들었고, 나는 예상보다 훨씬 더 이 곳에 끌려 버렸다.
거대한 세상을 탐험해 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자의에 의한 관심과 모험심으로 말이다.
앞으로 이 책을 꽤 자주 그리고 깊게, 계속해서 읽어 내려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