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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Apr 03. 2019

중국 윈난의 어느 마을에서 쓰는 글

내가 사랑한 차마고도의 작은 마을

별은 별답고 비는 비다운 곳


다른 말들 보다 그냥 이 곳에서의 시간이 자연스레 참 좋다.

별은 별답고 비는 비다운 곳.

날씨가 맑으면 맑아서 좋고, 흐리면 흐려서 좋은 곳.

그저 자연스러워서 이 바람과 공기의 흐름에 나를 맡기면 나를 가장 올바른 곳으로 데리고 갈 것만 같은 느낌. 거스름 없이 편안하고 안온한 곳.

그 시작은 이 곳의 아름다운 풍광과 올바른 기운, 그리고 그것을 담뿍 받은 좋고 선량한 사람들.



어쩌면 하루하루가 똑같은 나날들일 테지만, 매일이 조금씩 똑같은 듯 달라서 좋고, 똑같아도 좋다. 이렇게 있다 보면 그냥 1년을 금방 보내 버릴 것만 같은 곳이다. 아니 그렇게 사계절을, 그리고 매 계절의 아침, 점심, 저녁의 모든 시간들을 느끼고 알고 싶은 곳이다.


편안함과 설렘 그 사이 어디쯤

지금 들려오는 이 새소리, 내 눈 앞에 보이는 적당히 높고 적당히 낮은 산, 숙소 테라스의 더없이 기본적이지만 편안한 의자, 옆의 녹차 한 잔, 오늘따라 유난히 구름 뒤로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맑은 햇살, 조용하고 더 조용한 지금의 숙소, 지금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이 맑은 공기.

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이것이면 충분히 만족할 것 같은데.


어느 늦디 늦은 저녁, 창문 너머 하늘이 새까매진 어느 밤에 제가 있을 자리에서 더없이 선명하고 오롯하게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 보다가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별을 따라 가면 어디로 가게 될까? 저 별 하나를 의지해서 이 곳에서 더 멀리 멀리 가본다면 그 곳은 어디로 이어지게 될까? 왠지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저 별 하나만 의지해서 간다고 해도. 왠지 나를 전에 가본 적 있는 익숙한 곳들로 데려다 주고, 나는 그 곳에서 익숙함을 느낄 것만 같다. 저 별을 한없이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밤이었다.


조용하고 고요한, 순수함이 깃든 마을


비현실적이다. 이렇게 완벽하게 평온하고 충만할 수 있는 곳이 있을 수 있나 싶어서.

무엇 하나 힘을 주어 애를 쓸 필요도 없고, 주어진 것을 충실히 누리기에도 넘치는 곳.

애초부터 ‘애를 쓴다’는 말의 의미를 모를 것만 같은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이 곳의 자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아니 아무 것도 할 필요조차 없는 이 곳.



머문 2주가 마치 하루같이 꿈결같이 지나가 버렸다.

이 곳의 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장미가 많이 피어 난다는 그 4월은!

그렇다면 신록이 무성해지고 저 산과 들판이 진한 초록으로 물드는 여름은 또 얼마나 신선하고 청량한 느낌으로 가득할까.

본디 가장 아름답고 세상의 모든 색을 품고 있을 가을은 또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그 시기엔 육안으로 저 하늘의 은하수를 볼 수 있다는데!

겨울은 겨울 나름의 매력이 있지 않을까.

조용하고 고요한, 순수함이 깃든 마을.


이 곳을 닮은 좋은 사람들

떠나기 전에 왠지 꼭 그 곳을 들러 보고 싶었다. 정말 맛있는 커피를 먹고 싶었던 것은 떠나기 전날, 그러니까 어제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흔치 않게 하루 내내 비가 내리던 날,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다소 묵직해진 시간 속에서 비를 바라보며 서늘함을 만끽하며 뜨끈한 커피의 목넘김을 느끼고 싶었다. 거기에다 좋은 음악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아, 조금은 달달하면서 묵직한 초콜릿 케이크까지 어우러진다면 거의 완벽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느린 음악을 들으며, 계속해서 책을 읽어 내려가는 아침과 오후 사이의 시간이라면 오늘 하루를 보내기에 아주 완벽한 방법일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매일 열려 있던 그 까페는 어제만큼은 문을 꾹 닫은 채 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잠시 누군가가 문을 열려는 기미가 보이길래 잽싸게 가서 물어 보니, 오늘 마을에 전기가 나갔단다. 그랬구나, 그래서 동네에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와이파이는 그다지도 느렸던 거구나. 아쉽지만 나의 마지막 하루에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그렇게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시장을 둘러 보고 나서, 까페의 오픈 시간인 10시에 맞춰 그 곳으로 향했지만 부러 그 앞을 지나치며 20여 분의 여유를 두고 다시 찾아 갔다. 아침부터 주인을 허겁지겁 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아침을 열고 준비하는 그 잠깐의 시간은 아주 작지만 달콤하고 소중한 것이니까.

그렇게 그 곳에 드디어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주인에게 건넨 질문.

“저 앞에 보이는 산이 히말라야의 일부인가요?”

그러자 그는 중국의 지리책부터 윈난 스촨의 아름다운 산의 풍경을 담은 책들까지 우루루 내게 가져다 준다.

이런 꼼꼼하면서도 원론적인 사람이라니. 무언가 나와 닮은 듯한 모습에 왠지 조금 더 가까워짐을 느낀다.

그렇게 주인이 찬찬히 준비해 준 커피는 중국에서 마신 커피 중 가장 맛난 것이었다.

그렇게 애써 왔다 갔다 하며 기다린 보람을 충분히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또 한 사람.

“한국 사람이에요?” 라고 갑자기 내게 물어 온 사람.

조선족으로 이 곳에 3년 전에 이주한 사람이자 까페 주인의 친구.

그렇게 여행 중 처음으로 누군가와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며 그 동안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서 계속 얘기해 나간다.

참 착한 사람 같다.

배려심 있고 상대를 존중해주는 사람 같아 보여 좋았다.

아침 햇살을 바라 보며 그들과 오래도록 대화를 나누다가 버스 막차 시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아쉽게 자리를 털며 일어 섰다.


발길을 돌려 마을 시장으로 재빠르게 향했다.

그들이 까페 안에서 쉽게 먹을 수 있을 과일을 이것 저것 골라서 한 봉지를 담아 다시 돌아와 건넸다.

얼른 돌아서서 나가려니, 주인이 잠시만 기다려 보란다.

좋은 음악을 들으며 벽에 붙은 여행 사진과 지도를 한참 들여다 보고 있으니, 그가 다 되었다며 예쁘게 담긴 일회용 드립백 커피를 원두 별로 여러 개를 건네준다.

나는 너무 놀라 안 된다고, 눈만 껌뻑하고 있으니 꼭 가져 가란다.

그렇게 나는 그의 따스한 마음을 중국을 여행하는 동안 곳곳에서 계속해서 느낄 수 있었다.

조용하지만 참 따스한 사람들. 꼭 이 마을과 닮았다.

다음에 이 곳에 돌아 오면 잠시 고향에 갔다던 그의 부인, 친구와 함께 저 앞의 산 정상까지 함께 올라가 보고 싶다. 산을 좋아해 쉬는 날이면 늘 산을 탄다는 그들과 함께.


구름 남쪽에서 꾸는 백일몽

‘잘 사는 것이 무엇일까?’

‘행복한 것이 무엇일까?’

이제 그런 질문들조차 그렇게 큰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즐겁고 충만하게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자신이 보내고 싶은 시간들을 채우면서 나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별을 따라 계속해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처럼, 눈 앞에 보이는 저 구름을 따라서 한없이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구름의 남쪽이라는 이 곳, 구름이 저 앞의 높은 산들을 가벼이 넘어 가서 다른 땅을 내려다 보듯이, 나도 저 구름을 따라서 살짝 다른 땅으로 조금씩 조금씩 가보면 어디까지 이를까? 저 구름이 티베트까지 이르고 네팔까지 이르러서 그 다음엔 내가 가던 인도까지 이를까? 이 크고 큰 세상을 끝없이 따라가 보고 탐험해 보고 알고 싶다.


늘 봄바람이 부는 것 같은 곳.

안온한 미풍이 뺨을 스치는 것 같고, 마음은 더없이 평안해지며 머리 또한 맑아지는 것 같은 곳.

이 완벽한 곳을 떠날 이유가 있을까? 모든 것이 완벽한데,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더 이상 바래서도 안 될 정도로 충만하고 충실한 이 곳을 떠나 또 다른 것을 보기 위해 찾기 위해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열 번의 고민을 거듭하다가 나는 결국 조금 더 히말라야 자락의 근처로 가보자며 기어이 그 아름다운 곳을 뒤로 하고 떠나기로 한다.


안온한 집과 같은 곳.

이 곳에 머무는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이 곳에 멋쩍은 인사를 건네 보려 하지만, 그저 담담히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내일 또 이 길을 걷고 있을 것처럼 그렇게 무심히, 담백히 돌아서 본다.

무엇보다 한 가지. 그 시간들 동안 아름다운 자연의 노래와 소리를 들려 줘서, 그로 인해 나의 마음이 너무나 평안할 수 있었다고 그 고마움 정도는 건네었다.

언제고 무심히 다시 돌아와 집처럼 머물고 있을 것 같은 곳이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보지 못했다며 핑계 삼아 곧 돌아 오거나, 사계절을 모두 보아야 겠다며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르는 곳.

흥분에 넘칠 듯한 감흥과 아름다움보다도, 무심한 평안함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건네준 곳이라 더 소중하다. 마치, 덤덤히 오랫동안 늘 곁에 있는 친구인 지음과 같은 느낌이랄까.


이렇게 부드러운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지만, 나의 무거운 배낭이 무색해져 버린 시간들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짜 여행의 묘미 아닐까. 내가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우연이 이끌어 가는 대로 따라가 볼 수밖에 없는 것.

나는 그 우연의 궁극을 이번 여행에서 누리고 있다.

예정되었던 험난함이 아니라 더없는 충만함으로 채워진 시간들을.




@gracejieun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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