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취향 - 인상주의에서 동시대미술까지

07. 폴 고갱(문명의 굴레를 벗어난 원시의 탐미자)

by 수지유지


고갱은 인상주의의 빛을 넘어, 내면의 감정과 상징을 화폭에 담아낸 혁명가였습니다. 그의 삶과 예술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넘어, 문명과 인간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1. 생애
폴 고갱 (Paul Gauguin)은 184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다소 파란만장했는데, 정치적 망명으로 인해 페루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이는 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그의 평생에 걸친 동경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해군 생활을 마치고 주식 중개인으로 안정된 삶을 살던 고갱은, 취미로 시작한 그림에 점차 몰두하며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게 됩니다. 30대 중반,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전업 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가족과의 결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고, 특히 브르타뉴 지방의 퐁타방(Pont-Aven)에서 활동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했습니다. 이후 타히티로의 이주를 감행하며 문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원시적인 삶 속에서 예술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는 1903년 마르키즈 제도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예술은 영원히 살아남았습니다.


2. 작품
고갱의 작품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의 영향으로 인상주의적 기법을 사용했지만, 곧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인상주의의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색채와 형태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퐁타방 시기의 작품들은 강렬하고 비자연적인 색채와 단순화된 형태가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설교 후의 환영》(Vision after the Sermon)은 브르타뉴 여성들이 야곱과 씨름하는 천사를 보는 환상을 담고 있는데, 배경의 붉은색과 인물의 단순한 윤곽선이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타히티로 떠난 후 그의 작품은 더욱 원시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깁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는 고갱의 철학이 집약된 대작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타히티 여성들은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자연과 하나가 된 원시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3. 미술 사조
고갱은 상징주의(Symbolism)와 종합주의(Synthetism)의 핵심 인물입니다. 상징주의는 사물의 겉모습이 아닌, 그 안에 내재된 상징적 의미와 화가의 내면을 표현하고자 하는 경향입니다. 고갱은 색채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그림에 신비롭고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종합주의는 고갱이 에밀 베르나르(Émile Bernard)와 함께 발전시킨 이론으로, 자연의 형태와 화가의 감정, 그리고 순수 미학적 요소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상주의가 놓쳤던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고, 이후 야수파(Fauvism)와 표현주의(Expressionism)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4. 고갱의 선택이 문명에 미친 영향
고갱의 삶과 예술은 19세기말 서구 문명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자 대안이었습니다. 그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획일화되고 피폐해진 문명의 삶을 거부하고, 원시적이고 순수한 삶을 찾아 타히티로 떠났습니다. 그의 이러한 선택은 단순히 개인적인 도피가 아니라, '문명화'라는 이름 아래 잃어버린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시도였습니다. 고갱은 타히티의 원주민 문화와 예술을 통해 서구 중심의 미적 가치관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그의 작품은 원시적 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훗날 20세기 예술가들에게 원시 미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5. 고갱의 취향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고갱의 '원시적이고 이국적인' 것에 대한 취향은 단순한 개인의 선호를 넘어, 예술의 범위를 확장하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었습니다. 그의 취향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 미적 가치의 확장: 서구 중심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원시적이고 비정형적인 아름다움이 예술의 한 축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 색채의 해방: 자연의 색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색채의 역할을 재정립했습니다. 이는 야수파 화가들이 강렬하고 비자연적인 색채를 자유롭게 사용하게 하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 새로운 영감의 원천: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비유럽 지역의 문화와 예술이 서구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되게 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아프리카 조각에서 영감을 받아 입체주의를 탄생시킨 것도 고갱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6. 예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고갱의 삶과 예술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예술의 역할을 되새기게 합니다.


* 진정한 자아의 탐색: 고갱은 안정된 삶을 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삶은 예술이 곧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정임을 보여줍니다.
* 다양성의 가치: 예술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 너머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고갱은 타히티의 문화를 예술로 승화시키며, 세상의 다양한 문화와 가치를 존중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 성찰의 기회: 고갱의 작품, 특히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작품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해 깊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예술은 때때로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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