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확신편향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 라일락처럼 생긴 꽃나무를 보았다. 꽃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이거 라일락 아니에요?” 하고 함께 식사했던 권사님께 물었다.
“그런 것 같은데? 라일락은 향이 강한데, 왜 향기가 안 나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었는데, 바람이 뒤에서 불어오며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달콤하고도 깊은 향.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라일락 맞네~”
뒤늦게 향기를 맡고 나서야, 우리는 그 꽃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그렇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길을 걷고 있지만 어디로 향하는지, 이 길이 맞는지 늘 긴가민가하다. 흔들리고 망설이고, 때로는 주저앉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처럼 지나온 삶의 향기가 스치며 알려준다.
‘아, 나 잘 가고 있었구나.’ 스티브 잡스가 말한 말이 떠오른다.
“앞을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다. 오직 뒤를 돌아볼 때만 점들이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말을 곱씹으며 문득 떠오른 노래가 있다. 가수 god의 <길>.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이 노랫말처럼, 나 역시도 끝을 모르는 길 위를 그저 하루하루 걸어가는 중이다.
나는 지금도 그 점들을 만드는 중이다.
아이 넷을 키우며,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흔들린다.
사소한 선택 앞에서, 크고 작은 갈림길 앞에서, 늘 생각한다. 이렇게 키우는 게 맞을까?
지금의 선택이 이 아이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까?
혹시 나중에 나를 원망하게 되진 않을까?
가끔은 다른 엄마들의 육아 방식이 훨씬 똑똑하고 명확해 보인다.
그들에 비해 나만 너무 느리고 어설픈 것은 아닐까, 불안해진다.
그럴 때면 『프레임』이라는 책에서 읽은 한 개념이 떠오른다.
사후확신 편향(Hindsight Bias).
사건이 벌어진 뒤, 마치 처음부터 그 결과를 알았던 것처럼 느끼는 인지의 착시다.
육아에서는 이 편향이 아주 자주, 너무도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아이가 아프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그때 내가 좀 더 신경 썼어야 했어.”
“예감이 안 좋더니, 역시…….”
“그날 기운이 이상했어. 뭔가 느낌이 있었지.”
이런 말들은 모두 일이 다 벌어진 후에야 떠오른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수많은 변수와 복잡한 상황 속에서 가장 최선이라 믿는 선택을 한 것뿐이다.
그럼에도 일이 벌어지고 나면, 나는 마치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스스로를 탓하거나,
반대로 스스로를 지나치게 평가하기도 한다.
이 편향은 나 자신에게는 불필요한 죄책감을 남기고, 다른 부모들에게는 성급한 판단을 유도한다.
“그 엄마가 좀만 더 신경 썼더라면…….”
같은 말. 너무도 쉽게 상처를 주는 말. 육아는 원래 불완전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깊은 밤의 숲처럼 걸어가는 것.
그래서 실수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두려움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하지만 이 편향을 알고 나면 조금은 다르게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그 순간의 나를, 그 선택의 무게를, 조금 더 관대하게, 조금 더 따뜻하게 감쌀 수 있다.
오늘의 결정이 내일 어떤 향기로 돌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믿고 싶다.
바람이 불어올 때, 지나온 시간이 라일락처럼 은은한 향기를 품고 내 삶을 감싸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