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이 있는데 왜 니들이 걸레질을 해?"
- 응답하지 마, 1997
얼마 전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미래보다는 지나간 것들에 대한 생각이 짙어지는 듯하다. 꽁꽁 얼어버린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정감을 준다. 미래가 불안해질수록 많은 사람들이 레트로를 찾는 이유이다. 영화는 90년대 중후반의 직장 사회를 담아낸 통쾌한 판타지였다. 그렇다 판타지다.
그러나 90년대 그 시절의 직장인, 특히 '여직원'으로서 살아갔던 현실은 지금 생각해도 우울하다. 변하지 않는 과거지만 안정감은커녕 왠지 부르면 응답할 것 같은 불안감을 준다. 통쾌하지 못하고 쾨쾨했기에.
1997년, 나는 모 공기업에 입사하여 남자 동기 두 명과 함께 충남 사업소에 첫 발령을 받았다.
신입사원이니 군기가 바짝 들어 아침이면 동기들과 빗자루를 들고 사무실 바닥을 쓸었고 걸레를 들고 책상 위를 닦았다.
그날도 남자 동기들과 함께 아침에 일찍 나와 열심히 사무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건설 사업소라 아무리 청소를 해도 책상 위에 먼지와 바닥의 흙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한없이 쓸려 나왔다.
그런데 어디선가 머리도 빗지 않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옆 부서 김대리가 어슬렁어슬렁 오더니 남자 동기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한마디 했다.
"야야, 여직원이 있는데 왜 니들이 걸레질을 해?"
말이냐, 막걸리냐. 그 말을 듣는 순간 '울화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심장이 벌렁거리며 내 입을 통해 터지는 듯했다.
"뭐, 뭐라고 하셨어요? 여직원이... 뭐.. 걸레질.."
나는 너무 흥분해서 김대리를 쏘아보다 말도 채 잇지 못하고 손에 쥐고 있던 걸레를 바닥에 던져 버리고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흥분을 가라앉히고 돼먹지 못한 그의 말을 시원하게 맞받아 쳤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많다.
나는 남자 동기들과 동일한 학력으로 동일한 입사 시험을 치르고 회사에 들어갔었다. 국내 굴지의 공기업에 입사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조직의 막내이니 사무실 청소 정도야 마땅히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김대리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썩은 막걸리 같은 말 때문에 상한 내 자존심과 억울함은 한껏 부풀어 있던 자부심까지 심하게 뭉겨 놓았다. 이것이 이 나라 공기업의 수준인가.
아니겠지, 저 사람은 몰상식하고 교양이 없으니 그렇겠지. 똥 밟았다 치자, 고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다. 분위기가 불편했는지 앞자리의 남자 선배가 한 마디 내게 던졌다
"너무 맘 상해하지 마, 본사 여직원들도 다 그래."
본사에서 5년 정도 근무하고 사업소로 내려온, 나름 교양 있다는 선배가 내게 위로라고 한 소리다.
같은 파트 선배이니 갓 들어온 신입 주제에 다시 욱할 수도 없고 그냥 반응 없이 모니터를 보며 할 일을 했다. 그 당시 여직원들은 다 그런 취급을 받았던 것일까.
그 뒤로 나는 아예 걸레를 손에 들지 않았다. 동기들에게도 건의했다. 어차피 청소를 담당하시는 아주머니가 계시니 그만 하자고. 동기들이 동의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 일 이후로 그 꾀죄죄한 김대리는 나를 피했다. 물론 나도 그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그 시절 그들에게 있어 "여직원"은 그냥 "직원"이 아니었다.
심지어 전화를 받았을 때도 그랬다.
"00 부서 혜나무입니다."
"직원 바꿔주세요."
"저도 직원인데요."
"아니, 남자 직원 없어요?"
내가 입사한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그 조직에서는 여자 정직원이 드물었다. 주로 여자들은 사무 보조원 (상용원)으로 채용됐었다. 그래서 회사 안의 사람이건 외부 사람이건 많은 사람들이 여자 직원들은 실무를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영화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에서는 고졸 출신 사무 보조원이 정직원 회의 시간에 의견을 내며 인정받기도 했지만 현실에서는 일어나지도, 일어날 수도 없는 풍경일 뿐이다.
이런 일 이외에도 손님이 왔을 때 커피를 타오는 일, 호칭의 문제 등이 수년간 나를 못살게 굴었다. 남자 동기들이 커피를 타려 하면 부서장은 남자가 타면 맛없다고 내가 타서 갖다 바치기를 원했다. 내가 그에 부응했을 리가 만무하다.
또 많은 상사들이 여직원들을 '미스 O', 'O양' 하며 부르기도 했는데 그런 호칭은 기분 나쁘다고 하니 '존칭'인데 왜 그러냐고 오히려 성을 냈다. 남자 직원들에게는 '미스터'라든지 '군'이라는 호칭은 쓰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존칭이라면서 '양'뒤에는 '아'를 왜 붙이는가, 'O양아~'라고. (주로 어린 고졸 여사원들에게 저딴식으로 불렀었다).
이제는 내가 겪은 일화들을 들려주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온다. 반갑고 당연한 반응이다.
걸레질은 여직원만 하는 것이 아니며 존칭이란 상대방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소비되었다. 설마, 아직까지 여직원들에게 커피를 부탁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제발)
영화는 '약자'를 대표하는 고졸 여직원들이 기업이라는 '강자'에 저항하여 승리한다는, 기분 좋은 결말이었지만 나는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고대했었다. 영화가 이야기하지 않고 재껴둔, 그 시대의 젠더적 불평등과 폭력은 현재까지 '유리천장', '미투' 등의 사회적 용어로 석출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코로나 시국 속에서 내가 고대했던 류의 이야기였다면 흥행할 수는 없었겠다.
수많은 사람들의 치열한 투쟁과 시간이 주는 지혜로 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진보하였지만 아직도 전근대적 저열한 습성이 곳곳에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진보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니 따르려 하지 않는 이들이 모두를 탈 나게 할 썩은 생선을 버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겠지.
모든 문제는 한마디로 '인간에 대한 예의'인 것이다. 이 당연한 것을 투쟁하고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다.
오래간만에 90년대 그 시절을 추억하고 싶어 영화를 보다 괜히 쾨쾨한 기억까지 떠올랐다.
나의 딸은, 우리의 아이들은 더 이상 그 쾨쾨한 냄새에 질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더 이상 그 시절은 응답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