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오기 전, 잦은 거처의 이동 탓에 유독 과거가 그리웠던 시절이 있었다. 익숙한 공간이 자꾸 바뀌고, 관계는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런 환경 속에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자꾸 찾게 되었고, 그럴 때면 나는 늘 고향을 떠올렸다.
그날도 본가가 있는 고향으로 내려가, 아빠와 여느 때처럼 하루를 함께 보내고 있었다. 평소처럼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동네 마트에서 과일을 고르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아무렇지 않음’이 나에겐 큰 위로가 되곤 했다.
나는 아빠와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사소한 고민도, 말하기 부끄러운 감정도 자연스레 나눌 수 있는, 그런 존재.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그런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내 친구들은 하나둘 연애도 하고, 벌써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혼자인 걸까. 왜 이렇게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려운 걸까.”
평소 같으면 농담으로 넘기셨을지도 모를 아빠는, 잠시 조용히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그리고 곧,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미래에 네 곁에 누군가 있을 걸 알고 있고, 네가 그걸 믿는다면, 지금의 너는 외로워할 필요가 없지.”
그 말은 내가 당장 외롭지 않도록 무언가를 해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면 해결책보다 더 근본적인 위로가 되어주었다. 아빠는 젊은 시절, 꽤 길고 힘든 시간을 홀로 견뎌낸 사람이다. 그 시간들을 묵묵히 견디며 지금의 가족을 지켜낸 사람이었기에 아빠의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을 통과한 사람의 신념처럼 들렸다.
“지금 이 외로움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믿어. 언젠가 분명히, 너의 곁엔 좋은 사람이 함께할 거야.”
그 말은 조급한 내 마음에 조용히 안착했다. 나는 아빠의 딸로 태어난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그날 유난히도 강하게 했던 것 같다. 그래, 그렇지. 현실이 때로 너무 텁텁하고, 외로움이 예고 없이 덮쳐올 때면 나는 그날을 떠올린다. 그 조용한 길, 차 안에서 보이던 풍경, 아빠의 목소리. 그 말을 떠올리며 나는 가끔, 내 미래를 그려본다.
아직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미래를. 그리고 지금의 부모님이 남은 여생을 평안하게 지켜내고 지금의 삶을 소중히 이어갈 수 있는 것도 외로웠던, 그러나 잘 견뎌낸 지난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누구나의 인생에는 텅 빈 시절이 있다. 그 공허를 피하지 않고 제대로 삼켜낸 사람만이 결국 평범함이라는 기적을 얻는다는 걸, 이제는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