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째 피가 멈추지 않는다.
한 달째 피가 멈추지 않는다.
생리대를 갈아 차도 피가 금세 넘친다.
원래도 1년 365일 생리대를 차고 살아야 했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알았지만 매번 여자 선생님이 계시다는 산부인과를 검색했다가 방문을 포기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했느냐"라는 말을 듣을 것이 너무 싫었다. 큰 문제가 발견될 것이 뻔해 두려웠다. 산부인과에 가는 것은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민감한 주제로 질문을 받는 것도 유쾌하지 않았다.
생리컵은 5년 전 직구까지 해가며 구입했지만 삽입 과정에서 통증이 심해 항상 실패했다. 꽉 접어도 질 입구에서 “팍”하고 펴지며 외음부를 때렸다. 친구가 "언니 성공할 때까지 물어보겠다"라고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또 실패임"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결국 항상 생리대를 차고 다니는 신세였다.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 운동을 하려고 해 봐도 도통 할 수가 없었다. 항상 피를 쏟으니 피곤하고 어지럽고 무력했다. 활동을 할 때도 항상 신경을 쓰느라 제약이 있었다. 내 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에게 좌절감을 주곤 했다.
출국 전 마지막으로 1박 2일 대구 여행을 다녀왔다. 대구 여행을 가장한 방탈출 원정이었지만. 방탈출 도중에 무언가 쏟아지는 느낌이 났다. 여기서 움직이면 금방이라도 넘쳐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방탈출 내부에서 제대로 즐기지도, 테마 내에서 뛰어다니지도 못하고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귀가 후 생식기를 닦는데 질 쪽에서 무언가가 걸리는 느낌이 났다. 보통 생리혈은 샤워기로 닦으면 씻겨 내려가는데 이건 뭔지 나오지도 않고 정체되어 있었다. 그대로 놔둘 수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손으로 잡아 뺐는데 처음에 나온 것은 소위 굴이라 말하는 생리혈 덩어리였지만 그다음에 나온 것은 충격적이었다. 커다랗기도 했고 마치 고기의 비계처럼 살결이 있는 반투명의 무언가였다.
딱 보기에도 몸에서 나올 것이 못 됐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두려움이 커졌다. 병원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수채 구멍으로 떠내려간 것을 집게로 잡아 올려 사진을 찍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워서는 과호흡이 왔다. 무서워서.
그 후로 나는 계속해서 두려움에 떨었지만 출국이 임박해오자 처리할 일들 때문에 막상 병원에 방문할 시간을 내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애써 정신승리를 하고 있었다. 두려움에서 나오는 방어기제임이 명백했다.
아침에 일을 처리하러 나와 용기를 내서 근처 병원에 방문했다. 어떻게 보면 출국 전 막바지에 별 게 아니라는 확인만 하고, 약이나 타자는 심정이었다.
네이버 예약을 했다고 하며 접수를 했다. "생리 중인데 초음파가 가능한가요?" 묻자 피가 많이 나올 때는 초음파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오픈 시간보다 일찍 방문한 나에게 청소 중이라고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은 병원 방침이므로 그럴 수 있으나, 그 후 나보다 늦게 방문한 사람들은 들여보내면서도 나에게는 이제 들어오셔도 된다는 안내가 없었기에 순서가 밀려 기분이 좋지 않았던 차였다.
다음에 방문한 병원은 강남역에 있는 '영업을 많이 하고, 끼워팔기를 하더라'는 병원이었는데,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여자 선생님만 계시다는 병원이니 마음을 놓고 진료를 볼 수 있겠다 싶었기에 전화를 해서 생리 중에 초음파가 되냐고 물었다. 한 달이나 생리를 했으면 어쩌시겠냐, 방법이 없다, 오셔야 한다고 했다.
상담해주시는 직원분은 아주 친절하셨고 말씀도 잘 들어주셨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병원 가기를 꺼려하던 "왜 이 지경이 되도록 안 왔냐" 스타일의 선생님이었다. 초음파를 하는데 너무 아팠다. 한 달이나 피를 쏟았는데도 자궁 내벽이 너무 두꺼워서 확인이 불가능하고, 계속 피가 나오는 상태라고 했다.
내가 당장 내일 출국이라고 하니 이 상태로 출국하다 비행기에서 쓰러진다며, 진단서를 써 줄 테니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내가 꼭 원하던 느낌의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빠르게 대처해주신 덕분에 응급실로 향할 수 있었다.
응급실에서 나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