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에 병변이 보이네요.
진단서를 받고는 어떤 병원을 가야 할까 고민했다.
몇 해 전 의대 교양으로 해부학 강의를 수강했다. 흥미가 있어서 공부도 열심히 했었고 성적도 잘 받았는데, 당시 내가 건강 상담을 하니 교수님께서 우리 대학병원의 교수님을 소개해주셨다. 그래서 이번에도 염치 불고하고 연락을 드려 도움을 청해볼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연락드리는 것이 죄송스럽기도 하고, 집에서 학교까지는 거리가 있기에 집 주변에 좋다는 병원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해서 가장 가까운 강남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들어가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다. 코로나라 밖에서부터 체온을 재고 들어가야 했다.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문진을 하고 진단서를 제출했다.
응급실에 들어가기 전 또 대기실이 있었다. 자궁에 출혈이 있다고 말하고 순서를 기다렸다. 그 후 내 이름이 불리고 또 문진을 했다. 언제부터 생리를 했는지, 지금 증상이 어떤지 등을 자세하게 여쭤보셨다. 코로나에 확진된 적이 있는지도 여쭤보셨다. 그리고 나서야 응급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응급실에 들어가서는 환자대기실에 앉아 있게 되었다. 평일 낮인데도 사람이 꽉 차 있어서 보호자는 앉을자리가 없었다. 피를 뽑고 혈압을 쟀다. 피는 이후로도 계속 뽑았다. 피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식염수를 맞았다.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동안 의사 선생님 한 분이 나를 불렀다. 아빠가 나를 따라 같이 갔는데 아빠를 문 앞에서 차단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민감한 정보"에 대해 물어보셨다. 생리는 언제 시작했으며, 평소에 주기는 어떤지, 산부인과 검진은 받아보았는지, 마지막 성관계는 언제였는지 따위의 것들이었다. 한 달이나 생리를 하셨으면 정말 어지러우셨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힘이 없고 피곤했다고 하니 정말 힘드셨겠다고 했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고 나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다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산부인과로 협진 요청이 왔다며 응급실로 레지던트 선생님이 내려왔다. 응급실 한 편에 마련된 진료실로 들어갔다. 안에 있던 의료진들을 다 내보내고 선생님과 나, 둘만 남았다. 제공된 옷으로 갈아입고 의자에 누워 질경을 넣는데 통증이 심해 눈물이 찔끔 나오고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이 자궁에 병변이 보인다고 했다. 병변이라니. 살면서 병변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들을까.
교수님과 병변에 대해서 논의를 해봐야 한다며 선생님이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었다. 사진을 찍힌다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어쩌겠나. 찰칵찰칵 소리가 두 번 나면서 현실 감각이 사라졌다. 해리가 오는 듯했다. 눈을 꾹 감았다.
예정된 출국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는데 병변이 보인다니. 옷을 갈아입고 선생님께 “선생님, 제가 내일 출국인데요……. 갈 수 있을까요?”라고 했다.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어디로 가냐고 물었던 것 같고, 교수님과 상의해봐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선생님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계시긴 했지만 그 위로 드러나는 표정을 보고 그때부터는 내가 미국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후 산부인과에서 나를 불러 응급실에서 산부인과로 이동했다. 초음파를 하기 위해서였다. 저연차부터 고연차 선생님까지 총 세 분이 붙었다. 처음에 나를 내진했던 선생님부터 초음파를 시작했고, 옆의 고연차로 보이는 선생님이 지시를 내리고 그를 도왔다. 그리고 안 보이는 부분은 고연차 선생님을 불러 다시 하는 것 같았다. 아주 꼼꼼하게 보았다.
모니터로 내 자궁 상태를 보는데 내가 봐도 내부가 불규칙한 것 같았다. “병변”으로 보이는 것들의 크기를 체크하는데 지름이 6.99cm인 것도 있었다. 저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두 개가 아니었기에 뭔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초음파도 간헐적으로 아프긴 했지만 질경만큼 아프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시 응급실로 내려간 후에 수술은 아주 빨리 결정됐다. 내가 당장 내일 미국에 가야 한다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상태가 심각하기 때문인지, 보통 같으면 수술 일정을 잡고 며칠을 기다려야 했을 텐데 당장 응급으로 오늘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수술이 결정된 후 일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소변검사도 하고, 피도 더 뽑았다. 흉부 엑스레이를 찍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심전도도 진행했다.
응급실에 있는 동안 아주 바빴다. 출국이 임박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전화가 어찌나 걸려오는지. 그날 아침에 방문한 은행에서는 내 신분증을 안 돌려줬다며 다시 와야 한다고 했다. 내가 지금 응급 수술이 잡혀서 어렵다고 했더니 상대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외에 당장 내가 처리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빠의 번호를 알려주었다.
이런저런 일 처리를 하고 있는데 처음에 내진을 담당한 레지던트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술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며 이리로 오겠다고 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