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정리를 하다 막학기 들었던 철학 전공 수업의 필기를 찾았다.
하나는 근대사상에 대한 수업이었고,
하나는 법철학자인 드워킨의 Taking Rights Seriously를 읽는 수업이었다.
(그렇다. 내가 철학을 전공했단 사실이 나도 놀랍다. 내 전공에 대해서 말하자면 얘기가 길어지겠지만)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나싶을 정도로 필기가 빼곡했다.
나는 불행한 막학기를 보냈다.
코로나 때문에 가나에서 모가디슈 뺨치는 탈출을 감행한 후유증에 시달렸고
순수철학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공부를 하고싶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절대적인 공부량도 형편없게 느껴졌다.
내가 과연 수업을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전투적으로 질문하는 저학번들 사이에 낀 초초초고학번으로서
나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할 망정 뒤떨어진다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기만적인 것은
내가 두 과목 모두 A+의 성적을 받았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한 적이 없기에
C+도 감지덕지한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 채
벌써 몇 년의 시간이 빠르게 지났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내가 A+를 받은 것은 운의 작용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과거의 필기를 본 순간
내가 지금까지 노력하지 않은 과거의 나를 미워하고 있었듯
그때의 나도 미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비록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더라도
그때의 나에겐 그것이 최선이었음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너는 네 나름대로
발버둥을 쳤구나
그리고 그런 너를 따뜻하게 감싸주지 않았구나
부족하다고만 생각하고
두고두고 후회했구나
이제는 그때의 나에게
고생 많았다고
이제 네가 하고싶은 공부를 하며
그렇게 살자고
말해주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