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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Jun 24. 2022

진로독서 - 한 학기 한 권 책 읽기 수업을 마치며

  이번 학기 수업은 "한 학기 한 권 책 읽기"로 기획해 보았다. 일 주일에 한 시간씩 들어가는 시간이 있어 이런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기에 적당하겠다 싶었다. 수능을 앞두고 있는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기 한 권 책 읽기를 한다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누구보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가득할 시기이니 책을 진로와 관련된 것으로 한정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선정하는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중간에 책을 변경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수준에 맞지 않아 너무 빨리 읽거나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수업에 앞서  전국 국어교사모임에서 미리 진로도서 추천도서 목록을 구했고, 각 반 구글클래스에 목록을 올려두었다. 그리고 드디어 첫 시간. 도서관에서 수업을 진행했고, 후보책 몇 권을 정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거쳐 내가 한 학기에 걸쳐 읽을 책을 선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구글클래스에 있는 책 목록을 참고하여 스마트폰으로 서점 사이트에 접속한 후 미리보기와 목차, 서평 등을 참고해 책에 대해 파악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실물책을 직접 보고 고르고 싶은 학생들은 사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직접 책을 들추어 보고 평가할 수 있도록 했다. 한 시간이 참 빨리도 지나갔다. 책의 수준, 흥미, 진로 적합성 등의 항목에 점수를 매기고 최종 책을 선택하여 나에게 최종 승인(?)을 받아야 비로소 책 선정이 마무리 되었다. 학생들 모두 신중하게 책을 고르고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고 일지를 작성하는 시간은 4차시~6차시 정도를 주었다. 독서를 정해진 차시에 마칠 수 있도록 독서 계획을 짜도록 했고,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완독하였다. 물론 너무 분량이 많은 책은 미리 읽어 오기도 하였다. 35분 정도 책을 읽고 10분 정도 일지를 작성한 후 도장을 찍어주며 잠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거의 모든 학생의 독서가 마무리되고, 서평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작년에도 한 학기 한 권 읽기을 했던 학생들은 일지 작성까지만 했고, 서평은 쓰지 않았다고 했다. 올해는 전학년 채점의 부담을 안은 채고 서평을 쓰게끔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참 만족스러웠다.


 미리 서평의 구조를 알려줬고, 책의 내용을 담되 감상을 충분하게 쓰라고 강조했다. 분량은 800자 이상으로 명시했지만, 쓰고 싶은 말이 가득한 경우는 뒷장까지 써도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한 학년 전체 학생의 서평을 읽어 보았다. 학생들의 글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외로(?) 글을 열심히들 썼고 하물며 잘 썼다. 아마 자신이 공들여서 고르고, 몇 시간에 걸쳐서 읽은 책을 허공에 날려 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 얻은 생각의 조각들을 글로 꾹꾹 담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20점짜리 수행평가 속에 도서 선정, 일지 작성, 서평 작성, 태도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다보니 서평 점수는 고작 3점이었다. 급간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다 보니 잘 써도 3점, 정~~말 잘 써도 3점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로 글을 잘 쓴 학생들은 이름 옆에 별표를 해 주었다. 선생님이 마음 속으로 주는 A+이라는 칭찬의 말도 더해서.


다음 시간에는 각 반에 4~5명씩 서평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글을 줄줄 읽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발표'의 형식으로 진행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각반에 '질문자' 한 명을 정해 책의 내용 혹은 발표자의 진로에 관하여 유의미한 질문을 한 가지 던지게끔 했다. 우리는 '화법과 작문' 수업을 진행 중인데, 여러분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으며', '발표하고 있으며', '듣고 질문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질문할 것을 염두해 두고 누군가의 말을 듣게 되면 더욱 더 경청하게 되고 메타적으로 듣게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학생들의 서평이 참 좋아서 계획에 없던 발표를 진행했는데, 발표 시간을 가지고 나니,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한 것이 참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다. 어떻게 해서 이 책을 고르게 되었으며, 책에는 어떠한 내용이 실려 있으며, 그리고 나의 삶에는 이 책이 어떠한 느낌과 영향을 주었는지. 여러 학생들이 들려주는 책과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교실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를 소통하게 만들어 주었다.


미술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모인 반은 더욱 그러했다. 비슷한 진로를 희망하고 있는 터라 읽고 있는 책들도 거의 비슷한 계열의 책들이었고, 서평도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학생들이 쓴 서평을 읽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진솔한 글들이 많았다. 목소리가 예쁘고 부끄러움이 많은 한 학생에게 발표를 권했다. 머뭇거리며 빼곡히 작성한 서평을 읽어내리는 중에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웹툰작가를 희망하는 작가의 고민, 학생이 겪었던 꿈과 현실 등이 맞닿아 가슴을 울렸다.


똑같은 옷을 입고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개인'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곤 한다. 학교는 그 어느 곳보다도 '전체'를 중시하는 곳이기에.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무엇을 꿈꾸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교실 앞에 서 있는 나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글과 말을 통해 한 명의 개인으로 존재하는 학생들을 만나고,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수능특강에 실린 짧은 지문들을 통해 여러 가지 글을 접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꿈과 닿아 있는 한 권의 완결된 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기를 바란다. 희망하는 진로에 관련된 이론서는 무궁무진하고 그것을 어떠한 형태로든 배울 기회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담긴 책 한 권을 만날 기회는 많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더욱이 이러한 입시지옥에서 말이다. 그리고 열아홉에 만난 이 책이, 물꼬를 활발히 터 주어서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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