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라시아 Apr 26. 2023

수확의 독서법

책의 씨앗을 뿌리고 거두어들이는 기쁨이란.

 아이를 키우며 내가 갖추게 된 능력치 중 하나는 ‘인내심’이다. 철저하게 ‘나’를 내려놓고 타인의 욕구를 충족해주기 위해 온 하루를 쏟아야 하는 육아는 인내심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잠을 자지 않는 아이를 옆에 두고 내 시간이 언제 올까 하염없이 기다리며 토닥이는 것, 영양을 생각해 여러 가지 재료를 고르고 다듬어서 만든 이유식을 단 한 입도 먹지 않고 뱉어버리는 아이를 까꿍해주며 노래부르며 먹이고야 마는,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만 같은 순간들을 경험하며 내 안에 이렇게 많은 인내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난 책을 읽을 때 그다지 인내심이 많은 편이 아니다. 호흡이 긴 한 권의 책을 진득하게 앉아 오래도록 보지 못하는 편이다. 두꺼운 책을 읽다 보면 또 다른 책이 궁금해져 참을 수가 없는 순간이 온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집중력이 흐트러져 책 내용에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많은 사람들이 호기롭게 책을 구입하고 독서를 시작하지만 완독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책을 전시해 놓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도 있을 것이다.

 어렵사리 확보한 나의 소중한 독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바로 수확의 독서법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그다음 책으로 넘어가려는 생각을 버렸다. 읽고 싶은 책을 여러 권 골라 ‘책탑’을 쌓아 두었고 가장 마음이 끌리는 책부터 조금씩 읽어 나갔다. 도서관 서가를 채우고 있는 책들을 바라보고 앞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을 한 경험이 있는가? 그것과 비슷하게 책탑을 쌓아놓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마음이 드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다 읽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첫 번째 책을 어느 정도 읽은 후 읽은 분량을 표시하기 위해 띠지를 붙여 놓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책을 읽었다. 마찬가지로 한번에 책을 다 읽겠다는 욕심은 전혀 없었고 내가 읽고 싶은 만큼 혹은 오늘은 ‘1장’만 읽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마치 학생들이 등교해서 한 과목 수업만을 계속 듣지 않는 것처럼 나도 내 독서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책탑은 띠지가 붙은 책들로 알록달록 쌓이게 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완독한 첫 번째 책이 생길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쭉 읽는 것보다는 완독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다. 하지만 첫 번째 완독책을 시작으로 줄줄이 다른 책들을 완독하게 될 것이다. 그때의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치 농부가 봄에 여러 가지 씨앗을 뿌리고 가을이 되자 수확물을 거두어 들이는 것과 같다. 내가 뿌린 책의 씨앗을 거두고 풍성한 한가위를 맞이할 때 정말 보람을 느낀다. 나는 이러한 ‘수확의 독서법’ 덕분에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독서를 해나갈 수 있었다.

  수확의 독서법은 재테크에서 소위 말하는 ‘은행 예금 풍자 돌리기’ 방법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은행 예금 풍차 돌리기’란 마치 풍차를 돌리는 것처럼 매달 정기예금 통장을 만들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줄줄이 만기가 찾아오는 방식의 재테크 방법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줄줄이 책을 완독하게 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수확의 독서법을 했을 때 또 다른 장점은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소설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사회경제분야의 책을 다 읽는 방식으로 독서를 한다면, 소설책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분야의 책은 읽지 못하는 셈이 된다. 하지만 여러 분야의 책을 선정해 책탑을 쌓고 적은 분량씩 읽어나가면 꾸준히 여러 가지 분야의 글들을 조금씩 읽어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책을 읽는 방법, 책을 읽기 위해 세우는 계획과 전략은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각자의 사정, 목표,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는 여러 책을 비슷한 시기에 읽는 것보다는 한권의 책을 집중해서 읽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다. 다른 책에 시선을 두지 않고 한 권의 책에 깊이 있게 몰입하기 위해서 그럴 것이다. 그런 경험도 물론 가치 있고 무척 매력적인 경험이다. ‘수확의 독서법’은 우리가 세울 수 있는 여러 가지 독서 전략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독서 전략 중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을 고르면 되는 것이다. 만약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이 나처럼 인내심이 부족해서 진득히 앉아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어렵다면, 그리고 다양한 책들을 꾸준하게 읽고 싶다면 ‘수확의 독서법’을 추천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책은 '내'가 찾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