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 일리아스

분노를 뒤덮는 화해

by 그라시아

고전 독서모임에서 두 달에 걸쳐 읽은 책.

느린 호흡으로 읽는 것의 장점은 그만큼 책에 대해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고 완독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 반면 독서의 몰입도는 조금 떨어질 수 있다.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대서사시이다. 무려 15,69행으로 이루어졌다. 기원전 8세기에 이런 스케일의 작품을 창작해 후세에 전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일리아스의 전반부는 ‘분노’라는 감정이 지배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 아내를 빼앗긴 것, 전리품을 빼앗긴 것, 전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 등.

분노에 기인한 갈등은 전쟁으로 이어지고, 그 전쟁은 말할 수 없이 참혹하다. 일리아스를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참전한 사람의 가계도를 읊고 그가 얼마나 비참하게 죽어갔는가를 상세하게 묘사한다는 점이었다. 수만 대군 중 의미 없는 한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려는 게 아닐까.


일리아스를 읽고 나선 깊은 감동이 밀려 왔다. 그 이유는 분노를 덮는 화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이 정지되고,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듯한 감동의 순간이 작품에 있었다. 아들의 시신을 되찾기 위해 아들을 죽인 자를 찾아가 손에 입을 맞추는 장면은 가슴을 요동치게 하고 한편으로는 숙연해지게 했다. 헥토르를 향한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사랑하는 동료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서 기인했는데, 프리아모스의 행동은 그 분노마저 뒤덮는 것이었다.


한편, 일리아스는 ‘환상적’이었다. 제우스,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 포세이돈, 테티스와 같은 신들의 세계가 인간들의 세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들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인간의 전쟁에 직접 개입하기도 한다. 그 개입으로 인해 누군가는 죽을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능력을 양껏 발휘하지 못하기도 한다.

거대한 서사가 신화적 세계관과 맞물려 돌아가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책장을 덮으며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 불멸의 고전을, 포기하지 않고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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