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다 하려던 시절은 갔다
결혼 전엔 몰랐다.
살림이 이렇게 관계의 온도를 오르락내리락하게 만들 줄은.
신혼 초, 남편은 자주 억울해했다.
왜 자꾸 자기만 치우는 걸까,
왜 내겐 보이는 걸, 나는 못 보는 걸까.
조용한 성격의 남편은 크게 화를 내는 대신, 조심조심 말을 꺼냈다.
"내가 하는 건 괜찮은데... 기본은 같이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설거지 끝냈는데 그 위에 또 올려두면 어떡해..."
그 말들이 나오기까지, 남편은 계속 참았던 것 같다.
괜히 말 꺼냈다가 서운하게 만들까 봐, 분위기 망칠까 봐.
반면 나는 '기본'은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남편의 살림방식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본인이 더 잘해서, 본인이 하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두 명이 하면 정신없으니 TV 보면서 쉬어."라는 남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쉬라고 했으니까. 정말로 쉬었다.
이후 그렇게 큰 폭풍이 불어닥칠 줄은 그땐 몰랐다.
물론 나도 신혼의 로망이 있었다.
남편의 밥을 차려주고, 맛있게 먹는 얼굴을 보고,
"역시 우리 와이프 요리가 최고지" 이런 말도 듣고 싶었다.
그래서 퇴근 후 열심히 볶음밥을 만들었는데,
남편은 그 위에 케첩을 뿌렸다.
아니, 재료를 더 넣어서 다시 요리를 했다.
그런 순간이 반복되면서 내 서운함은 쌓여갔다.
내가 만든 걸 부정당한 기분이었달까. 맛있다는 말에 앞서 다시 요리를 하는 그 행동이 괜히 마음을 후벼 팠다.
또 한 번은, 남편이 토마토를 흰 밥이랑 섞어 요리를 해줬다.
몇 시간을 기다려 만난 밥이었고, 한식파인 나에게 평생 토마토와 흰 밥을 같이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식탁 앞에서 맛있는 음식을 기다렸던 내 시간에 대한 서러움이 올라와 폭풍 눈물과 함께 짜증을 부렸다.
남편은 당황했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꽤 긴 삐짐으로 이어졌다.
삐진 남편의 모습에 나는 참지 못하고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엄마는 "요리해 준 사람한테 고맙단 말은 못 할망정" 나를 혼냈다.
그제야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는 걸.
남편은 "내가 싫어하는 것만 하지 말아 줘"였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해줘"였다.
같은 부엌, 같은 집, 같은 살림인데
기준도, 기대도, 서운해지는 포인트도 전부 달랐다.
결국 남편은 본인이 해야 속 편하다며 대부분의 집안일을 맡게 되었고, 나는 그 옆에서 '나만의 기준'으로 살림을 했다.
그때까진 몰랐다.
이게 팀플레이가 아니라 각자 플레이였다는 걸.
결국 어느 날, 그 마음들이 한꺼번에 터졌다.
머리카락 하나에서 시작된 대화가 5~6시간을 훌쩍 넘겼다.
싸움이라기보단, 감정이 잔뜩 실린 회의 같았다.
그 무렵, 상담사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주셨다.
"결혼 전엔 각자 다이내믹한 삶을 살죠. 집이 아닌 밖에서 자극을 찾고요. 그런데 결혼을 하면 그 다이내믹이 집 안에서 이미 많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의 ‘가정’이라는 회사를 ‘공동 경영’한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퍼즐이 맞춰졌다.
남편은 '내가 덜 해서' 힘들었던 게 아니라
'당연해진 것 같아서' 서운했던 거고,
나는 '안 해서' 미안했던 게 아니라
'기준이 다르다는 걸 몰라서' 억울했던 거였다.
누가 더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뭘 더 잘 보느냐의 문제였다.
나는 바닥의 머리카락과 먼지가 먼저 보이고,
남편은 물건의 위치와 정리가 먼저 보인다.
내 눈엔 보이지만, 그의 눈엔 안 보일 수 있고
그의 눈엔 거슬리지만, 내겐 아무 일 아닐 수도 있다.
그때 깨달았다. 그럴 땐 지적하거나 비난할 게 아니라
"아, 이건 내가 맡을게."
"그럼 이건 네가 해줘"라고 솔직하면 되는 거였다는 걸.
살림은 생각보다 솔직하다.
말 안 해도 쌓이고, 기대하면 실망하고,
당연해지면 서운해진다.
그래서 더더욱 팀플레이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누가 더 했는지 세지 않는다.
대신 누가 뭘 더 잘 보는지는 안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집 안의 온도는 적당해지고, 관계는 훨씬 오래 버틴다.
결혼하고 알게 된 사실 하나.
살림은 집을 유지하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조율하는 기술이라는 것.
혼자서 다 하려던 시절은 갔다. 이제는 같이 살아가는 법을 연습 중이다.
결국, 집안일이란 머리카락 하나, 설거지 한 번, 밥상의 반찬보다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읽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서로의 기준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내 방식'이 아닌 '우리의 방식'을 찾아가는 그 과정이 결국은 살아가는 일이고, 함께 늙어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닐까.
집안일은 일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의 언어' 같다.
그리고 그 언어를 더듬더듬 배우며 살아가는 오늘이 썩 나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