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집안일은 팀플레이: 관계의 온도 조절법

혼자서 다 하려던 시절은 갔다

by 웬디금

결혼 전엔 몰랐다.

살림이 이렇게 관계의 온도를 오르락내리락하게 만들 줄은.



보이는 사람과, 안 보이는 사람 사이


신혼 초, 남편은 자주 억울해했다.


왜 자꾸 자기만 치우는 걸까,

왜 내겐 보이는 걸, 나는 못 보는 걸까.


조용한 성격의 남편은 크게 화를 내는 대신, 조심조심 말을 꺼냈다.


"내가 하는 건 괜찮은데... 기본은 같이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설거지 끝냈는데 그 위에 또 올려두면 어떡해..."


그 말들이 나오기까지, 남편은 계속 참았던 것 같다.

괜히 말 꺼냈다가 서운하게 만들까 봐, 분위기 망칠까 봐.


반면 나는 '기본'은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남편의 살림방식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본인이 더 잘해서, 본인이 하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두 명이 하면 정신없으니 TV 보면서 쉬어."라는 남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쉬라고 했으니까. 정말로 쉬었다.


이후 그렇게 큰 폭풍이 불어닥칠 줄은 그땐 몰랐다.


우리는 같은 살림을, 다른 기준으로 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신혼의 로망이 있었다.


남편의 밥을 차려주고, 맛있게 먹는 얼굴을 보고,

"역시 우리 와이프 요리가 최고지" 이런 말도 듣고 싶었다.


그래서 퇴근 후 열심히 볶음밥을 만들었는데,

남편은 그 위에 케첩을 뿌렸다.

아니, 재료를 더 넣어서 다시 요리를 했다.


그런 순간이 반복되면서 내 서운함은 쌓여갔다.

내가 만든 걸 부정당한 기분이었달까. 맛있다는 말에 앞서 다시 요리를 하는 그 행동이 괜히 마음을 후벼 팠다.


또 한 번은, 남편이 토마토를 흰 밥이랑 섞어 요리를 해줬다.


몇 시간을 기다려 만난 밥이었고, 한식파인 나에게 평생 토마토와 흰 밥을 같이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식탁 앞에서 맛있는 음식을 기다렸던 내 시간에 대한 서러움이 올라와 폭풍 눈물과 함께 짜증을 부렸다.


남편은 당황했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꽤 긴 삐짐으로 이어졌다.


삐진 남편의 모습에 나는 참지 못하고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엄마는 "요리해 준 사람한테 고맙단 말은 못 할망정" 나를 혼냈다.


그제야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는 걸.


남편은 "내가 싫어하는 것만 하지 말아 줘"였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해줘"였다.


같은 부엌, 같은 집, 같은 살림인데

기준도, 기대도, 서운해지는 포인트도 전부 달랐다.


결국 남편은 본인이 해야 속 편하다며 대부분의 집안일을 맡게 되었고, 나는 그 옆에서 '나만의 기준'으로 살림을 했다.


그때까진 몰랐다.

이게 팀플레이가 아니라 각자 플레이였다는 걸.


살림은 '누가 더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나누느냐'였다


결국 어느 날, 그 마음들이 한꺼번에 터졌다.


머리카락 하나에서 시작된 대화가 5~6시간을 훌쩍 넘겼다.

싸움이라기보단, 감정이 잔뜩 실린 회의 같았다.


그 무렵, 상담사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주셨다.


"결혼 전엔 각자 다이내믹한 삶을 살죠. 집이 아닌 밖에서 자극을 찾고요. 그런데 결혼을 하면 그 다이내믹이 집 안에서 이미 많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의 ‘가정’이라는 회사를 ‘공동 경영’한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퍼즐이 맞춰졌다.


남편은 '내가 덜 해서' 힘들었던 게 아니라

'당연해진 것 같아서' 서운했던 거고,


나는 '안 해서' 미안했던 게 아니라

'기준이 다르다는 걸 몰라서' 억울했던 거였다.


누가 더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뭘 더 잘 보느냐의 문제였다.


나는 바닥의 머리카락과 먼지가 먼저 보이고,

남편은 물건의 위치와 정리가 먼저 보인다.


내 눈엔 보이지만, 그의 눈엔 안 보일 수 있고

그의 눈엔 거슬리지만, 내겐 아무 일 아닐 수도 있다.


그때 깨달았다. 그럴 땐 지적하거나 비난할 게 아니라

"아, 이건 내가 맡을게."

"그럼 이건 네가 해줘"라고 솔직하면 되는 거였다는 걸.



살림은, 관계를 조절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살림은 생각보다 솔직하다.


말 안 해도 쌓이고, 기대하면 실망하고,

당연해지면 서운해진다.

그래서 더더욱 팀플레이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누가 더 했는지 세지 않는다.

대신 누가 뭘 더 잘 보는지는 안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집 안의 온도는 적당해지고, 관계는 훨씬 오래 버틴다.


결혼하고 알게 된 사실 하나.

살림은 집을 유지하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조율하는 기술이라는 것.


혼자서 다 하려던 시절은 갔다. 이제는 같이 살아가는 법을 연습 중이다.



결국, 집안일이란 머리카락 하나, 설거지 한 번, 밥상의 반찬보다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읽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서로의 기준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내 방식'이 아닌 '우리의 방식'을 찾아가는 그 과정이 결국은 살아가는 일이고, 함께 늙어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닐까.


집안일은 일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의 언어' 같다.


그리고 그 언어를 더듬더듬 배우며 살아가는 오늘이 썩 나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