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깨진 컵을 보며, 나도 수리 중이다

멈췄다고 실패가 아닌, 점검의 시기

by 웬디금

그 컵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샀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그 해마다 디자인과 색이 달라지는,

그 도시의 겨울을 그대로 품고 있는 컵이었다.


노을빛이 감도는 어두운 저녁,

마켓의 전구 불빛 아래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배고픈 마음에 따스한 뱅쇼와 에그타르트를 하나씩 산 뒤에 친구와 벤치에 앉았다.



다 마시고, 반납하려던 차에 친구가 말했다.

"이 컵은 반납하면 5,000원을 돌려받지만, 반납하지 않고 기념품으로 가져도 돼. 매년 해마다 컵 색이 달라지는 거라, 제네바 여행의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올해의 추억 하나만 남기자"는 마음으로

내가 마신 뱅쇼 컵을 냅킨에 고이 싸서 집으로 들고 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컵은 유난히 자주 꺼내졌다.

출근 전 따뜻한 커피를 마실 때,

밤늦게 밀크티를 데워 마실 때.


컵은 사실 도구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 겨울 기억의 저장소가 되어 있었다.



사고는 너무 평범하게 일어났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설거지를 하다가 그만 미끄러뜨린 것이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깨진 컵 조각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아니, 그걸 왜... 거기에 둔 거야?"


말은 차갑게 나갔지만 그다음엔 이상하게도 눈물이 쏟아졌다.

화가 나서라기보다는, 잃어버린 어떤 계절 때문이었다.


다시 살 수 없는 컵.

다시는 그때의 공기와 빛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물건이 깨진 게 아니라 내 마음 한 귀퉁이가 툭,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단지 컵을 아끼고 있었던 게 아니라,

기억을 붙잡고 살고 있었구나 하는 걸.



교체가 아닌, '수리'의 자세로 살아가기


깨진 컵은 버려야 했다.

붙일 수도 없었고, 대체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어떤 물건은 교체가 가능해도

그것이 품고 있던 시간은 교체되지 않는다.


나는 멍하니 조각을 버리면서 문득 나 자신이 떠올랐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이 회사 안 맞으면 옮기지 뭐."

"너무 힘들면 새로 시작하면 되지."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언제든 교체하고 리셋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사실 사람은 전자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전의 상실, 실패, 기대, 좌절이 완전히 새것으로 바뀌는 일은 없다.


대신,

우리는 대부분 '수리된 채' 살아간다.


금이 간 마음을 안은 채로, 테이프로 임시 고정한 자존감으로, 조심스럽게 다시 일상을 시작한다.


완벽히 새로워지지는 못해도 고장 난 채 버려지지는 않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수리한다.



내 안의 '전원 버튼'을 다시 켜는 법


컵이 깨지고 며칠 동안 나는 묘하게 명하게 있었다.

일도, 사람도, 모든 것이 한 템포 느리게 흘렀다.


그 시간 동안 깨달았다.

슬픔이 멈춰 선 게 아니라 내가 잠시 점검모드에 들어간 것이었구나, 하고


우리는 늘 "빨리 회복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회복은 버티거나 제거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멈추는 데서 시작된다.


조각을 치우고, 손을 씻고, 한참 가만히 서 있었을 때

비로소 "나는 지금 조금 쉬어도 된다"는 말을 내게 처음으로 건넸다.


그 후로 나는

힘든 감정 앞에서 "빨리 털어내야지" 대신

"지금 점검 중이야"라고 말하기로 했고


슬럼프가 올 때도 "나는 왜 이래" 대신

"조정기가 필요한 시기구나"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장이 아니라, 점검이라고.

불량이 아니라, 수리 중이라고.



깨진 컵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컵이 깨지면서, 나는 배웠다.

모든 깨짐이 끝은 아니라는 것.


어떤 깨짐은 나를 더 조심스럽게 만들고,

어떤 파손은 회복의 태도를 가르치며,

어떤 상실은 내가 나를 다루는 방식을 바꾼다.


지금의 나는

완벽히 새 제품이 되기를 포기한 대신,

수리된 내가 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조금 느리고,

군데군데 금이 가 있지만

그래서 더 단단해진 상태로.


깨진 컵은 사라졌지만,

그 이후부터 나는 지금의 나를 이렇게 부른다.


"고장 난 게 아니라 조금 더 나아지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