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옷장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의 하루와 삶을 조율하는 아주 사적인 리허설

by 웬디금

오늘은 어떤 내가 되고 싶지?

- 옷장을 여는 순간, 하루의 '나'가 결정된다


아침 출근 전, 옷장을 여는 일은 단순한 일 같지만

사실은 하루의 무드와 에너지를 정하는 의식이다.


컨디션이 좋은 날엔 화사한 셔츠가 먼저 손에 닿고,

몸이 무거운 날엔 부드러운 니트가 위로가 된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날엔 단정한 재킷,

혼자 일에 몰입해야 하는 날엔 포근한 블라우스를 고른다.


그날의 무드와 에너지를 정하는 건 결국 '내가 고른 옷'이다.


특히 월요일 아침처럼 회사 가기 싫은 날

그 월요병을 잠재우는 것도 옷이다.


나는 매일 밤, 내일의 일정과 기분을 가늠하며 입고 싶은 옷을 고른다. 그리곤 옷을 에어드레서에 넣고 예약을 건다.


아침 6시에 마친 따뜻하게 데워진 옷을 꺼내 입고 출근하면,

그제야 하루를 시작할 용기가 조금 생긴다.


이건 단순한 '꾸밈'이 아니라,

하루를 위한 아주 사적인 리허설이다.


나는 꽤 계획적인 성격이지만, 아침잠이 많다.

면접에서 단점을 묻는 질문에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라고 고백했을 정도로.

내게 출근 준비는 여전히 시간과의 싸움이다.


그런 날, 허둥지둥 눈에 보이는 셔츠와 바지를 아무렇게나 입고 나가면

하루 종일 '의도치 않은 조합'에 휘둘리는 기분이 든다.

준비되지 않은 나로 하루를 버티는 건 생각보다 더 피로하다.


**

문득,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유치원 시절,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유치원 입구에서 엉엉 울던 나.

그런데 엄마가 사라지고 나면 아무런 일이 없던 것처럼

조용히 신발장 앞 거울로 걸어가

옷매무새를 다듬고 단추를 다시 잠그곤 했다고 한다.

유치원 선생님은 엄마에게 걱정마시라고 이 일화를 들려주셨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입술을 꾹 다물고, 나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다잡던 그때의 내 모습.


생각해보면, 그게

'거울 앞에 선 나'의 첫 번째 리허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습관은 지금도 남아있다.

출근 전에 엘레베이터 거울 앞에서 옷깃을 정돈하고,

회사에 도착해서도 조용히 머리를 정리한다.

"오늘도 잘 살아보자."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작고 다부진 목소리처럼.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 하루.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옷장 앞에서 조용히 묻는다.


오늘은 어떤 나로 살아갈 것인지.




무대 뒤, 또 다른 나의 대기실

- 일하는 나, 사랑하는 나, 쉬는 나, 옷은 다중 자아의 무대의상


내 옷장에는 단정한 셋업 수트도, 편안한 티셔츠도, 화려한 원피스도 있다.

하나의 스타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역할이 바뀌는 사람이다.


국제기구에서 일할 때는 차분한 톤의 블라우스와 재킷을 입었다.

외국에서 일하면서는 검정 나시에 실크 스카프만 걸쳐도 얼마나 스타일리쉬하던지.

미국계 NGO에 일하면서는 실리콘밸리의 그들처럼 티셔츠에 청바지를 쟁여둬야했다.


한국의 대기업으로 이직한 후엔

정장 셋업과 '금융사 포스'가 나는 단화들을 구입했다.

남성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중성적인 인상, 강인하고 또렷해보이는 이미지는 필수였다.


이따금 옷장을 열면,

그 안엔 내가 살아온 시간과 사회적 역할이 줄지어 서 있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나는 숨겨뒀던 또 다른 나로 환복한다.

짧은 원피스, 찢어진 청바지, 파스텔 운동화, 곱창 머리끈.

평일의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알아보지 못할 모습이다.

그때 비로소 나는, 진짜 내 얼굴에 가까워진다.


**

태국 방콕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던 시절,

이모가 빌려준 콘도에 머물면서

관광객과 호텔들이 밀집한 거리를 지나 퇴근하곤 했다.


그 길목엔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과 육체미 가득한 언니들이 많았다.

이모는 그 길은 꼭 피해 다니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어느정도 방콕 생활이 익숙해진 뒤에는

지름길인 그 길을 피해 갈 이유를 못찾았다.


특히 내가 그 길을 걱정없이 활용할 수 있었던 건,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장 차림에 검은색 구두, 노트북 가방까지...

그들은 나를 '업무 중인 외국인'으로 인식했는지.

그들이 속한 세상과는 전혀 달랐던

내 스타일이 결국 나를 보호해준 셈이었다.


어쩌면 옷이 사람을 속이는 게 아니라,

그 옷이 꺼내는 ‘나’가 다를 뿐인지도 모른다.


오피스를 여는 순간 나는 직장인이 되고,

연인과 통화하면 애인이 되며,

명절엔 딸이 되고,

이젠 아이를 품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간다.


정장은 나를 용감하게 만들고,

캐시미어 스웨터는 조용한 내가 된다.

청바지를 입으면 자유로운 내가 튀어나온다.


내 안의 수많은 자아들이

그날의 옷을 통해 등장하는 것이다.


입지 않았지만, 입어보고 싶은 나

- 옷장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피팅하는 방이다


내 옷장엔 아직 태그도 떼지 않은 옷이 있다.

강연 무대에서 입고 싶어 산 검은 수트,

제주도 여행을 꿈꾸며 고른 바람막이 자켓

만삭이 되면 입을 임부용 청바지까지.


남편은 "하나 사면 하나는 버리자"는 옷장 총량제를 제창하지만,

나에게 옷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미래의 나를 준비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다.

(서운했다면 미안..ㅎ)


**

대학생 시절, 영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다.

원장님의 책장 한편에는 늘 고가의 명품 원피스가 걸려 있었다.

그건 '살이 빠지면 입겠다'는 의지의 상징이었다.


결국 원장님은 다이어트에 성공했고,

그 옷을 입고 대학 동기들을 만나러 떠났다.

웃으며 나가던 그 뒷모습이

어쩐지 참 멋져 보였다.

비록 그 옷은 '3일 천하'였지만...


**

나도 중요한 일정이 생기면

몇 달 전부터 쇼핑몰을 기웃거린다.

그날의 옷을 미리 준비하고,

그 옷에 어울리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그때 남편은 소중한 코디 조력자다.

물론 그의 취향과 내 취향은 다르다.

그가 반대해도 결국 사는 옷도 많지만,

그의 피드백을 듣는 과정 자체가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의 예행연습이 된다.


가끔은 그 옷들을 미리 꺼내 입어본다.

아직 오지 않은 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내 모습.

그럴 때 옷장은 마치

미래를 피팅해보는 방이 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수납장도, 더 많은 옷도 아니다.

다가올 하루를 상상하게 해주는

몇 벌의 설레는 옷이면 충분하다.



**

하루를 준비하는 가장 사적인 공간, 옷장.

그 앞에 선 나는 매일 다짐하고, 상상하고, 리허설을 한다.


"오늘은 어떤 내가 되고 싶지?"


그 물음은 결국

내 삶을 하나씩 조율해가는 작은 연습장이자

미래의 나를 꺼내보는 거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