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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Apr 22. 2023

IB가 뭔데?

너도 혹시 사라질 거니?

  몇 해 전 내가 속한 교육청의 한 해 교육 계획을 살펴보던 중 IB를 발견했다. IB는 이전에도 들어본 적 있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시이모님이 아이들 고등학교 보낼 때, IB 있는 학교 AP 있는 학교를 고려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 IB가 그 IB인가? 의구심이 들었고, 잠시 살펴본 결과 미국 고등학교에서 실시한다는 그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국제 바칼로레아)가 맞다는 걸 확신했고, 그 교육과정을 우리 교육청 학교에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본 거다. 그리고 2-3년이 흘렀고 나는 학교를 옮겼다. 외국어 고등학교의 초빙교사로 부임했고, 우리 학교는 각종 외국어 관련 사업에 베타 테스트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업무를 통해 알게 되었다. IB 관련 사업도 그랬다. 우리 학교는 IB 준비학교로 선정되었고, 교수학습공동체를 통해 소속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IB의 실현가능성을 의심했다. 나는 실컷 추진한 교육사업이 사라진 경험을 여럿 갖고 있기 때문에 학습된 무기력감 같은 것이 내재되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NEAT(National English Ability TEST: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였다.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토익, 토플과 같은 외주 시험에 의존하는 현실을 개혁하고자 교과부에서 만든 시험이었다. 나는 취지에도 공감했고, 잘 실현된다면 영어교육에 큰 변화를 가져와줄 것 같다는 믿음을 갖고 열심히 연수도 듣고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엄청난 예산과 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졌다. 학교 현장에서는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IB도 그렇게 될까 두려웠다. 나의 시간과 노력이 사라질까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태도의 변환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며칠간 불면증으로 인해 자꾸 새벽에 일찍 일어나게 된 것이다. 누워있는 것도 괴롭고 일어나 생산적인 뭔가를 해보자 고민하다 IB에 대해 탐색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또 언론에서 자주 접했지만, 내 눈으로 읽고 직접 탐구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IB에 내 발을 담그기 전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온라인을 통해 IB를 먼저 탐구해 오신 분들의 강의를 듣고, 인터넷을 통해 함께 탐구하는 학습 공동체 카페를 통해 IB가 무엇인지, 어디가 시작점이고, 어떤 개념으로 수업과 평가를 진행하는지 살펴보았다. 반나절의 탐구만으로도 나는 IB에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어교육을 전공하여 영어교사가 되었다. 외고에 부임 후,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 시절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경험을 많이 한다. 그때가 벌써 20년 전인데 지금의 아이들과 그때의 나는 똑같이 고통스러웠다. 수능영어 수업을 하면 여러 방면에서 현타가 오는 지점이 발생하는데 특히, 나는 글의 순서를 섞어 놓고 논리에 맞게 다시 순서를 배열하라는 문제를 풀 때가 가장 심한 타격이 온다. 물론, 글의 논리적 관계를 파악해서 올바른 순서를 잡는 과정에서 학습자의 영어독해력을 평가할 수는 있겠으나, 멀쩡한 글을 섞어 놓고 다시 배열하는 것이 학업적 성장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늘 의문이 든다. 고3 수업 시간에는 심지어 고득점을 위해 그 문항을 잘 풀기 위해서는 대명사와 연결사를 잘 살펴보고 빠르게 문제를 푸는 스킬도 설명한다. 아이들은 고통스럽지만, 현실을 바꿀 수 없으니 문제에 자신을 맞춰서 적응시킨다. 어느 순간 나는 아이들한테 미안해졌다. 어른이 된 지 한참 지났지만, 나는 아무런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고통을 극복했던 무용담을 나누며 아이들을 위로한다고 노력했지만,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다. 

 

  학생부 종합전형이 있지 않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학생부 종합전형이 학교 현장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우리 학교의 경우, 실제 많은 탐구 위주의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독서와 글쓰기 능력을 신장하기 위해 수업 시간을 통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내신 성적이 중요하다 보니, 수행평가보다는 정기고사를 통한 평가를 통해 학생을 서열화한다. 아이들은 정기고사도 챙기랴, 생기부에 기록할 활동들도 하랴 더욱 바빠졌다. 멀티태스킹이 어려운 아이들은 과제가 많은 학종을 준비하기 부담스럽다며, 내신은 포기하고 수능 성적에 올인해 정시로 대학을 가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후, 수업 중 진행되는 모든 활동을 소리 없이 보이콧하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교사들은 어떻게든 대학에서 우리 아이들을 잘 봐주십사 대학의 입맛에 맞는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기 위해 글쓰기 능력을 신장시키고 있다. 분명, 학생부 종합전형의 취지는 옳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이 학생 스스로의 역량으로만 오롯이 평가받을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Yes를 외치기는 어려운 것 같다. 


  IB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학생의 성장은 학생 스스로 기록하고, 교사는 기록을 꾸준히 살펴보고 피드백하며, 최종 결과는 객관적인 점수로 심플하게 제시한다. 그 일련의 과정이 꽤 전문적인 평가 과정으로 진행되어 세계의 수많은 대학들이 공정성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학습의 과정이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지지하고 수준에 맞는 교육과정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개별화된 학습 진행이 가능하다. 모든 평가가 객관식이 아닌 서술, 논술형으로 진행되어 아무것도 쓸 수 없는 평가는 없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더 알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낼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IB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IB가 현장에 적용되기까지 수많은 내홍을 겪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과정도 현실에 적용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일 테니까. 그래도 일단, 나는 그 길에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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