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세 아버지와 34살 아들의 티격태격 동거일기
2012년 안산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이후 부모님 집에 얹혀 살고 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내 월급통장 비밀번호는 어머니 생년월일로 된 상태다.
내 수입은 내가 달달이 갚고 있는 집값과 연금, 기타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어머님 손아귀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허나 인자하신 어머님께서는 부득이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매월 약간의 잔고만큼은 남겨두신다.
나는 내 월급에서 남는 잔고를 제외한 금액을 셈해보았다.
'월세'라고 부르기엔 금액이 꽤 크긴 하지만 나는 가져가시는 그 돈을 그냥 '월세'라고 부르고 있다.
아침에 먹는 선식과 사과, 주말에 먹는 밥, 빨래와 집에서 거주하는 비용, 각종 제공되는 문화생활, 심신안정 비용 등을 두루 합치면 대강 그 정도가 된다고 생각하고 맘을 내려놓고 살고 있다. (참고로 청소는 내가 한다. 그렇기에 나는 어떤 면으로 보든 보통의 세입자보다는 집주인에게 여러모로 봉사하고 있다.)
출근길에 집에서 나갈 때 아침식사 대용으로 사과를 먹는데 아버지는 내가 사과를 먹을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하신다.
"사과 맛있나?"
"네."
"그 사과가 누가 사온 것인지 아나?"
그럴 때마다 내 대답 역시 반복된다.
"월세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또 아버지와 자식, 아니 기묘한 집주인과 세입자의 대화가 반복된다.
"월세에 포함 안되어 있다."
"어차피 선물로 받으신 건데 왜 생색을 내십니까?"
"세입자한테 누가 이리 잘해주노?"
"섭섭하지 않은만큼 드리고 있습니다."
"안되겠다. 월세를 올리든가 세입자를 내쫓든가 해야겠다."
"......"
매일 반복되는 레파토리의 대화가 지겹지 않은 것은 아버지와 아들에서 집주인과 세입자의 역할을 해보는 것이 못내 재미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집주인은 아무리 세입자에게 잘해주어도 집주인일 뿐이고, 세입자 역시 마찬가지다.
허나 아버지와 나는 부자지간도 되고 임대인, 임차인도 되고 출근길 동무도 되고 사회생활 동지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의 대화가 흡사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고 편하다.
아마 아버지와 나는 이 역할놀이에 내심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와 아들만 하기에는 우리가 지낸 시간이, 그리고 우리가 지낼 시간이 너무나도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