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청소는 누가 하나요?

63세 아버지와 34살 아들의 티격태격 동거일기

by 병아리 팀장

우리 집은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를 한다.
한 주동안 집안일에 고생을 많이 하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아버지와 내가 일요일 어머니가 집을 비운 기간동안 청소를 한 것이 어느덧 5년째다.
문을 환기시키고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마대걸레질을 하고 쇼파, 책상 등을 손걸레로 닦고 설거지까지 해야 청소 일정이 마무리된다.
모든 청소가 그렇듯이 해도 티가 안나고 안하면 티가 확 나는 법. 청소의 속성이 그렇기에 이것을 했다고 누군가에게 당당히 자랑하기도 뭐하지만 안하면 확실히 누군가에게 귀책을 묻게된다.
내가 갑자기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마땅히 청소의 의무(?)가 부여된 우리집의 가장, 아버지께서 요새 들어 청소를 기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나이 탓, 가장의 체면을 말씀하시며 어떻게든 청소를 피하고 아침만 드시고 골프치러 나가려하시는 모습에 나도 슬슬 경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벌써 3주째 청소를 피하고 계신데 이번 주에도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또 청소를 미루려 하셔서 오늘은 결국 언쟁을 하게 되었다.

"내, 일요일에 교회갔다 사람 좀 만나러 용인 가야되니 청소는 니가 좀 해라."
"오늘까지 빠지면 4주 연속이라서 안됩니다. 청소는 둘이서 같이 하면 30분 조금 넘게 걸리니 청소하고 가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고. 애비가 밖에서 만나는 약속은 다 중요한 약속이고 돈이 걸린 비지니스야. 니 나보고 맨날 아흔 살까지 일하라 해놓고 비지니스 못하게 하면 쓰나?"

비지니스라고 하시지만 나는 안다. 아버지가 얘기하는 비지니스의 약속의 주체, 즉 개최자는 다름 아닌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약속 하루 전에도 혹시라도 비가 오지 않을까 날씨를 꼼꼼이 체크하시고 약속 변동의 가능성을 자르기 위해 클라이언트(실제로는 후배나 친구)들에게 다짐전화까지 받아두시는 그 철두철미함을. 그리고 가끔씩 내기골프를 치고 그 수입으로 어머니에게 용돈을 주시는 것까지도. (나는 못받았다.) 그런 것을 알기에 나도 이번엔 물러서지 않으려고 하는데 아버지는 내 속셈을 아는지 쐐기를 박는 발언을 이어갔다. (늘 똑같은 레파토리이지만)

"다른 자식들은 예순이 넘은 애비에게 '이제 그만 쉬십시오.', '제가 이제 모시겠습니다.'하면서 용돈도 두둑히 주고 집안 잡일 정도는 다 알아서 하는데 우리 집은 어떻게 된게 애비를 못 부려먹어 난리야. 먹여주고 재워주는데도 월세는 시원찮고 늘 애비한테 일해라, 일해라 하고. 애비가 밖에 중요한 약속이 있으면 '몸 조심히 다녀오십시오.'라고 얘기를 해야지, 그저 늙고 아픈 애비를 어떻게 부려먹을까 그 생각만 하니. 니 주변 친구들 아버지 뭐하나 물어봐라. 다 쉬거나 그동안 번 돈 까먹고 살고 있지. 아니면 자식한테 용돈받고 살던가. 아직도 학자금 못갚은 애들도 많을텐데 넌 등록금도 애비가 내줬으니(일부만 내주신거다. 학교다닐 때 알바를 3~4개 하면서 반액 이상은 내돈으로 냈다. 나머지 내주신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평생 애비한테 못갚을 빚을 진거야. 아나?"

분명히 얘기는 청소로 시작한 작은 소동이었는데 이제는 흡사 전쟁에 가까울 정도로 이야기가 커졌다. 어떻게든 30분 남짓의 성스러운 가사노동을 피하려고 모든 수단, 방법을 총동원하시는 아버지에게 나는 결국 두 손 들었다. 내가 패잔병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조용히 퇴장하자 아버지는 승리의 기쁨과 함께 한 마디 더 하셨다.

"애비가 언제고 니랑 같이 있을 수 있는게 아니야. 항상 아버지에게 감사하고 작은 것으로나마 보답하고 효도하려고 해야해. 알겠나? 니 친구 중에 아버지 돌아가신 분도 있재? 평소에 잘해야 나중에 애비 아플 때 후회 덜한다. 평소에 잘해. 평소에."

자식으로 사는 것이 편리할 때도 많지만 이럴 때. 아주 가끔, 그리고 작디 작은 소동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이럴 때...결혼의 충동이 생기곤 한다. 가장의 큰 소리에 쓸쓸이 퇴장하는 나의 입장과 본분을 느낄 때...이게 가장의 특권이구나...참 쓰디 쓰다.

이 세상의 가장들이여...그대들의 노고와 고민은 잘 알지만 그렇다고 약자의 자존심까지 밟진 말아주오. 약자는 약자라는 것을 느낄 때 가장 서러운 것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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