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세 아버지와 34살 아들의 티격태격 동거일기
나이 서른 중반에 접어들자 주변에서 부쩍 잔소리를 듣게 된다. 결혼은 언제 할 것이냐는 둥, 회사는 왜 그리 자주 옮겼냐는 둥, 옆집 정환이는 너랑 동갑인데 벌써 애가 있다는 둥 어머니네 교회 집사님들과 친구분들은 나를 걱정하다 못해 깊은 우려의 시선으로 감시하고 있다. 마치 제철에 팔리지 않아 창고로 이월되기 직전인 재고상품을 보듯이.
사실 내 입장에서 마냥 한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아직까진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고 싶은 경향이 강해서 결혼을 정말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진 않고 있다. 그렇기에 원래대로라면 남들이 뭐라하든 신경끄고 내 일이나 열심히 하고 살아야 하는데 요새는 다른 이유 때문에 부쩍 결혼이라는 단어를 내가 되려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내 가족 중에 나의 결혼에 대해 (나 자신보다 더)회의적으로,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그것이 실현되길 원하지 않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나의 아버지다.
아버지가 나의 결혼에 대해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은 나의 모난 성격때문도 있지만 3년전 형의 결혼식 때 치룬 고생 때문인듯 하다. 형의 결혼식 날, 나는 아버지의 그동안 못보았던 좋은 면을 많이 보았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인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600명이 넘는 하객이 입장하고 100개 가까운 화환이 결혼식장 앞에 도열한 것을 보니 장관이 따로 없었다. 결혼에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던 내가 결혼에 대한 (그나마)좋은 인상을 받게 된 것이 바로 형의 결혼식이었고 그것은 두말할 것 없는 아버지의 화려한 인맥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결혼식 내내 자리에 앉을 틈 없이 짐을 나르고 하객들을 부지런히 안내하면서도 보람이 있었고 언젠가 (있을지 모르겠지만)내 결혼식 때도 이렇게 성대히 할 수 있겠지라는 희망에 은근한 기대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결혼식 하객들에게 보낼 편지 준비와 우편배송, 축의금과 화환 명단 작성, 결혼식 방문에 대한 감사의 문자도 마치 내 일인마냥 신이나서 열심히 했었다. 근데 그런 나의 수고와 희망에 찬물을 끼얹고 계신 분이 계신데... 바로 우리 아버지다.
아버지가 나의 (언젠가 실현될지 모르는)결혼식에 찬물을 끼얹고 계신 것은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은퇴 문제.
"이제는 그만 쉬어야겠어. 몸이 예전같지 않아."라는 말로 은퇴의 발언을 번복하시는 아버지. 주중에 회사 출퇴근 때는 '쉬고 싶다'노래를 부르시고 주말 골프 약속때는 새벽 4시에 기상하셔서 부지런이 짐을 꾸리시며 휘파람을 부시는 우리 아버지. 일하실 땐 은퇴를, 노실 때는 현역을 외치시는 아버지를 보면 마음 속 깊은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아직은 말만 짖궂게 얘기하시는 단계같지만 요새 부쩍 쉬고 싶다는 말이 많아진 것을 보니 한 귀로 흘리면 안될 것 같다.
그런 일이 있어선 안되지만 행여나 내가 결혼하기 전에 현직에서 물러나시게 되면.... 형의 결혼식 때의 그 장관이 내 결혼식 때는 실현되기 어렵지 않을까. 실상 결혼에 대해서는 큰 욕심이나 절박함은 없지만 형이 누린 그 축복(?)을 내가 못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괜히 마음이 다급해졌다. 마치 내 앞에 놓인 떡을 남에게 뺏길까 두려워하는 강아지처럼.
그런 생각에 나는 아버지에게 내년에도 재계약이 되어야 한다고,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현직에 꼭 계셔야 한다고 매일 같이 문안인사 여쭙듯이 말씀드린다. 아버지는 마치 역신을 보듯 나를 지긋지긋해하시지만 나의 있을지 모를 결혼식을 위해 집요하게 아버지의 안부(?)를 여쭙고 있다.
다른 문제 하나는 아버지 스스로가(어쩌면 어머니도) 나의 결혼을 그닥 원하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최근 은근히 반대하는 모습도 내비치곤 하신다. 이유인즉슨 지난 번 형의 결혼식을 겪으면서 자식 혼인행사 자체에 역정을 갖게 되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가정에 제공하는 유무형의 기여, 즉 다달이 지급되는 월세와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노동력, 청소와 분리수거, 고장난 물건을 고칠 인력, 스마트폰 등 현대기기의 학습을 담당해줄 누군가의 필요성 등을 셈해보신 결과 그냥 밑에 데리고 사는 것이 낫다고 어머니와 모종의 합의를 하신 것 같다. 어머니도 주변에 황혼이혼과 독신으로 살고 있는 친인척이 있기 때문에 딱히 결혼을 강요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래서 아버지 심기를 확인할 요량으로 없는 여자 친구를 만들어서 지금 만나는 사람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는 딱히 반응은 없으셨지만 얼굴을 보니 왠지 심드렁하신 표정이었다. 나는 바로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저 지금 결혼하면 축의금이나 화환 많이 받을 수 있을까요?"
아버지는 듣지 못할 무언가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감으며 말하셨다. 단 두 글자로.
"없다."
예상은 했지만 이래도 물러설 순 없어서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아직 현직에 계시고 매주 약속도 계신 분이 왜 결혼식 초대할 분(이라고 쓰고 축의금 줄 사람이라고 읽는다)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동안 남의 결혼식 가셔서 축의금 뿌리신게 얼마인데..."
이 역시도 아버지 머릿속에 있는 질문인듯 하였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하셨다.
"니 형 결혼식 때 다 받았다. 이제 더 받을 사람도 없어. 그때 그 인맥이 다야."
"아니...그게 무슨...그럼 내 결혼식 때 초대할 사람은요?"
"없다...다 죽고 은퇴하고 이젠 없어. 필요하면 니가 직접 구해라."
그렇게 나의 막연한 결혼에 대한 희망은 사라졌다. 꿈도 희망도 없다는 인터넷 은어가 갑자기 생각났다. 생각도 안하던 결혼이었지만 그나마 살짝 기대하던 것이 축의금이었는데 아버지의 한 마디에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다. 나는 충격과 상실감에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렸다.
"그럼...전 결혼 안합니다. 할 수가 없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쐐기를 박는 말을 하셨다.
"그럼. 하지마. 안하면 되지. 그냥 이 집에서 나랑 니 엄마 부양하면서 살아. 전구도 갈아끼고 쌀오면 베란다로 나르고..."
더 이상 말을 이어가봐야 후회할 말을 할 것 같아 나는 일단 작전상 후퇴를 결정했다. 마저 말을 끊지도 못하고 내 방으로 퇴각하는데 목적하시는 바를 성취하신 아버지는 추격 대신 마지막 한 방을 날리셨다.
"니 오늘 한 말 잊지 말그래이. 당신도 들었재? 애비, 어미 모시면서 그동안 받은 은혜 갚고 살그래이. 니 아무리 해도 다 갚지도 못한다. 나중에 애비 늙어서 운전 못하고 못걸으면 니가 운전하고 부축하고 그래야지. 알겠나?"
그 날 이후 나는 일방적 공세를 퍼붓던 입장에서 아버지와 공수를 서로 교환하는 형세로 바뀌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은퇴없는 직장생활을 압박하고, 아버지는 나에게 결혼포기를 압박하는...일반 가정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아버지와 자식의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P.S : 지난 번 승리 이후 요새 은근히 아버지는 나에게 결혼 포기(?)를 종용하는 발언을 부쩍 하신다. 마치 내가 아버지의 재계약 여부를 계속 말씀드리듯이.
"요새 사회에서 결혼은 꼭 필요한게 아니야. 제 성격대로 살면 되는 세상이지...안 그러냐?"
"꼭 결혼을 해야겠나? 애비 이제 쉬고 조용히 살고 싶은데..."
"니 성격에 결혼은 아닌 일이다. 니 어릴 때 강아지 좋아한다고 사줬더니 반년도 못키우고 다 죽이지 않았나...학교에서 사온 병아리도 한 달도 못살리고....사람보다 오래 산다는 거북이도 끝까지 못키웠지...그런 놈이 결혼은 우찌 하니? 우찌해? 괜히 죄짓지 말고 그냥 살기래이."
나는 속으로 되뇌인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