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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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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Aug 22. 2017

보내지 못한 답장

엊그제 당신이 보낸 문자에 감사드리오. 나 그때 많이 힘들었다오. 믿고 있던 무언가가 무너져 집으로 내쫓기듯 도망칠 때였소. 세상에 내 편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나가는 사람 모두가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오. 나에게 당연하듯 약정되어 있던 성공이 허상이었다는 것이 드러남으로 나는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오. 힘들게 집에 돌아오고 난 후에도 놀란 마음은 진정이 되지 않았고 침대에 시체처럼 누워있었소. 밑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듯 나는 침전하고 있었고 세상의 모두에게 잊혀지길 바랬다오. 내가 이리 힘들어도 무심히 찾아오는 내일이 무서웠소. 계속 앞으로 걸어가자는 이성과 도망치고 싶다는 본능이 내 안에서 치고받고 난리를 피울 때 세상에 나 혼자뿐인듯 했다오. 
그 때 때르릉하고 울린 핸드폰 소리와 함께 도착한 당신의 문자. 반년만에 온 당신의 문자에는 잘 지내고 있다고, 보고싶다는 말 뿐이었소만 나에겐 그 두 마디가 세상 어떤 말보다 무겁게 울렸었다오. 당신을 홀로 사랑하다 지쳐 연락을 끊고 당신을 잊고 지냈소. 타임라인에 당신의 이름을 검색해볼까하는 유혹도 뿌리치고 회사와 집만 오가며 살았었소. 혹시나 하는 맘에 늘 당신을 떠올리게 만드는 희망고문이 싫어 억지로 당신을 미워하고 증오했었소. 
그러다 찾아온 어려움에 몸과 맘이 무너질 때 당신에게 연락이 온 것이오. 당신은 내게 상처주기 전이나 후나 늘 똑같소. 무심히 던진 당신의 호의에 나는 살았다 죽었다를 반복하오. 이제 당신의 한마디에 나는 살았지만 그렇다고 당신과 인연을 이어가진 않을거요. 내가 이 입가심에 취해 당신에 다가간다면 다음엔 이런 기적조차 기대하기 어려우니까 말이오. 
그래서 차마 당신에게 답장을 보내지 못한 것이오. 오늘 이순간 이후로 나는 그대를 잊고 내 삶을 살겠지만 내 마음 한켠에 있는 당신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여기 놓고 가겠소. 주인없는 이 공간에 오랫동안 있을 내 마음, 아무도 줍지 못하도록 나 홀로 여기 두고가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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