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은 생명과 연관이 깊은 특성이다.
유전자부터 세포, 개체, 집단까지 생명의 모든 수준에서 발생하며 필수적이다.
-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 진화 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
진화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말하길 '기만'은 인간을 넘어 동물이라면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기질이라고 한다. 모든 종은 경쟁을 하며 가장 적은 비용으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기만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허나 자가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면 어떨까? 로버트 트리버스는 인간의 뇌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정보를 찾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파괴한다고 얘기한다. 자신이 혹사당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을 포기하면서까지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하는 모습,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만화나 소설에서 의지드립 등을 내세우며 돌진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철저한 인간의 이성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무의식과 본능의 영역일 줄이야.
자기기만은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목적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의 의도를 읽지 못하게 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게끔 유도하는 목적도 있다. 예를 들어, 치킨 게임의 경우 서로 마주보는 상황에서 차를 운전하여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패자가 되도록 세팅된 게임인데 이 때 핸들을 뽑거나 정말로 충돌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방은 도망친다는 것이다. 이는 상대로 하여금 내가 통제된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어필하여 본인의 목적을 포기하게끔 만든다. 로버트 트리버스는 이를 "다른 사람을 잘 속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기기만을 더 공고화하기 위해 스스로의 거짓말을 진심으로 믿으며 이를 통해 상대방이 나의 말이 '진짜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은 정말 목적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게끔 무의식 단계에서 설정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게 너무 심해지면 리플리 증후군처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인간의 뇌는 특정 사실을 믿으면서도 다른 행동을 하게 하는 위선자 같은 행동을 하도록 설계되었다. 정보가 뇌의 각기 다른 장소에 있는 한, 알면서도 동시에 계속 모르는 것이다.
- 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