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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ossenzersdorf Aug 24. 2017

14. 마드리드

숨 막히는 더위의 도시

마드리드는 우리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지만, 이 글은 마지막 글이 아니다. 마드리드에 숙소를 잡아놓고 중간에 톨레도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까지는 늘 그랬듯 기차를 이용했는데, 이 기차는 생각보다 좋았다. 불편한 점은 승차가 불편했다는 점인데, 일단 바르셀로나-마드리드 구간이 국내 여행이라는 점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검색이 철저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객차 내부는 꽤 잘 되어 있었다.


마드리드에는 유명한 프라도 미술관이 있다. 선정하는 사람 마음에 따라서는 세계 몇 대 미술관에도 꼽히는 모양인데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기로 했다. 파리에서의 수많은 미술관 투어로 미술 관람 과잉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미술관에 가길 꺼려했다.

대신 궁전에는 갔다. 파리 편에서 언급했지만 결국 유럽의 궁전들은 비슷비슷하다. 성당의 경우 바티칸을 갔다오면 대부분의 성당에서는 감흥이 느껴지지 않고(사그리아 파밀리아는 예외로 하자. 아직 가봤지만 가보고 싶은 곳인 롱샹 성당도 예외로.), 궁전은 베르사유를 갔다오면 그렇다. 대단치 않은 곳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뿐이다.


이후에는 세르반테스 기념비가 있는 스페인 광장으로 갔다. 중요한 건 걸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먼 거리는 아니지만 정말 덥고, 덥고, 더웠다. 정말 더웠다는 기억 밖엔 없다. 여름에 유럽으로 여행가면 더운 날이 원래 많지만, 다행히도 그동안 더운 날은 많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동안 묵혀뒀던 더위가 마드리드에서 한꺼번에 몰려온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홈 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로 갔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내부는 관람할 수 없었다. 그런 시간인데도 더웠다. 그래서 겉만 둘러보다가 아디다스 상점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 동안 쇼핑했다. 참 시원한 곳이었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 중 한 명인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죽은 지 얼마 안 된 날이었다. 그래서 그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크게 붙어 있었다.


우리는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그리고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녔다.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 잘 먹는 것인가. 웍에 아시아 음식을 하는 곳도 있었는데 맛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스페인까지 와서 아시아 음식을 먹을 이유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식집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쭉 돌아다녔는데 La Barraca라는 레스토랑이 보였다. 파에야도 팔고 해서 맛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맛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망설여졌다. 게다가 이 가게의 가격은 전혀 착하지 않았는데, 파에야 한 그릇을 그 가격에 먹는 거라면 돈을 내고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명당 그 가격을 내는 것이라면 부담이 되는 가격이었다.


그 때 한 일본인이 나섰다. 우리에게 혹시 이 집에서 먹을지 말지 고민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렇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집은 자기가 마드리드로 출장을 올 때마다 꼭 들러서 먹고 가는 곳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꼭 한 번 먹고 가라고 했다. 우리는 한 번 먹어보기로 했다.

꽤 고급 분위기가 나는 식당이었다. 우리는 주문을 하면서 "no salt"를 외쳤다. 파에야가 나오기 전에 올리브가 반찬처럼 나왔는데 짜지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짜지 않은 마지막 음식이었다. 올리브 다음에는 파에야가 나왔는데 우리는 두 종류의 파에야를 시켰다. 그리고 둘 다 매우 짰다. 매우 매우 짰다. 짠 것만 빼면 그렇게 맛없는 음식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짜서 다른 생각이 안 들었다.

결국 우리는 다 먹지 못하고 식당에서 나왔다. 참고로 붙어있는 가격은 한 그릇 당 가격이 아니라 1인당 가격이었다. 넷이서 약 100유로 정도를 내고 나왔다. 밥 먹기 전에 나타났던 일본인이 호객꾼이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돈이 많고 짜게 먹는 일본인이었던 건 확실해 보인다. 출장올 때마다 먹는다는 것도 출장을 도대체 얼마나 자주 왔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후에 최현석 셰프가 나오는 '셰프끼리'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La Fonda에서 먹물 파에야를 먹고 그렇게 혹평을 할 정도였으면 여기서 무슨 말을 할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80년 넘게 파에야를 만든 집이라고 하니 뭔가 내공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파에야를 정말 잘 알고 먹으면 그리고 스페인의 짠 음식에 길들여지면 맛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파에야는 원래 육수에 밥을 넣어 만든다고 하는데 사실 'no salt'를 부탁하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육수를 미리 짜게 만들어뒀으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다만 어쨌든 한국인 베낭여행객에겐 추천하고 싶지 않은 식당이었다.


마드리드를 떠올리면 '강렬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강렬하게' 덥고, '강렬하게' 짜고. 적어도 내 머릿속엔 그렇게 남았다.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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