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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ossenzersdorf Oct 29. 2015

여행의 기술

청산도 둘레길 1코스

여행이 끝나고 KBS2의 <1박 2일>을 봤다. 가을 OST로드라는 특집이었다. 

프로 자체야 웃기니까 재밌게 봤다. 하지만 영화 속 배경이 되는 곳을 찾아다니는 특집이었는데 <인정사정 볼 것 없다>나 <봄날은 간다>와 같은 영화를 안 봤으니 공감을 할 수는 없었다. 


전에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그 책을 읽고 멘붕에 빠진 까닭은 그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 누군지 몰랐기 때문이다. 보들레르니 워즈워스니 하는 사람들은 내가 그 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몰랐던 사람이고, 그 중 일부는 아직도 누군지 모른다. 작가는 이 사람들을 독자가 알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말을 하는데, 나는 그 사람들이 누군지를 모르니 내가 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패널들이 나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채널을 돌리다 어쩌다 보게 되었는데 하필 <여행의 기술>을 읽은지 얼마 안 된 때라 재밌게 봤다. 한 패널이 "꼭 대단한 곳을 가야 좋은 여행인 것은 아니다. 여행은 경험이다. 아름다움은 유럽의 유명한 성당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목욕탕의 보글거리는 물방울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때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맞는 말이라고 본다. 여행의 의미는 자신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전라도 음식은 참 맛있다. 지금도 광주에 살긴 하지만 도시에 살다보면 진짜 맛있는 것들을 놓치기 쉽다. 

시골은 다르다. 청산도에 막 도착해 고등어 백반을 시켰는데도 너무 맛있었다. 고등어가 원래 이런 맛인가 싶었다. 나물도 마찬가지다. 원래 나물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도 맛있었다. 마법같은 양념이 더해진 것도 아니고, 진귀한 재료를 쓴 것도 아닌데 맛있었다. 자연의 맛이 최고의 맛이었나 보다. 그냥 맛있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나를 감동하게 한 것은 코스모스였다. 시기를 딱 맞았는지 코스모스가 한창 예쁘게 피어있었다.

만발한 코스모스

만발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바닷가에서 서편제길로 올라가는 내내 코스모스가 활짝 펴 있었다. 으레 이런 곳이면 사람이 많기 마련이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어서 한적하고 좋았다. 


수확이 끝난 논의 짚더미

코스모스가 만발한 언덕을 지나면 서편제 세트장이 나온다. 서편제 세트장에서 서편제길을 따라 걷다보면 봄의 왈츠 세트장도 나온다. 좀 더 가면 피노키오 세트장도 나온다.

서편제길. 우측에 있는 하얀 집이 봄의 왈츠 세트장.

한때 일본인 관광객들이 남이섬에 몰렸던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겨울연가>를 보고 경치가 좋다고 생각해서 온 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남이섬에 와서 배용준과 최지우의 모습을 떠올리고 공감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서편제길에 있는 스피커. 서편제길에는 서편제에 나온 소리들이 울린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모른다.

나는 영화 <서편제>도, 드라마 <봄의 왈츠>도, 드라마 <피노키오>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공감할 일도 없다. 심지어 <봄의 왈츠>에 한효주가 나온 것도 몰랐다. 한효주랑 결혼한 남자배우는 사진으로 봐도 누군지 모르겠다. <피노키오>도 세트장에 가기까지 주연배우도 몰랐다.


그러니 감흥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추억할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했을 이 장소가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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