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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ossenzersdorf Aug 17. 2016

9. 디종

미식의 도시

처음에 친구들이 액상프로방스 같은 한적한 도시를 한 번 가자고 했다. 나는 디종을 대신 제시했다. 어차피 베네치아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프랑스 쪽으로 가기로 했는데 디종은 파리 행 야간열차의 중간 기착지이기도 했거니와 스트라스부르로 가기도 편했고, 나중에 다시 파리로 가기도 편했다. 디종 자체도 구경하기에 나쁘지 않은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디종에 이틀을 머물면서 하루는 디종을 구경하고 하루는 스트라스부르를 구경하기로 했다.

야간열차는 시설이 그닥 좋지는 않았다. 특히 화장실이 불편했는데 그래서 같이 간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내가 예전에 탔던 야간열차는 이보다는 시설이 나쁘지 않았기에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그래도 기차는 떠났고 우리는 기차가 달리는 동안 푹 잤다.


자고 일어나니 디종이었다.(가끔 디죵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주스(o), 쥬스(x)인 것처럼 ㅈ,ㅊ에는 이중모음이 따라오지 않으므로 디종이 맞다.) 디종 여행에는 미리 준비한 여행책자 같은 게 존재하진 않았다. 그래서 처음 숙소에 들러 짐을 놓고 나오는 여정이 매우 힘들었다. 일행 중에는 고등학교 때 불어를 배워 아주 짧은 불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는데 무용지물이었다. 디종 사람들의 사투리가 매우 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잘 준비된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었다. 여행안내소에 가니 한국어로 된 여행 안내책자가 있었다. 번역기를 돌린 건지, 한국 말이 서툰 프랑스인이 쓴 건지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한국말로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디종은 도보로 도시를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특히 길바닥에 이렇게 올빼미가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주고 있어서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올빼미만 잘 따라가면서 책자를 잘 보면 이 도시의 문화유적에 대한 정보는 다 파악할 수 있다. 가끔 이해하기 힘든 괴상한 한국어만 잘 해독하면 말이다.


첫 행선지는 다흐시 가든이라는 곳이었다. 다흐시 가든 옆에는 투어 두세군데에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투어가 그 때 살짝 끌렸어서 만약 개인적으로 온 거라면 계획을 수정할 생각도 있었지만, 그런 게 아니었고, 투어는 갑자기 예산에 집어넣기엔 아주 저렴한 편은 아니었고,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그다지 내키지 않은 듯했다. 결정적으로 이 투어가 한국말을 지원하지 않았다. 6개국 언어가 지원된다고 하는데 한국어는 없었다. 한국어가 없는 건 유럽에서 오디오가이드를 빌리거나 할 때 흔히 겪는 일이다. 투어는 포도밭, 와이너리 투어와 미식 투어, 송로버섯 찾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토스카나 편에서도 말했지만 어차피 나도 당시엔 와인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디종을 돌아다니기로 하고, 원래 계획대로 다흐씨 가든에 왔다. 잘 꾸며진 정원이었다. 나무도 있고, 꽃도 피어 있어서 다른 거 할 게 없고 그냥 단지 사진찍고 놀았다. 정원 한 쪽에는 놀이터가 있었다. 놀이터에는 한국에서 흔히 보지 못했던 놀이기구도 있어서 또 나잇값 못하고 실컷 놀았다.


다흐시 가든 건너편에는 다흐시 광장이 있다. 다흐시 광장을 지나면 번화가가 나온다. 백화점도 있다. 친구들은 쇼핑을 하기도 했다. 다만 딱히 물건이 싸거나, 많거나 하지는 않다. 번화가를 조금 지나쳐 그 다음 행선지인 노트르담 성당에 가는 길엔 식료품점이나 와인 가게가 많았다. 와인 가게는 디종에 정말 많긴 많았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왜 와인 가게마다 땅바닥에 고리가 있어서 지하로 내려갈 수 있게 만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와인 가게 지하에 와인이 또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지하에 카브가 왜 필요한지는 몰랐다. 그냥 창고같은 개념인 줄 알았다.

디종이 머스타드로 유명한 도시라는 것도 거기 가서 알았다. 머스타드가 겨자란 것까진 않았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머스타드에 대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들어간 한 가게에는 머스타드가 정말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그냥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다. 머스타드를 종류별로 시식할 수 있는 기계같은 것도 있었는데 그런 데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그냥 다양한 머스타드가 있다고만 생각했다. 근데 만약 사왔어도 한국에서 그걸 먹을 일이 얼마나 됐겠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부르고뉴 와인을 딴 적도 있다. 부르고뉴 와인 중 비싼 건 진짜 비싸서 나는 마트에 있는 비교적 싼 와인을 마셨다. 부르고뉴 와인을 마신 건 부르고뉴에 대한 감상이 더 잘 떠올라서 부르고뉴에 대한 글이 더 잘 써질 것 같아서였지만 그런 것 같진 않다. 그리고 대부분의 글은 와인을 마시지 않았을 때 완성됐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더 잘 알고 갔었더라면, 혹은 이번 여름에 갔다면, 혹은 이번 여름에 다시 갔다면 지금쯤 디종에서 사온 머스타드를 곁들인 스테이크를 부르고뉴 와인과 함께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돈만 더 내면 굳이 갈 필요 없다는 사실은 무시하자.) 하지만 아쉬움이 묻어나는 것도 여행이 가져다주는 소중한 경험이다. 또 그런 아쉬움이 여행의 기억을 더 가치있게, 더 오래 남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노트르담 성당은 유럽여행을 많이 다녀 본 사람이라면 질릴 법도 한 성당이지만 미적으로나 규모로나 유럽의 다른 성당들에 비해 떨어지는 성당은 아니다. 다만 디종에 오는 사람이 적고 성당에 바짝 붙어있는 건물이 많아서 웬만큼 좋은 렌즈를 쓰지 않고는 사진을 찍기 힘들기도 해서 덜 유명한 것 같다.

디종은 평화로웠다.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아닌 탓에 쉬는 가게도 많았다. 그리고 그 중에는 유난히 부동산이 많았다. 디종에 부동산이 많은 이유를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도심에 있는 아파트나 주택보다는 값비싼 교외의 주택을 거래하는 듯했다. 실물도 못 보고 불어도 못 하니 그저 추측일 뿐이지만 부동산 밖에 붙여진 사진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생 미셸 성당이다. 그냥 지나가던 길에 있는 성당이다. 기억에 남는 성당은 아니고 우리가 간 곳은 위에서 본 노트르담 성당과 생 베니뉴 성당이라는 곳이다. 생 베니뉴 성당 앞에는 생 필리베르 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는 안에 미사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성당보다는 이런저런 다른 목적들로 쓰였기에 외양은 교회지만 내부는 교회답지 않고 황량했는데 그래서 더 재밌는 장소였다. 어째서인지 두 곳에서 찍은 사진은 없지만 그 두 곳도 꼭 가볼 곳 중 하나다.


우리는 도서관도 들어갔다. 원래 도서관은 들어가서 사진찍고 돌아다니면서 소란을 피우면 안 되는 곳이긴 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조용히 책을 보는 척하는 사진을 찍었다. 당연하지만 어떤 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당에서는 소소한 강연같은 것도 하는 것 같았는데 도서관 전체적으로는 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우리나라 도서관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여기는 디종 시청이다. 물론 시청에 볼 일이 있어서 간 건 아니고 첫째는 이 건물이 중세 부르고뉴 공작이 살던 곳이었고, 둘째는 그래서 부르고뉴 공작이 힘이 좀 있었을 때 얼마나 화려한 삶을 살았는지 등을 보여주는 전시관이 있었다. 전시관은 전체적으로 자랑하는 분위기였다. 가장 압도적인 인상을 남기는 유물은 역시 관이다. 가보면 무슨 뜻인지 안다. 전시관에 있는 설명에는 부르고뉴 공작들 이름이 하나둘씩 나오는데 프랑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따라잡긴 쉽지 않다. 


이 앞에는 리베라시옹 광장이 있다. 반원형으로 생긴 광장인데, 특별할 게 없긴 하다. 시청에 있는 전시관을 모두 구경하고 광장 반대편으로 나가면 정원이 있다. 우리는 거기 있는 큰 나무 밑에 한참 있었다. 비가 와서. 여기서 아까 말한 생 베니뉴 성당까지만 더 가면 부엉이가 알려주는 여행은 대충 끝이 난다.


여담이지만 디종의 교통수단은 주로 버스다. 인구가 많고 교통체증이 많은 도시는 아닌 듯하고 버스로 모든 이동이 충분하다. 버스는 일반적인 버스가 두 대가 붙어있는 듯한 굴절이 되는 버스인데 겪어본 바에 따르면 굉장히 깔끔하고 깨끗하다. 놀라울 정도로.


버스를 타려면 버스에서 결제를 하는 것보단 미리 교통카드를 구하는 편이 낫다. 위에 있는 게 1회용 교통카드 같은 건데 돌려주면 카드값은 돌려준다. 버스를 몇 번 탈 건지 미리 말하면 그만큼 충전해줬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는 숙소 앞에 담배가게가 있어 거기서 바디랭귀지로 충전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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