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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ossenzersdorf Feb 16. 2017

10. 뮐루즈

기대 이상의 경험

뮐루즈는 잘 알려진 도시는 아니다. 사실 일부러 찾아갈 만한 도시도 아니다. 그렇지만 가게 됐다. 사정은 이랬다. 전편에서 밝혔지만, 우리는 숙소를 디종에 두고 스트라스부르를 당일치기로 갔다오기로 했다. 그런데 기차 시간표 상 뮐루즈에서 환승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차피 스트라스부르는 하루 종일 여행할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뮐루즈에서 잠깐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뮐루즈에서 스트라스부르까지는 어차피 매 시간 지방열차가 다닌다.


같은 알자스 주이기 때문이다. 소설 <마지막 수업>으로 유명한 그 알자스다. 보불 전쟁 이후에는 독일이 되었다가, 1차대전 이후에는 다시 프랑스가 된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이다. 알자스는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뮐루즈에 볼 건 박물관이다. 볼 게 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동차박물관이나 철도박물관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우리가 볼 건 자동차박물관이었다. 자동차박물관은 역 앞에 있는 건 아니어서 트램을 타고 가야했다. 새로운 도시라 새로운 승차권이 필요했다. 역 앞에 있는 기계로 승차권을 끊을 수 있는데,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정보가 없으니 기계를 붙잡고 한참을 고민해야 할 뻔했다.

그 때 친절한 시민이 도와주셨다. 뮐루즈에는 가족권이라는 게 있었는데, 5명까지는 함께 움직이면 굉장히 싼 가격에 트램을 탈 수 있었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이 안 나지만 €5가 넘진 않았다. 도와주신 분은 가족권을 뽑주시더니, 돈을 받지 않으셨다. 파리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친절함이었다. 덕분에 트램을 공짜로 이용하게 됐다. 아들과 함께 온 아버지셨는데,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트램 정거장에서 내린 후 자동차박물관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별히 멀리 있다거나, 가는 길이 복잡하다거나, 설명이 부실하다거나 하진 않은데 일단 불어가 잘 안 되고, 눈에 띄는 건물이 아닌데다, 결정적으로 군중이 없다. 유명한 관광지들은 인근 지하철 역에서 내리기만 하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향하고 있어서 누구든지 내가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긴 아니었다. 애초에 트램에서 내려 박물관으로 가는 사람이 많지 않고, 박물관도 멀리서 보면 무슨 학교같아서 한 눈에 찾기 어렵다. 정면에서 정문을 보면 자동차박물관처럼 생긴 것도 같지만 트램 정거장에선 잘 안 보인다. 건물 앞에 개울이 있고, 그 건너편에 주차장이 넓게 있으면 그걸 보고 찾는 게 빠르다. 사실 트램 정거장 바로 옆에 있긴 하다.

그렇다고 내부에 사람이 적은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내 앞에 서 있던 분은 네덜란드에서 오셨다고 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자기도 부산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면서 인연을 강조했다. 네덜란드에서 여기까지 온다는 게 놀랍긴 했다. 이 분 말고도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서 온 것 같긴 했다. 독일이나 스위스는 뮐루즈가 워낙 가깝긴 하지만.

들어가는 길은 꽤 길다. 길에 자동차와 함께 여러 설명이 적혀 있다. 그렇지만 다 볼 필요없이 바로 내부로 입장하면 된다. 이유는 모르지만 다들 그랬다.

내부에는 자동차가 많이, 정말 많이 있다. 특히 옛날 차가 정말 많다. 자동차의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데, 오디오가이드가 없어서 무슨 내용인지는 알지 못했다. 한글 설명은 당연히 없다. 오디오가이드가 있었다고 해도 어차피 그걸 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을 것 같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시도해도 좋을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동차만 있는 건 아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자동차와 관련된 영상을 보여주는 장소도 있다. 하지만 알아듣지 못하므로 넘어가도록 하자. 자동차 공장에 들어가본 적이 없어서 신기하긴 했다.

아마 자동차 박물관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여기가 아니었나 싶다. 당초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가장 재밌는 경험이었다. 자동차에 타면, 그 자동차를 돌려준다. 360도로 마구마구. 생각보다 재밌다. 익스트림을 즐기기 위해 박물관에 올 필요는 없지만 이왕 왔다면 필수 코스인 건 분명하다.

옛날 자동차에 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만들어진 곳도 있었다. 옛날 자동차는 덮개가 없어서 빠른 속도로 달리게 되면 추울 테니 저렇게 따뜻하게 입어야 했다고 한다. 안전을 위해 헬멧도 써야 했고. 사진은 당연히 저렇게 찍는 건 아니고 각도를 잘 맞춰서 찍으면 시골길을 달리는 자동차에 탄 것처럼 찍혔을텐데 좀 아쉽다. 진실을 저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다니.

스포츠카도 있다. 별로 관심이 없어서 대단한 자동차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것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스포츠카에 관심있는 사람은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당연히 탈 수 없는 자동차이지만 곧 탈 것 처럼 찰칵! 나오는 길도 들어가는 길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상점에서 기념품 같은 걸 살 수 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자동차박물관에는 웃픈 역사가 있다. 한스와 프릿츠 슐룸프 형제는 이 지역에서 방직공장을 하는 사업가였다. 이들은 자동차를 좋아해서 수집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섬유사업은 사양산업이 되어갔고, 이들은 1프랑에라도 회사를 팔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결국 이들은 바젤로 돌아가서 프랑스로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노조가 이 곳을 점거했고, 슐룸프박물관이라는 이름은 노동자박물관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지금의 공공 박물관이 되었다고 한다.

한 번 승차권을 끊으면 트램 24시간 동안 탈 수 있으니 역으로 돌아갈 때는 같은 승차권으로 같은 트램 노선을 타면 된다. 우리는 역으로 돌아가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스트라스부르로 갔다.


만족이란 결국 기대를 충족시킬 때 나온다. 많은 일본인들이 파리에 가서 파리 증후군을 앓고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반대로 만족스러운 여행은 때론 대단한 경험보다는 낮은 기대에서 나오곤 한다. 뮐루즈 여행은 남는 시간을 때우려는 의도로 시작했지만, 돌아보면 기대 이상의 경험을 하게 해준 만족스러운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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