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때는 앞니밖에 안보였어요.
십년 전 쯤 겨울방학 연수중 이었다. 교육청에서 전화가 여러 번 와 있었다. 통화해 보니 제자 중 한 사람이 찾는다며 찾는 이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누굴까... 누군데 나를 찾지??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나를 찾을 만한 학생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교육청에서 가르쳐 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선생님...저 아시겠어요. 민지에요~ ”
김민지... 민지...아~~ 기억난다. 민지...전화받은 그 때로부터 십년 전 즈음~~
복도에서 엄마 뒤에 몸을 숨기고 하염없이 울던 민지~~ 세월을 뚫고 그 장면이 다시 생생히기억났다.
그 날, 민지 엄마가 급히 찾아오셨다. 아이를 전학시키겠다고 전학신청 절차를 물으러 오신 거였다. 하루 이틀 사이로 급하게 지방으로 내려가야 해서 바쁜 걸음으로 찾아오셨다고 했다. 갈색 긴 커트머리를 한 민지엄마는 지쳐보였고 무척 경황없어 보였다. 민지엄마는 급하게 지방으로 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야만 이유를 말하셨다.
며칠 전 있었던 택시운전사 파업 노동자대회에서 민지아빠가 분신자살하셨다고 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아무런 단서도, 어떠한 조짐도 어떤 예감도 없이 갑자기 느닷없이 닥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아... 그랬구나. 며칠 전 교무실에 비치된 신문에서 택시운전사 파업 노동자대회에서 000(00동)씨가 분신자살했다는 내용만 있는 짧은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괄호안의 행정동이 그 당시 내가 근무하던 학교 주변이여서 예사롭지 않게 기사를 봤던 기억이 있었다. 그 분이 민지아빠였구나....
아침에 나간 남편을 참혹한 죽음으로 확인한 아내의 충격과 슬픔 앞에서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너무도 놀라 얼이 나간 얼굴로 있는 내 앞에서 민지엄마는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울음을 꾹꾹 누른 채 한 마디 한 마디 또박 또박 찬찬히 말씀하셨다. 누르고 누른 슬픔의 압력과 고통이 그대로 눈물처럼 비처럼 내게 스며들었다.
먹고 살기 어려우니 서울생활을 정리하려하며 우선 아이를 데리고 동생 부부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 거기서 살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죄송하지만 오늘 당장 민지를 데리고가야 하고, 서류 작업은 내일 본인이 다시 와서 하겠다고 하셨다.
허둥지둥 네~ 네~ 라고 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하는 지 잘 감각되지도 않았다.
말씀하시는 중에 앞니가 곧 빠져버릴 듯이 허술하게 가까스로 붙어있는 것 같아 거기로 내 시선이 잠깐 갔던 것 같다. 급작스런 비보와 쇼크로 민지엄마는 며칠 사이에 이가 흔들려 이가 빠지고 앞니도 흔들거린다고 했다. 가늠할 수 없는 고통앞에 그저 어안이 막힐 뿐이었다.
외동인 민지는 맑은 피부에 평소 아주 조용하고 침착한 아이였다. .
나는 학급으로 가 민지를 데리고 나왔다.
핼쓱해지고 한층 작아진 듯한 민지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비오듯이 우는 민지가 선생님.. 나 이제 어떡해요..라고 말하는 듯 했다. 안쓰럽고 가여워 견딜 수 없었다. 긴 복도를 뒤로 하고 엄마 뒤에 몸을 가리고 하염없이 울던 민지. 모진 세상, 이제 단 둘 남은 엄마와 딸의 모습이 먹먹해 퇴근 후에도 잠자리에 들어도 쉽게 잠을 청하지 못했다. 민지아빠는 그런 충격적인 죽음의 방법으로 무얼 알리고 싶으셨을까? 닫힌 세상이 열리고 우리가 서로 연결되고 나누는 세상을 바라셨을까? 나는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얼마나 신경을 썼으면 그 짧은 며칠사이에 잇몸이 내려앉았을까....
그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받는 사람이 싫어할 수도 있었는데 민지엄마의 흔들리던 앞니가 못내 잊히지 않아 공강시간에 마트에 나가 무작정 사골을 몇 팩 사고 포장했다. 서류처리를 위해 학교에 다시 오신 민지 엄마께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가시는 길을 배웅하며 포장한 사골을 드렸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고 무척 놀라워하신 기억이 있다. 지금이라면 다른 선물을 생각해 볼 수 있었지만 그 때는 이제 곧 헤어지고 생각키는 것은 곧 빠질 것 같던 앞니와 사골국뿐이었다.
어른이 된 민지와 마주 앉았다. 비처럼 눈물을 쏟던, 텅빈 것 처럼 그토록 스산하던 눈빛이 침착하고 안정감있게 가라앉아 있었다. 검고 숱많던 머리, 눈자위가 깊던 모습은 옛모습 그대로다. 여기 앞에 앉은 애가 민지인가 현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 꼭 뵙고 싶었어요. 언젠간 꼭 연락드려야지 하고 있었죠.. 늘~~ ”
“ 엄마는 지금도 가끔 선생님이야기를 해요, 그 사골팩 선물도요.. ”
“ 그래?~~아~~난 왜 촌스럽게 사골을 선물했을까... 참나~~”
잘 있었니..어떠냐..지금은 뭐하니.. 서울생활 시작했으면 연락하지 그랬냐..엄마는 안녕하시니.. 여러개 질문을 한 꺼번에 들입다 물어제끼는 내게 옛날처럼 차분차분히 말하는 민지를 보고 내 얼굴엔 웃음이 번져갔다.
민지에게 그 날, 그 시절은 되새기고 싶지 않을 쓰라린 기억일 것이다. 이제 나를 찾은 것은 살을 에듯한 아픔과 고통에서 좀은 놓여 났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우선 놓이기도 하고 지금 내 앞에 이런 모습이기까지 남몰래 흘렸을 눈물과 고통에 겨운 몸부림을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았다. 아빠얘긴 없는 것처럼 우린 이야기했고 이야기는 꼬리를 이었다. 회사생활을 하는 엄연한 경력직장인 민지와 자리를 옮겨가며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함께 했다. 행복하고 충만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민지엄마는 그냥 갑작스런 사고사로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내게 왜 그렇게 사실 그대로 말하셨을까? 혹시 그 끔찍한 고통을 무의식중에 아이 담임교사인 나와 나눌수 있다고 느끼셨을까??
지금 학부형들은 조금만 마음에 안맞으면 녹음이 큰 협박수단인 것처럼 일단 폰부터 들고 녹음한다고 시작한다. 겉치레 예의를 이어가다 약점만 잡으면 돌변한다. 지금은 교사의 원형이 학원선생이다. 시험에 대해 묻고, 내신성적이야기를 주로 한다.
민지곁에 튼튼히 버티어주신 엄마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안정되고 든든한 어른으로 커 준 민지에게도 가슴벅찬 박수와 감사를 보내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