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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랑크뤼 Oct 13. 2019

미국 서부 여행 - 나파밸리, 스탠퍼드대학교

나파밸리(Napa Valley), 스탠퍼드(Stanford) 대학교


와인을 좋아하는 필자가 미국 서부여행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나파밸리(Napa valley)였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그 이름, 나파밸리!


나파밸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 산지로 샌프란시스코 북동쪽으로 약 60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300곳 이상의 대규모 와이너리가 있으며, 소규모 와이너리까지 합하면 총 1,800여 곳 이상의 와이너리가 있는 곳이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정말 가고 싶은 곳이겠지만, 아이들에게는 포도밭 외에는 볼 것이 없는 아주 재미없는 곳일 것 같아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샌프란시스코까지 갔는데 나파밸리를 밟지 못하고 온다면 필자에게는 두고두고 많은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놓은 묘수가, 반나절만 가족과 떨어져 혼자 나파밸리를 다녀오는 것이었다.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는데 그동안 운전사 노릇 하느라 고생했다고 생각했는지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아내는 아이들과 샌프란시스코 과학관을 가고, 필자는 오전에 잽싸게 나파밸리를 들렀다 오는 일정이 확정된 것이다.



필자만을 위한 반나절의 값진 시간이 주어졌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렌터카 업체를 방문하여 새벽같이 차를 빌리고 나파밸리로 향한다. 


알라모 렌터카, 폴스파겐 중형차를 빌렸고, 반납장소는 오클랜드 공항으로 정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옵션이다.


필자가 방문하고 싶었던 와이너리는 할란 이스테이트(Harlan Estate) 와이너리였다. 필자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매년 와인을 구매하는 곳이라 방문하고 싶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여 상시 오픈된 몬다비 와이너리를 방문하기로 했다.


나파밸리에는 유명한 와인들이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는 단연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 와이너리일 것이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나파밸리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의 인생을 바쳐 나파밸리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 산지로 바꿔놓은 로버트 몬다비.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50년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높은 품질의 와인을 내놓을 수 있었다. 몬다비 와이너리에 가는 길에 할란 이스테이트 와이너리 사무실에 미리 주문해 놓았던 와인을 받아오기 위해 잠깐 들렀다. 길을 헤매다가 겨우 찾아간 할란 이스테이트 메인 오피스. 오래된 건물이긴 했지만 벽 전체를 덮은 담쟁이넝쿨과 멋진 조화를 이루었고, 사무실 내부는 빈티지 가구로 아주 멋스럽게 꾸며져 정말 고급스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담쟁이가 아름다운 할란 이스테이트 오피스


미리 연락을 해놓았던 터라 필자의 와인을 와이너리에서 사무실로 가져와 사무실 셀러에 잘 보관하고 있었다. 직원이 어찌나 친절하게 대해주던지.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옐로 스톤에서 먹으려 미리 주문해 놓은 할란 이스테이트 세컨드 와인 메이든 2006. 와이너리 셀러에서 직접 가져온 싱싱한 와인이다.

 

할란이스테이트, 세컨드 와인이 더 메이든이다.


지인이 추천해준 햄버거 가게에 들러 아. 점을 해결한다.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다는 것은 당연 맛집이라는 얘기.



햄버거와 콜라로 시장기를 달래고, 다시 나파밸리를 향해 출발한다. 어? 길을 가다 보니 오른편에 하이츠 와이너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냉큼 안으로 들어가 본다.



하이츠 와이너리도 파리의 심판으로 유명해진 미국 와인이다.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더니 테이스팅 할 거냐고 물어본다. 이런! 이 유명한 와인을 공짜로 먹을 좋은 기회인데, 운전해야 해서 눈물을 머금고 “No, Thanks.”를 젠틀하게 외치고 건물 뒤뜰로 나가본다. 



건물 뒤에는 이렇게 가지런하게 정리해놓은 포도밭이 펼쳐진다. 어린 포도나무 잎이 너무나 앙증맞게 예쁘다. 흠, 이것이 카베르네 소비뇽 잎인가?



포도밭만 구경하고 차를 몰아 몬다비 와이너리로 가는데 시음도 못 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와인이 바로 공짜 와인인데, 나파밸리까지 와서 와인을 한 모금도 못 먹다니. 그러나 어찌하랴. 여기서 음주 운전하다 걸리거나 사고라도 나면 여행 자체가 끝나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몬다비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이 와이너리도 역시 무료 시음 프로그램과 투어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필자는 그저 인증샷 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의 상징인 삼각형 건물 앞에 검은 조각상이 있다
로버트 몬다비의 상징 건물, 대체 초점은 어디에 맞은 거야... 


와이너리가 정말 크고, 너무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있다.



포도를 직접 확인하러 포도밭으로 가까이 가니 푯말에는 ‘To Kalon Vinyard’라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토 칼론은 그리스어로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뜻으로 나파밸리 최고의 빈야드(포도밭) 중 하나이다.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몬다비 와이너리의 포도들을 보니, 멋진 레드와인으로 다시 태어날 꿈에 부풀어 있는 것 같다.



더 머물러 봤자 시음도 못 하고 아쉬움만 더할 것 같아서 서둘러 자리를 뜬다. 득템 와인이 있는지 나파밸리 시내에 있는 와인샵들을 둘러보지만,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서 구매하진 못했다. 대신 플라스틱 와인잔과 와인 보호커버를 사 들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야 했다. 


아흑... 자태 곱게 누워계시는 본드 자매 와인님들, 할란이스테이트에서 만드는 와인이다. 지금은 별이 되어버린 와인들.

미리 약속했던 장소에 시간에 맞춰 도착하자 아내와 아이들이 반갑게 맞는다. 필자가 나파밸리를 다녀오는 동안 아내와 아이들은 샌프란시스코 과학관에 들러 많은 체험을 하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던 것 같다. 


과학관 주변에 호수공원이 있어 산책과 피크닉을 즐기기에 좋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자라면 꼭 과학 체혐을 해보기길 권한다.


다음 목적지는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있는 스탠퍼드 대학교다. 여행하면서 아이들에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교를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여행 코스에 넣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로 40분 정도 달리면 닿는 그 이름도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교. 학교에 도착해서 둘러보니 학교가 무슨 박물관처럼 보였다.



건물에 들어가기도 하고 도서관 앞에서 사진도 찍어본다.


아드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 대학생이 되었을 때 교환학생이나 대학원생으로 스탠퍼드에서 공부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행복한 꿈을 꾸어본다.



학교를 둘러보고 학교 기념품 가게에 들러서 스탠퍼드 로고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티셔츠 하나씩 사주고 밖으로 나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겨본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보라색 꽃과 스탠퍼드 로고를 표현한 꽃들, 여름의 스탠퍼드는 꽃들 천국이었다.



반나절 동안 둘러본 나파밸리, 그리고 오후에 잠시 둘러본 스탠퍼드 대학교.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정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나중에 은퇴 후 기회가 된다면 나파밸리는 한 번 더 들러 보고 싶다. 그때는 공짜 와인을 원도 한도 없이 마셔보리라. (^_^) 내일부터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가기 위한 또 다른 긴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필자가 다니는 회사의 사보에 4년간 기고했던 와인 관련 글 중에 스토리 하나 공유합니다~


제목 : 기억에 남는 라벨, Harlan Estate


지난 호 동안 살펴보았던 와인 라벨들은 대부분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그림과 와인 정보(빈티지, 지역, 품종 등)를 담고 있다. 반면에 어떤 와인들은 화가의 그림이나 독특한 사진 등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서는 와인 라벨도 있다. 특히 미국 컬트 와인이 더욱더 그렇다. (참고로 컬트 와인이란 생산량이 극히 제한되고 품질이 뛰어난 와인을 일컫는데, 회원들에게만 대부분 판매를 하므로 일반인들이 쉽게 구하기 힘들어 와인 애호가들에게 숭배(Cult)의 대상이 될 정도의 와인을 일컫는다) 이번 호에서는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는 할란 이스테이트의 와인 라벨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할란 이스테이트의 와인 라벨 이야기


미국 최고의 컬트 와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누구든 주저 없이 할란 이스테이트(Harlan Estate)를 얘기할 것이다. Bill Harlan이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 나파밸리에 세운 와이너로 로버트 파커(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와인 평론가)로부터 “할란 이스테이트는 단 하나의 가장 심오한 레드와인일 것입니다. 단지 나파밸리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요”라는 칭송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와인이다.


Bill Harlan       사진출처 : http://www.worth.com/master-of-vine/


“Harlan Estate might be the single most profound red wine made not just in California, but in the world.”  - Robert M. Parker, Jr.


와인의 품질뿐만 아니라 라벨도 굉장히 우아한데, 라벨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도 Bill Harlan이 가지고 있는 와인에 대한 열정을 잘 알 수 있다. Bill은 어렸을 때 열렬한 우표수집가였고, 특히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나왔던 음각 기술로 표현된 우표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Bill은 옛날 20달러 지폐 뒷면처럼 섬세하고 우아한 문양과 아이콘이 음각 기술로 표현된 라벨을 만들고 싶어 했다. 특히 라벨을 통해서 할란 이스테이트의 문화, 포도밭의 특성, 그리고 소비자와의 관계를 하나의 이미지로 나타내고 싶어 했다.


20달러 지폐 뒷면


그가 와이너리를 설립하고자 했던 1984년부터 많은 예술가를 고용하여 라벨 작업을 시켰지만 결국 원하는 라벨을 만드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던 Bill은 옛날 20달러 지폐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던 기술자들에 대해서 알아보았으나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일한 생존자인 Herbert Francis Fichter (1941년 당시 21세로 조폐 제작국에서 수습생으로 있던) 씨의 전화번호를 어렵게 알게 된 Bill은 Fichter 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자신이 왜 그러한 라벨을 만들려 하는지 자세한 설명과 함께 간곡한 부탁을 해서 그를 나파밸리 사무실로 불러올 수 있었다.


포도밭을 둘러보고, Bill이 원하는 라벨에 대해서 더욱 자세한 설명을 들은 후 Fitcher 씨는 자신은 기술자였을 뿐이지 그러한 디자인을 창작하는 일의 적임자가 아니라고 제안을 거절했지만, 그는 America Bank Note Company(미국 초창기부터 시작해서 미국 남북전쟁 전까지 미국 화폐와 우표를 만들던 회사)를 소개해줌으로써 Bill에게 일의 실마리를 풀 수 있게 해 주었다. Bill은 여러 번의 요청 끝에 펜실베이니아 주 외곽에 있는 ABN을 방문할 수 있었고 회사를 방문했을 때 어떤 다소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이때 ABN 관계자는 Bill에게 닳아져 불룩해진 엄청난 양의 낡은 책들을 훑어보도록 허락해줬는데, 이것은 대략 200년 동안의 보안 음각 기술(우표, 지폐 등에 쓰였거나 쓰기 위해 축적된 sample 그림들)에 관한 책들이었다. Bill은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모든 페이지가 정말 아름다웠다. 독수리, 범선, 기관차, 은행장 초상화 등의 묘사가 페이지마다 가득 채워져 있었던 것이었다. 책들을 다 훑어보려면 적어도 몇 주 아니 몇 달은 충분히 걸릴 만한 분량이었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던 순간,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있었다. 우화적인 여성 인물이 목가적인 풍경 속에서 풍성한 포도송이를 향해 팔을 뻗치는 모습의 작품이었다. Bill이 표현하고자 했던 할란의 비전과 문화, 그리고 포도밭의 특성이 이미 다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 작품은 Alonzo Earl Foringer에 의해 디자인된 것이었고, 그는 당시 최고의 지폐 디자이너였다. 그 오리지널 작품은 크기가 매우 컸는데 아마도 맨해튼에 있는 어떤 큰 회사 벽에 걸려있거나 1990년대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될 법한 작품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 원작을 찾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그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그 후로부터 3년이 흐른 어느 날, 전혀 뜻밖에도 뉴욕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 편지는 변호사이면서 역사가이자 낡은 주권 수집을 취미로 하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는 Bill이 찾고 있는 원작은 1961년에 파괴되었다고 설명했으며, 대신 그가 가지고 있는 원작을 찍었던 사진을 보내주었다. 결국, 원본 작품을 찾아내어 할란 이스테이트 본사의 벽에 걸어두려고 했던 꿈은 무너졌지만, ABN에서 찾아낸 작품을 토대로 Fitcher 씨의 감독 아래 와인 라벨 작업이 진행되었고, 원하는 라벨을 찾아 나선 지 10년이 걸려서야 결국 라벨이 완성되었다. 안타깝게도 Fitcher 씨는 와인이 출시되기 3개월 전에 운명했지만, Bill은 Fitcher 씨가 아주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Bill은 “와인 라벨은 훌륭한 수제품의 품질을 가졌고, 가게 선반이 아닌 촛불이 켜진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에 어울리도록 디자인되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할란 이스테이트 라벨 들여다 보기


자, 그럼 할란 이스테이트 와인에 실제로 붙어있는 라벨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아래 보이는 사진은 필자의 와인 셀러에 보관하고 있는 2009년 빈티지(할란 설립 25주년 기념 빈)와 2012년  라벨 사진이다. 컬러사진보다는 때로는 흑백사진이 깊은 여운을 남기듯, 할란 와인의 라벨은 지폐를 만들 때 사용되었던 음각 기술을 이용해서 표현한 흑백 이미지를 통해, 다른 와인에서 볼 수 없는 멋과 깊이를 느끼게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라벨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여신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먹고 싶어 할 정도의 뛰어난 품질의 포도(와인) 임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필자가 직접 촬영한 2009년 빈티지 vs 2012년 빈티지 라벨 사진 비교


2012년 빈티지 와인부터는 현대 기술을 접목해 더 섬세한 와인 라벨을 완성했다고 한다. 위조방지 배경 그림이 추가되었고 여신의 얼굴과 손목 부분도 더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소비자들이 빈티지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글자도 조금 크게 하였다고 한다.


할란 이스테이트 와인은 20~30년의 세월은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장기 숙성용 와인으로, 오래 묵힐수록 더 심오한 맛을 선사하는 레드와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Ai와 로봇의 도움으로 아주 깜짝 놀랄만하게 변해버린 그런 세상이 왔을지라도, 촛불이 켜진 테이블에서 다시 만나는 이 라벨은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시공을 초월한 그윽한 우아함으로 우리에게 큰 행복을 선사할 것 같다.


할란 이스테이트 와이너리 전경    사진출처 : https://harlanestate.com/purp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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