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 미국 서부 국립공원 여행을 다녀온 후로 한 동안 여행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미국에서 보고 온 대자연의 모습이 너무 강렬해서였는지 한 동안은 여행을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들을 위해서 주말 체험학습 다니던 것이 여행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고구려 유적지를 돌아보고, 백두산 천지도 보고 오는 여행 상품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귀가 솔깃해졌다. 단체 관광 상품이고 비행기가 아니라 배를 타고 중국까지 가는 일정이라 좀 꺼려지기는 했지만, 인솔자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역사공부도 시켜주고 또 고구려 유적지를 직접 가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도 맘에 들었다.
일시 : 8월 3일 ~ 8월 8일 (5박 6일)
여행코스 : 인천-단동-오녀산성(졸본성)-백두산 천지-집안(국내성)-단동-인천
이동수단 : 인천-단동 (배), 단동-백두산-단동 (관광버스)
여행경비 : 1인당 약 85만 원
자, 이제 고구려의 숨결을 찾아 출발~
인천공항은 많이 가봤지만 인천여객 터미널은 처음이었다. 주로 중국 보따리 상들이 배를 타고 다닌다고 들었었는데 우리 가족이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갈 줄이야... ㅎ
큰 장점은 비용도 저렴하고, 배안에서 잠을 잘 수 있어서 숙박비가 절약된다는 것이지만 큰 단점은...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하룻밤을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티켓을 끊고, 배를 타려면 공항 출국장과 비슷한 출국 심사대를 통과해야 한다.
출국 심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면,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짧은 거리이긴 하지만 셔틀을 타고 저기 보이는 배까지 이동해야 한다.
가까이 와서 보니 여객선이 많이 낡아 보였다. 이제 배로 승선~ 단동 페리, 동방명주 호다.
배 내부에는 큰 홀이 있어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숙소는 Open형과 2층 침대 형태로 있다. 우리는 2층 침대를 예약했다.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 갑판으로 나오면 인천항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배가 출발하자 이른 저녁이 시작된다. 식당 음식은 단출했고 그냥 허기를 달래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갑판 위로 올라와서 보니 서해의 작은 섬들을 뒤로하고 배는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
어디서부터 따라왔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갈매기 떼가 배를 졸졸 따라온다.
갈매기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보고~
갈매기들에게 먹이도 줘본다.
아악~ 이 녀석이~
저렇게 당하고도 재밌는지 다시 과자를 꺼내 든 둘째 녀석.
운이 좋은 갈매기다. 새우깡이 아닌 자갈치 과자를 먹다니. ㅎ
배가 더 먼 곳으로 이동하자 갈매기들은 다시 제 갈길을 가며 멀어져 간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더욱 기울자, 붉은 기운이 온 바다와 하늘에 번진다.
정말 숨이 멎을 듯 아름다운 일몰이다.
어느새 해는 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이제 어둠이 내린다.
그런데 저 멀리 둥근 달님이 떠오르는 것 아닌가!
이렇게 일몰과 월출을 볼 수 있다니. 생각지도 못한 페리 여행의 장점이다.
달 밝은 서해 밤바다 위에 우리 가족을 싣고 동방명주 호는 중국을 향해 숨가쁘게 달린다.
이층 침대에 올라 잠을 청하는데 먼바다로 나아가니 파도가 제법 거세진다. 좌우로 기우뚱거리는 배에서 잠이 들기 쉽지 않았으나 이내 익숙해져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갑판 위로 올라가 보니 날이 밝으려 하고 있다. 일출을 봤으면 했는데 하늘에 구름이 너무 많아 아쉽기만 하다.
이미 떠올라 버린 해님.
아침 식사를 하고 나니 배는 어느덧 단동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나와보니 중국 여행사 측에서 고용한 가이드가 우리를 맞는다. 전세버스는, 타이거가 아닌 하이거다.
중국 여행사 가이드, 김영숙 씨. 화교로 북한 황해도에서 태어나 살다가 중국으로 넘어와 단동에 사는 중국인이다. 작은 화장품 가게를 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는데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루 종일 차를 타야 해서 자칫 단조로운 여행이 될 법도 했지만 가이드가 들려주는 북한 생활 이야기에 다들 배꼽을 잡고 웃다가 심각한 현실에 혀를 차기도 하여 가는 내내 심심하지 않았다.
점심을 먹으러 잠시 들린 한국식당.
다시 차를 타고 가는데 저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북한 땅이란다. 중국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북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가는 중간, 휴게소에 잠시 들렀는데 복숭아를 판다. 상품성이 많이 떨어지는 듯...
화장실을 다녀온 첫째가 혀를 내두른다. 화장실 문짝이 없었다고... ㅎ
휴게소 간판에 제비가 집을 지어놓았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즈음 마을로 들어서니 염소 떼가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다. 시골은 시골이다.
드디어 첫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바로 오녀산성(졸본성)이다. 주몽이 부여를 떠나 고구려를 세운 곳으로 추정되는 오녀산성은 환인시 중심에서 약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자연 성벽에 둘러싸인 성이다. 오녀산성이라는 이름은 아주 오랜 옛날 이곳에 다섯 명의 여신이 살아 산과 마을을 수호해 주었는데 흑룡과 싸우다가 전사해 이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재로 등재되었으며 해발 800m에 달하는 높이에, 특히 윗부분은 직벽 100여미터의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져 깎아지른듯한 벼랑인 데다가 위가 반듯하게 잘려 있는 듯 보인다. 바위밖에 없어 보이는 정상에 오르면 남북으로 1.5km, 동서로 200~300m의 넓이의 편평한 땅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고구려의 여러 유적들이 발견되어 졸본성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길 이름도 오녀산로다. ㅎ
정상에 올라 고구려의 숨결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지만 일정에 포함되지 않은 관계로 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한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참 풍요롭다. 옛 고구려의 영토를 우리가 지금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또다시 이어지는 영숙 씨의 재밌는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느새 밤이 되고 저 멀리 보이는 강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숙소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것으로 오늘 일정이 끝이 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차로 이동하는 피곤한 일정이었다. 잠을 청하기엔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정말 낯선 곳이라 어디 밖에 나갈 생각은 엄두도 못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