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싫다. 쓰고자 하는 의지는 있다. 그러나 쓰기가 싫다. 보기도 싫다. 엎어버리고 싶다. 이 글은 쓰레기다. 이 현상을 정리할 단어가 하나 떠올랐다. 나는 지금 내 글에 대한 알러지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규칙적인 생활과 체계적인 작업환경을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오후 내내 방에 처박혀서 뭔가를 타닥거리고 있지만 그 양이 개미가 흘린 눈물보다 적고 영양가라고는 없어 영혼 없는 글만 모니터에 싸고 있다.
똥은 변기에 흘려보내기라도 할 수 있지, 똥 같은 내 글은 어디에다가도 못 내놓는다. 분리수거도 안되고 종량제 봉투에도 안 들어간다. 얘가 갈 곳이라곤 사이버휴지통뿐인데 내 머리로 낳은 새끼라 버리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다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오늘 생산해 낸 쓰레기는 일단 모른척하고 방에서 퇴근한 뒤 남들처럼 여가시간을 보낸다. 드라마 할 시간이다. 엄마랑 소소하게 토론하며 보던 드라마의 막방이다. 엄마가 해외여행 가고 없어서 혼자 마지막 회를 시청한다. 주인공이름이 나랑 같아서 괜스레 좋았던 드라마. 사실 2주 정도 전부터 이해가 안 됐는데 그래 어디 한번 어디까지 가나 하고 봤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야, 그래서 뭐 어떻게 된 건데. 사겨, 안사겨? 내가 니들 그 난리 치고도 사귀는 결말로 나는지가 궁금해서 16시간, 자그마치 16시간을 달려왔는데 말이야. 결말이 없다. 아니면 지나치게 은유를 써서 머리 나쁜 내가 이해 못 한 것일 수도. 사귀겠지? 그럼 키스는 왜 했어. 하긴 그러고도 4년을 도망쳤다. 명확한 행동으로 여지라도 주는 결말을 확정 지어줘야지. 이런...ㅆ..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결론을 지어보다가 이럴 거면 개명하라는 진담 같은 농담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웃지 못한다. 지금 이 드라마의 결말이 내 글 같아서..
어쨌든 꾸역꾸역 결말까지 써내야 한다. 전개가 잘 되고 있는가? 모른다. 근데 일단 쓰고는 있다. 감정선이 자연스러운가? 나는 A가 B를 사랑하도록 설정해 놨기 때문에 아무튼 사랑해야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객관화가 되어있다고 생각해서 혼자 막 쓰다가 가끔씩 이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 때가 있다. 장고의 시간에 들어선다. 이대로 쭉 갈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 효율적인 수정방안은 또 무엇인지. 그 생각만 하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간다. 작가님도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고민과 시간과 회의를 거쳐 결말을 지으셨으리라. 다만 물이 적어 밥알이 설은 결말일 뿐. 갑자기 16부를 무사히 끝마치신 것에 대해 경의와 축하를 마음속 깊이 보낸다. 감상은 감상이고, 축하드리고 수고하셨습니다.
진짜 알러지 반응인지 간지러워지는 볼을 긁적이며 다시 내 글로 돌아와서, 나는 알러지가 올라오면 처방전 같은 합리화를 한다. 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잘 쓰려고 하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적당히 만족해하지 말며 끝없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성장해라. 비록 금성의 자전속도만큼 느릴지라도. 미래에 승승장구할 나를 믿고 정진 또 정진. 그러면 한 줄 겨우 쓰고 하루가 저문다. 이러는 게 맞는 것일까. 맞다고 믿는 수밖에.. 조금은 편하게 글을 써도 되지 않나, 생각이 끼어들면 저 멀리서 날아오는 길고 긴 채찍질.
혼자 쓰니 외롭다. 그렇다고 남들하고 공유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는 외롭고 모순적인 생활. 이거 쓴다고 또 한 시간 딴짓했네. 아이고.. 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