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돈으로 산 것들은 99%의 확률로 후회하지 않는다. 다 내새끼같고 이대로 영원히 나와 끝까지 갈 작정으로 삶의 여정을 함께하고 있으며 내 물건들은 주인의 관심은 못받을지언정 애지중지를 당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다지 할 얘기는 없지만 짧게 짧게 1%의 물건들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1. 컴퓨터 활용 능력 1급 필기책
최근에 산 것들 중 가장 후회되는 물건 1위. 교육원 면접을 보고 난 후 당연히 떨어질줄알고 절망감에 휩싸인채 취업준비의 밑밥이라도 깔자는 심정으로 새벽에 충동적으로 산 책이다. 면접을 망치고 나는 어느 출발선에 서야 하나 좌절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나를 합격자 명단에 넣고 있었을 무렵, 불행하게도 내 손가락은 컴활책 결제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새벽은 충동을 부르고 충동은 후회를 부르는 이 무시무시한 사슬. 합격할 줄 알았으면 당연히 안샀을 물건1위도 컴활책이다.
2. 야구 유니폼
이렇게까지 진심이고 싶지않았는데 어쩌다보니 5시즌째 야구를 보고 있다. 10만원 이상의 물건을 산 건 처음이라 손이 덜덜 떨렸지만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는 쉽다. 이 후에 레고 장난감은 물론이고 20만원을 호가하는 거금을 훌렁훌렁 판매업체에 넘기게 되었다. 절제된 소비의 고삐를 풀리게 한 장본인. 그래도 덜 후회해보겠다고 선수가 팀을 옮기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이적확률이 낮은 프랜차이즈 스타 등번호가 적힌 유니폼으로 낙점했다.
3. 빨간 마티즈
나에게 바퀴를 뒤로 굴렸다 놓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장난감 자동차가 여러 대 있었다. 몇 개는 롯데리아 출처로 보이고 몇 개는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것들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빨간 마티즈였다. 심지어 문도 열리는 차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자라면서 나의 관심 밖이 되었고 이모가 결혼을 하면서 우리집은 아주 오랜만에 아이의 성장을 보게 되었다. 누구에게도 터치 받아본 적 없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모여있는 내 방은 그 아이에게 좋은 놀이터가 되었고 마침 눈에 띈 마티즈는 아이에게 빌려준 후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그 순간을 후회한다. 빌려주는 게 너 가져의 의미였다면 결코 마티즈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이 마티즈가 처음부터 내게 오지않았었으면 좋았을 걸. 누가 사왔는지 모르겠지만 고마우면서 사양하고싶다.
그 외에는 아무리 방을 둘러봐도 저마다 제값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물건들뿐이다. 후회되는 것들은 죄다 일주일 내로 반품해버렸으니 말이다. 사는 족족 만족도가 높으니 내 방은 그야말로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지나가던 엄마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아냐며 잔소리를 한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그러니 내 물건들에게 말해주고싶다. 내가 너희를 내다버릴 것처럼 쌓아둔 것 같아 보여도 다 애정의 울타리 안에 있는 거라고. 후회하지않기 때문에 거기 쌓여있는거라고. 지불된 돈과 내 선택이 틀리지않았음을 이 기회를 빌려 다시 검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