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앵 Jul 22. 2020

후회는 반품처리


내가 내 돈으로 산 것들은 99%의 확률로 후회하지 않는다. 다 내새끼같고 이대로 영원히 나와 끝까지 갈 작정으로 삶의 여정을 함께하고 있으며 내 물건들은 주인의 관심은 못받을지언정 애지중지를 당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다지 할 얘기는 없지만 짧게 짧게 1%의 물건들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1. 컴퓨터 활용 능력 1급 필기책

최근에 산 것들 중 가장 후회되는 물건 1위. 교육원 면접을 보고 난 후 당연히 떨어질줄알고 절망감에 휩싸인채 취업준비의 밑밥이라도 깔자는 심정으로 새벽에 충동적으로 산 책이다. 면접을 망치고 나는 어느 출발선에 서야 하나 좌절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나를 합격자 명단에 넣고 있었을 무렵, 불행하게도 내 손가락은 컴활책 결제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새벽은 충동을 부르고 충동은 후회를 부르는 이 무시무시한 사슬. 합격할 줄 알았으면 당연히 안샀을 물건1위도 컴활책이다.


2. 야구 유니폼

이렇게까지 진심이고 싶지않았는데 어쩌다보니 5시즌째 야구를 보고 있다. 10만원 이상의 물건을 산 건 처음이라 손이 덜덜 떨렸지만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는 쉽다. 이 후에 레고 장난감은 물론이고 20만원을 호가하는 거금을 훌렁훌렁 판매업체에 넘기게 되었다. 절제된 소비의 고삐를 풀리게 한 장본인. 그래도 덜 후회해보겠다고 선수가 팀을 옮기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이적확률이 낮은 프랜차이즈 스타 등번호가 적힌 유니폼으로 낙점했다.


3. 빨간 마티즈  

나에게 바퀴를 뒤로 굴렸다 놓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장난감 자동차가 여러 대 있었다. 몇 개는 롯데리아 출처로 보이고 몇 개는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것들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빨간 마티즈였다. 심지어 문도 열리는 차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자라면서 나의 관심 밖이 되었고 이모가 결혼을 하면서 우리집은 아주 오랜만에 아이의 성장을 보게 되었다. 누구에게도 터치 받아본 적 없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모여있는 내 방은 그 아이에게 좋은 놀이터가 되었고 마침 눈에 띈 마티즈는 아이에게 빌려준 후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그 순간을 후회한다. 빌려주는 게 너 가져의 의미였다면 결코 마티즈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이 마티즈가 처음부터 내게 오지않았었으면 좋았을 걸. 누가 사왔는지 모르겠지만 고마우면서 사양하고싶다.


 외에는 아무리 방을 둘러봐도 저마다 제값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물건들뿐이다. 후회되는 것들은 죄다 일주일 내로 반품해버렸으니 말이다. 사는 족족 만족도가 높으니  방은 그야말로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지나가던 엄마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아냐며 잔소리를 한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그러니  물건들에게 말해주고싶다. 내가 너희를 내다버릴 것처럼 쌓아둔  같아 보여도  애정의 울타리 안에 있는 거라고. 후회하지않기 때문에 거기 쌓여있는거라고. 지불된 돈과  선택이 틀리지않았음을  기회를 다시 검증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김밥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잘 먹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