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은 석유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시대를 열었다.
대전 후,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과 신흥 강대국 미국은 전 세계 석유 자원을 놓고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였다.
이를 흔히 석유 전쟁(The Oil War)이라 부른다.
그 긴박했던 경쟁의 흐름을 4가지 주요 국면으로 정리해 보자.
1. 배경: 피의 파도 위에 승리하다
1차 대전 중 영국 해군 장관 윈스턴 처칠은 함대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다.
전쟁 직후 영국 외무차관 커즌(Lord Curzon)은 연맹국들은 석유의 파도를 타고 승리로 나아갔다고 선언할 만큼 석유의 중요성은 절대적이었다.
영국의 전략 : 전쟁 중 이란(페르시아) 유전을 확보하고 있던 영국은 전후 중동 전체를 자국의 석유 호수로 만들려 했다.
미국의 위기감 : 전쟁 당시 연합국 유류의 80%를 공급했던 미국은 자국 내 석유 자원이 곧 고갈될 것이라는 석유 고갈론에 휩싸이며 해외 유전 확보에 사활을 걸게 됩니다.
2. 영국의 봉쇄와 미국의 문호 개방 (1920년대 초)
전후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산 레모 협정(San Remo Agreement, 1920)을 체결하여, 구 오스만 제국 영토(이라크 등)의 석유 이권을 자기들끼리 나눠 가졌다.
영국의 폐쇄 정책 : 영국은 미국은 이미 자국 영토에 석유가 많으니 중동에는 발을 들이지 마라며 미국 기업들의 진출을 철저히 막았다.
미국의 반격 (문호 개방 원칙) : 미국 정부와 표준 석유(Standard Oil) 등 민간 기업들은 문호 개방(Open Door Policy)을 주장하며 강력히 항의했다.
미국 의회는 미국 기업을 차별하는 국가의 기업에는 미국 내 광업권을 주지 않겠다는 차별 보복법까지 검토하며 영국을 압박했다.
3. 타협: 적선 협정(Red Line Agreement, 1928)
수년간의 외교적 분쟁 끝에 양국은 결국 파국 대신 이권 나누기를 선택한다.
과거 오스만 제국 영토를 지도 위에 빨간 선으로 그어놓고, 이 구역 안에서 석유 개발을 할 때는 협정에 참여한 기업들이 공동으로만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 협정을 통해 미국의 석유 자본(Exxon, Mobil의 전신들)이 드디어 중동(이라크 석유 공사)에 지분을 갖고 진입하게 되었다.
이는 영국 주도의 석유 질서에 미국이 공식적으로 균열을 낸 사건이다.
4. 패권의 이동: 텍사스 자본과 사우디아라비아
영국이 이라크와 이란에 집중하는 동안, 미국은 새로운 기회를 포착했다.
사우디의 발견 : 영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석유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 방치했다.
그러나 미국 소칼(SoCal, 현 셰브론)은 1933년 사우디 국왕과 독점 시추 계약을 맺는 데 성공한다.
역전의 시작 : 이후 사우디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유전들이 발견되면서, 중동의 석유 패권은 영국 중심에서 미국 중심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다.
석유의 역사를 요약해 보면 영국은 BP와 Shell을 핵심 기업으로 식민지 지배를 통한 석유를 독점했고 주요 거점은 이란과 이라크였다.
미국은 Standard Oil이 있었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방해로 진입하지 못했고 자본력과 문호 개방을 통한 침투로 중동 석유 개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셰브론은 사우디와 쿠웨이트, 멕시코 등에 유전을 발견하며 미국이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는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1차 대전 직후의 석유 전쟁은 영국의 독점을 미국이 실력과 외교로 깨뜨려가는 과정이었다.
이 경쟁의 승자가 결국 미국이 되었기에, 오늘날 전 세계 석유가 달러로 결제되는 페트로 달러 시스템의 초석이 마련될 수 있었다.
여기서 현재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세븐 시스터즈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는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전 세계 석유 시장의 85% 이상을 장악했던 7개의 거대 석유 기업 카르텔을 말한다.
이들은 국가를 넘어서는 막강한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대 석유 산업의 룰(Rule)을 만들고 이권을 공고히 했다.
1. 이권 형성의 핵심: 아크나카리 협정 (1928)
세븐 시스터즈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28년 스코틀랜드의 아크나카리 성(Achnacarry Castle)에서 맺은 비밀 협정이다.
As-Is 원칙 : 더 이상의 파괴적인 가격 경쟁을 멈추고, 당시의 시장 점유율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가격 통제 (Gulf Plus 시스템) : 전 세계 석유 가격을 미국 걸프 해안(Texas)의 가격 + 운송비로 고정했다.
중동에서 싼값에 캔 기름도 미국산 가격으로 팔아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이권 분할 : 중동의 유전 개발권을 서로 지분 형태로 나눠 가졌다.
예를 들어 이라크 석유 공사(IPC) 하나를 세븐 시스터즈 멤버들이 쪼개서 소유하며 외부인의 진입을 철저히 막았다.
2. 세븐 시스터즈가 수행한 역할
① 수직 계열화 (Vertical Integration)
이들은 시추(Upstream)부터 정제, 운송, 그리고 주유소 판매(Downstream)까지 전 과정을 독점했다.
이를 통해 석유가 땅속에서 나와 자동차 연료가 될 때까지 모든 단계에서 이윤을 남겼다.
② 산유국에 대한 갑질
당시 사우디, 이란, 이라크 같은 산유국들은 기술도 자본도 없었다.
세븐 시스터즈는 이들 국가에 아주 적은 로열티만 주고 석유를 가져갔으며, 산유국 정부가 세금을 올리려 하면 생산량을 줄여버리는 식으로 압박하여 정권을 굴복시키기도 했다.
③ 지정학적 대리인
이 기업들은 자국 정부(미국, 영국)의 외교 정책과 한 몸처럼 움직였다.
1953년 이란의 모사데크 총리가 석유 국유화를 시도하자, 세븐 시스터즈는 이란산 석유 불매 운동을 벌였고 미 CIA와 영국 MI6는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전복시켰다.
3. 이권의 균열과 OPEC의 탄생
세븐 시스터즈의 독주는 1960년대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산유국의 각성 : 우리 땅에서 나는 기름인데 왜 서구 기업들이 가격을 결정하는가?라는 불만이 폭발했다.
OPEC 결성 (1960) : 세븐 시스터즈가 산유국과 상의 없이 석유 고시 가격을 인하하자, 이에 분노한 사우디,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베네수엘라가 모여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만들었다.
자원 민족주의 : 1970년대 오일 쇼크를 거치며 산유국들이 유전 지분을 강제로 회수(국유화)하면서 세븐 시스터즈의 절대적인 지배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비록 과거와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은 사라졌지만, 이들의 후예인 엑손모빌, 셰브론, BP, 쉘등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자본을 가진 슈퍼 메이저(Super Majors)로 불리며 에너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세븐 시스터즈가 만든 석유의 달러 결제와 글로벌 유가 산정 방식은 여전히 현대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