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미국의 해외 석유 이권 확보 특별 보고서

by Grandmer


1921년 미국 상원(U.S. Senate)에 제출된 해외 석유 이권 확보(Access to Foreign Oil Reserves)에 관한 특별 보고서는 미국이 자원 중심의 고립주의를 버리고 석유 외교(Oil Diplomacy)를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설정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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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가 나온 배경과 핵심 내용, 그리고 그것이 바꾼 역사의 흐름을 정리해 보자.


1. 보고서 발간의 배경 : 석유 고갈의 공포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석유의 군사적 가치를 절감한 미국은 큰 위기감에 빠져 있었다.


국내 자원 고갈론 : 당시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현재 속도로 소비하면 미국의 석유는 10년 안에 바닥날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영국의 독점 : 앞서 언급했듯이 영국과 프랑스가 산 레모 협정(1920)을 통해 중동 석유를 독차지하려 하자, 미국 내에서는 우리가 피 흘려 전쟁을 도왔는데 자원은 유럽이 다 가져간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2. 보고서의 핵심 내용과 권고 사항


1921년 상원 특별위원회는 미 행정부에 강력한 공세적 석유 외교를 주문하는 보고서를 제출한다.


문호 개방(Open Door Policy) 요구 : 영국이 지배하는 위임통치령(이라크 등)에서도 미국 기업이 동등한 시추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교적 보복 예고 : 미국 내에서 광물을 채굴하려는 외국 기업에 대해, 해당 국가가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면 똑같이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는 상호주의적 제재를 권고했다.


정부와 기업의 밀착 : 미국 정부가 민간 석유 기업(표준석유 등)의 해외 진출을 단순히 상업 활동이 아닌 국가 전략 사업으로 간주하고 외교력을 총동원해 뒷받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3. 이 보고서가 가져온 변화


이 보고서는 말 그대로 미국의 에너지 패권 전략의 청사진이 되었다.


① 적선 협정(Red Line Agreement)의 도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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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발표 이후 미국 국무부는 영국을 강력하게 압박했다.


결국 영국은 미국의 자본력과 보복 조치를 두려워하여 1928년 이라크 석유 이권의 23.75%를 미국 기업 연합에 넘겨주는 적선 협정에 서명하게 된다.


② 세븐 시스터즈 체제의 탄생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미국 석유 기업들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훗날 세븐 시스터즈로 불리는 거대 공룡 기업들이 중동과 남미의 유전을 장악할 수 있었던 법적·외교적 기반이 바로 이 1921년 보고서에서 시작되었다.


③ 자원 안보 개념의 정립


미국이 더 이상 자급자족에 만족하지 않고, 전 세계 주요 에너지 거점을 통제함으로써 세계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에너지적 기초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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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사적 아이러니


재미있는 점은 당시 보고서가 근거로 삼았던 10년 내 고갈설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는 것이다.


이후 텍사스에서 거대 유전들이 연달아 발견(스핀들탑 이후의 붐)되었고, 기술 발전으로 가용 매장량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공포 덕분에 미국은 중동이라는 거대한 에너지 창고에 깃발을 꽂을 수 있었고, 이는 20세기 내내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보고서 이후 미국은 본격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눈을 돌리게 된다.


193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의 거친 모래 폭풍 속에서 벌어진 미국 기업들의 석유 발굴기는 그야말로 역전의 드라마였다.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의 오판과 미국의 무모한 도박이 엇갈리며 세계 에너지 지도가 뒤바뀐 순간을 알아보자.


1. 영국의 치명적 오판 : 저곳엔 물 한 방울 안 나온다!


1920년대, 중동의 석유 이권을 쥐고 흔들던 영국의 전문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광활한 사막을 보며 비웃었다.


영국의 확신 : 지질학적으로 저 땅에는 석유가 있을 리 없다. 괜히 돈 낭비하지 마라.


방치된 사막 : 영국은 이란과 이라크에서 이미 엄청난 석유를 캐고 있었기에, 척박한 사우디 사막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이것이 훗날 대영제국이 에너지 패권을 놓치게 된 최악의 실수가 된다.


2. 미국의 도박 : 사막 밑에 로또가 있을지도 몰라!


이때 등장한 이들이 바로 미국의 소칼(SoCal, 현 셰브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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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바레인에서 석유를 발견한 미국인들은 바로 옆 동네인 사우디에도 기회가 있다고 믿었다.


1933년의 계약 : 가난에 시달리던 사우디의 건국 왕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미국은 황금 3만 5천 파운드를 선불로 주고 독점 채굴권을 따냈다.


지옥 같은 탐사 : 미국 지질학자들은 50°C가 넘는 살인적인 더위, 끝없는 모래 언덕, 그리고 마실 물조차 귀한 사막에서 시추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3. 절망의 연속: 7번의 실패와 마지막 경고


드디어 1935년부터 시추가 시작되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1호공부터 6호공까지 : 파는 족족 헛방이었다.


엄청난 자금만 모래 속으로 사라졌고, 미국 본사에서는 이제 그만 포기하고 철수하라는 최후통첩이 내려오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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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승부수, 다맘 7호(Dammam No. 7) : 현장 기술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지막 힘을 다해 일곱 번째 구멍을 더 깊게, 더 깊게 파 내려갔다.


4. 1938년 3월 4일: 사막이 요동치다!


지하 1,440m 지점에 도달했을 때, 갑자기 땅 밑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검은 황금의 분출 : 엄청난 압력과 함께 검은 원유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단순히 석유가 나온 수준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유전이 터진 순간이었다.


패권의 이동 : 이 소식은 전 세계로 퍼졌고, 영국은 경악했다.


사우디의 사막은 순식간에 달러의 보고로 변했으며, 미국은 이 유전을 기반으로 중동 패권을 통째로 거머쥐게 된다.


5. 결과: 아람코(ARAMCO)의 탄생과 혈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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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 같은 성공은 오늘날 세계 최대의 기업 사우디 아람코(Arabian American Oil Company)의 시작이 되었다.


미국과 사우디의 결혼 : 1945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우디 국왕을 군함으로 초대해 역사적인 만남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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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사우디의 안보를 지켜주고, 사우디는 미국에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전설적인 약속이 맺어진다.


영국의 몰락 : 이후 영국은 중동에서 서서히 밀려났고, 세계 경제의 중심축은 런던에서 워싱턴과 텍사스로 완전히 이동했다.


사우디 석유 드라마는 전문가의 오만(영국)을 꺾은 무모한 도전(미국)의 승리였다.


7번 유정이 터지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달러 패권과 중동 정세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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