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ndmer Apr 08. 2022

포스트 피크

거대한 역전의 시작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인구가 늘어나고 더 번창해질수록, 우리의 필요에 따라 채취하는 것들도 불가피하게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광물, 더 많은 화석연료, 더 많은 경작지, 더 많은 목재, 더 많은 물 등등.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최근 들어서 다른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덜 쓰면서 더 많이 얻는 양상이다. 


미국인, 즉 세계 경제의 약 25퍼센트를 차지하는 부유한 대국의 시민은 오늘날 전반적으로 해가 지날수록 대부분의 자원을 점점 덜 쓰고 있다. 


경제와 인구가 성장하고 있음에도 그렇다. 


우리가 어떻게 성장했고 어떻게 소비를 해왔고 변화했는지에 대한 고찰을 해보는 것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합리적 추론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그럼 우리의 과거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아보고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해 보자. 


 Ⅰ. 맬서스 시대, 지구를 뒤덮은 인류


생활수준은 실질 임금이나 소득을 통해 표현되곤 한다. 


설령 한 나라에서 쓰는 통화가 세월이 흐르면서 바뀐다고 해도 중세 농민이 그 단어의 현대적인 의미에 해당하는 어떤 돈으로 임금을 받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임금과 소득이라는 개념은 가치가 있다. 


풍요와 빈곤을 일관된 방식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다른 계통의 연구도 있는데, 그쪽에서는 인구통계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명확히 제시한다. 


즉 인구가 얼마나 되었는지, 어떻게 변동했는지를 보여준다. 경제사학자 그레고리 클라크는 이 두 유형의 증거를 통합하며, 맬서스의 인구론이 나오기 전 6세기 동안 영국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이 선이 꾸준히 위로 향한다면, 수 세기가 흐르는 동안 영국 인구가 꾸준히 더 늘면서 점점 더 부유해졌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신에 1200년 이후로 수백 년 동안 선은 오락가락하면서 그래프의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향했다. 


다시 말해, 인구가 적으면서 비교적 번영을 누리는 상태와 정반대 상태, 즉 인구가 많으면서 비교적 가난한 상태 사이를 오락가락했다는 뜻이다. 


1200년 이래로 수백 년 동안 영국 인구는 맬서스가 묘사한 그대로 진동했다. 


약 1700년까지 인구는 세 배까지 늘었다 줄었다 했다. 주로 200만 ~ 600만 명 사이를 오갔다. 그들은 인구가 비교적 적었던 시기에만 비교적 번영을 누렸다.


영국인들이 그 땅에서 뽑아낼 수 있는 자원, 특히 식량의 양에는 본질적으로 상한선이 있었다. 


인구가 그 한계선에 닿으면, 궁핍이라는 잔혹한 교정 기구가 작동하면서 인구수를 다시 끌어내렸다. 


우리 vs. 세계 


1800년경, 세계 인구는 약 10억 명 남짓이었다. 엄청난 수처럼 들리지만, 지구의 거주 가능한 지역과 비교하면 아주 적어 보이기 시작한다. 


1800년의 세계 인구를 거주 가능한 땅에 고루 퍼뜨리면 1인당 약 6만 5천 제곱미터에 달했을 것이다. 


월드컵 축구 경기장 아홉 개를 더한 넓이와 비슷하다. 소리를 질러도 서로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 기간 내내 인구 증가 속도가 그렇게 느렸던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오래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구통계학자 제임스 라일리는 1800년에는 세계의 기대수명이 약 28.5년이었으며, 당시 기대수명이 35년에 달한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늙을 때까지 살지도 못했을뿐더러 부유해지지도 못했다. 


1인당 소득은 굼벵이 같은 속도로 증가했다. 8세기에 걸쳐서 세계의 평균 소득은 겨우 50퍼센트 증가했을 뿐이다. 게대가 대개는 그 전보다 더욱 느렸다. 


한마디로 우리는 현대 인류 역사의 거의 내내 맬서스 이론의 세계에서 살았다. 수천 년 동안 우리가 지구로부터 더 많은 것을 짜내는 일에 거의 발전이 없었다니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끈덕진 동물이며 대단한 끈기를 발휘하지만 18세기 말 이전까지는 자연을 정복했다고 말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연이 우리를 억제하고 있었다. 


 Ⅱ. 인류가 지구를 정복한 산업시대


와트가 블룸필드에서 선보인 기관은 뉴커먼의 기관보다 같은 양의 석탄에서 유용한 에너지를 두 배 이상 얻을 수 있었다. 


와트와 볼턴을 비롯한 이들은 곧 효율과 출력이 더 좋은 이 증기기관을 다른 여러 가지 용도로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류 역사의 그 시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동력원은 오로지 근육, 바람, 떨어지는 물뿐이었다. 


와트의 증기기관과 그 뒤로 나온 증기기관들은 이 목록에 석탄 같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기계들을 추가했고,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크게 변화시켰다. 


산업혁명은 이러한 새로운 동력기관들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주식회사, 특허를 비롯한 다양한 지적재산권, 예전에는 대체로 엘리트층의 전유물이었던 과학과 기술, 지식이 사회 전체로 확산하는 등 그 밖의 다양한 혁신들도 필요했다. 


하지만 그 동력기들이 없었다면 혁명이라는 말이 붙을 만한 일은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증기력의 역사를 다룬 윌리엄 로슨의 책 제목은 정말로 딱 들어맞는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착상이었다. 


증기에서 흙으로 


증기력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맬서스 진동을 끝낼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것일까?


석탄에서 대량의 화학 에너지를 추출하여 역학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기관이 어떻게 인류 역사 내내 지속되어 오던 인구 성장과 감소의 주기를 끝장낸 것일까?


언뜻 생각할 때는 증기력으로 움직이는 트랙터가 농장의 생산성을 훨씬 더 높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런 식이 아니었다. 


19세기 후반기에 그런 트랙터가 몇 대 생산되기는 했지만, 툭하면 고장 나고 너무 무거워서 실용성이 떨어졌다. 


진흙에 빠지면 꼼짝도 못 했는데, 농경지란 본래 땅이 푹푹 빠지는 곳이니까 더욱 그랬다. 


사실 증기력은 밭을 가는데 도움을 줌으로써가 아니라, 밭에 비료를 뿌리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인류의 경로를 바꾸었다. 


농민들은 많은 광물이 좋은 비료가 된다는 것을 수천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19세기 초에 칠레의 아카타마 사막에 질산나트륨이 엄청나게 쌓여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영국의 농업 종사자들과 기업가들은 흥분했다. 


질산나트륨은 비료의 주성분이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바닷새들이 수 세기 전부터 모여들곤 했던 남아메리카 연안의 섬들에 새 배설물인 구아노가 엄청나게 쌓여 있다는 소식에도 흥분했다. 


1838년 윌리엄 휠라이트는 화물선으로 영국과 남아메리카 서해안을 오가는 회사를 차렸다.


그는 풍력을 이용하는 범선 대신에 증기선을 운항했다. 증기선이 나온 지 얼마 안 된 시절이었다.


증기력을 주로 써서 대서양을 횡단하는 데 첫 성공을 거둔 것이 겨우 15년 전이었다. 


그러나 증기선들은 이미 세계의 수상 운송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1840년 휠라이트의 퍼시픽 증기 해운은 칠레호와 페루호를 첫 출항시켰다. 


곧이어 더 많은 산업시대의 증기선들이 영국에서 석탄을 싣고 남아메리카로 가서 영국 농장의 생산성을 높여줄 광물을 가득 싣고 돌아오기 시작했다. 


도살한 동물의 뼈도 좋은 비료였으며 1840년대에 영국 남동부에 엄청나게 쌓여있음이 발견된 동물 배설물 화석인 분석도 그랬다. 


이 모든 물질들을 비료로 전환하는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증기력이었다. 


농민들은 산업시대의 비료를 이용하여 더 많은 식량을 생산했고, 따라서 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이 현상은 영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탄생지였지만, 그 혜택을 영국만 본 것은 아니었다. 증기선, 증기기관차, 대량 생산되는 비료 등 산업화의 많은 새로운 산물은 금세 전 세계로 퍼졌다. 


기존에 쓰던 것들보다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다. 


증가하는 소득, 사라지는 병균, 더 나아진 식사


영국은 세계 교역의 발전소가 되었고 덕분에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다양해졌다. 


1750년경 영국은 유럽 철 생산량의 약 8퍼센트를 차지했다. 그런데 한 세기 남짓 뒤에는 그 비율이 거의 60퍼센트로 증가했다. 


19세기 중반에, 세계 인구의 2퍼센트도 채 안 되는 영국은 세계 면직물 생산량의 절반과 석탄 생산량의 65퍼센트 이상을 맡고 있었다. 


1825년 이전까지 상업적으로 운행하는 증기 차량이 한 대도 없었던 나라였는데, 1850년경에는 약 1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철도가 전국에 깔려 있었다. 


1850년까지 100년 사이에 특허 건수는 20배 증가했다. 


자본이 축적될수록, 임금이 높든지 낮든지 간에 노동자의 상황은 점점 악화될 것이 틀림없다고 썼을 당시, 현실에서 일어나던 사건들은 그 말이 항구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수준으로 자본이 축적되고 경제가 성장하고 있었지만, 노동자의 상황은 악화하는 대신에 유례없는 수준으로 개선되고 있었다. 


자가 치유하는 도시


산업화로 영국의 크고 작은 도시들이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곳곳에 질병과 비참함이 가득했다는 이야기를 흔히 들어 알고 있다. 


그 이야기는 당시 상황을 꽤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원인을 기술하는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도시 환경은 이미 시골 환경보다 훨씬 덜 건강한 상태였다. 


영국의 크고 작은 도시들은 증기력을 이용하는 공장들이 군데군데 들어서기 훨씬 전부터 인구밀도가 높았고, 위생 상태가 열악했으며, 건강하지 못한 관습들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나와 있는 증거들은 산업시대가 발전할수록 도시가 여러 면에서 더 열악해진 것이 아니라, 더 건강해졌음을 시사한다. 


도시는 많은 질병을 퍼뜨리는 데 기여하는 한편으로 역학과 효과적인 방역 조치도 하기 때문이다. 


내연기관과 전기로 더 많은 힘을


전기는 제조업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가정, 인도, 도로의 불도 밝혔다. 


진공청소기, 세탁기, 식기 세척기, 건조기에 동력을 제공함으로써 노동력을 줄였고, 냉장고를 통해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었다. 


고층 건물의 승강기를 움직이는 덕분에 도시가 수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그 외에도 무수한 변화가 생겼다.


석유 산물을 역학 에너지로 전환하는 엔진은 자동차에서 항공기와 배, 트랙터, 기계톱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계에 빠르게 장착되었다. 


세계를 먹여 살리다. 


내연기관, 전기, 배관은 특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먹여 살리는 일을 떠맡았다. 


게다가 비료의 혁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산업시대의 첫 세기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비료는 땅에서 얻었다. 그런데 1898년 당시 영국 과학 진흥 협회의 회장이었던 화학자 윌리엄 크룩스는 세계의 빵 먹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기에 남아메리카의 구아노와 질산염이 고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룩스는 과학과 기술이 구원자로 나서지 않는다면, 전 세계에서 밀이 전반적으로 부족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행히도 그의 말처럼 과학과 기술이 구원자로 나섰다. 


물리학자 막스 폰 라우에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기에서 빵을 얻게 해 준 두 독일 과학자 덕분이었다. 그들은 질소를 고정함으로써 엄청난 문제를 해결했다. 


오늘날 비료 생산에 쓰이는 하버 보슈 법은 세계 산업 에너지의 약 1퍼센트를 사용할 만큼 인류에게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인류와 지구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 바츨라프 스밀 은 세계 인구 중 45퍼센트의 주도니 식단이 하버 보슈 법에 의지한다고 추정한다. 


산업시대의 돌파구들 (기술적 과학적 제도적 지적)은 인구와 번영을 늘리는 선순환을 일으켰다. 


호모 사피엔스의 인구가 10억 명에 이르는 데에만 20만 년이 넘게 걸렸다. 


거기에서 다시 10억 명이 늘어나는 데 걸린 기간은 125년에 불과했다. 1928년에 그 이정표에 달랐다. 그리고 10억 명씩 늘어나는 데 걸리는 기간이 점점 짧아져왔다. 


영양상태와 건강이 좋아진 덕분에 사람들의 수명은 점점 늘어났다. 


 Ⅲ. 산업시대가 만들어낸 오류


재산으로서의 인간


인류 역사 내내 많은 사회에서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유하는 것이 용납되어 왔다. 


인종, 종교, 부족이 다를 때에는 더욱더 그러했다.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는 노예제를 대하는 정서가 1700년대 말에 인본주의가 등장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인본주의는 인간이 희로애락을 겪을 보편적인 능력을 지닌다는 사실에 도덕적 관점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믿음이다. 


계몽은 때로 인본주의 혁명이라고도 한다. 수천 년 동안 모든 문명에 공통적이었던 야만적인 관습들을 폐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인본주의 혁명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오늘날 세계 인류의 대다수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편지에 썼듯이 노예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세상에 잘못된 것은 없다고 믿는다. 


노동으로 고통받던 아동들


급성장하는 공장, 제분소, 광산에서 아이들이 대규모로 녹초가 되도록 일하는 양상이 벌어졌다. 


가난한 집안, 특히 생계를 유지할 어른을 잃은 가정은 아이를 일터로 보낼 가능성이 높았고, 영국에서 교구 도제 아이들, 즉 대개 국가의 보호를 받는 고아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아예 없었다. 


그런 관습에 점점 분노가 쌓여서 19세기 전반기에 아동을 산업 노동자로 쓸 수 있는 연령을 높이는 법들이 잇달아 제정되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이런 제한도 너무나 미흡해 보이지만, 당시 상황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이 서거할 무렵에는 의무교육법, 대중의 정서, 공장의 제분소의 자동화와 표준화로 산업에서 아동 노동을 크게 줄였다. 


땅에 대한 지독한 욕망


계몽운동 이후에 사람을 재산처럼 취급하는 개념을 향해 분출된 도덕적 분노는 땅과 그 산물을 취하는 것에까지는 확대되지 않았다. 


여러 유럽 국가들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서 주민, 사회, 정부가 있는 영토를 차지하려고, 아니 적어도 통제하려고 한 데에는 산업시대의 엄청난 자원 욕구가 한 몫했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식민주의자들의 세계관을 상술했다. 


그는 1944년에 이렇게 썼다. 식민지 정복을 합리화하는 가장 현대적인 핑곗거리는 원료라는 구호로 요약된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지구의 천연자원이 공평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자신들의 구상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그들은 가지지 못했기에 지녀야 하는 것보다 많이 지닌 국가들로부터 공평한 몫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라고 했다. 


식민지 시대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마침내 저물었다. 전후 수십 년 사이에 전 세계의 국가들은 대부분 독립을 획득했다. 


2018년 경에 유엔은 비자치 영토로 남아 있는 지역이 16곳에 불과하다고 파악했다. 


불행한 사냥터


증기, 전기, 내연기관을 점점 더 사용함에 따라서 우리는 동물의 근력에 점점 덜 의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물을 먹고 동물의 사체를 생산물로 전환하는 일은 계속했다. 


그러면서 산업시대에는 한 가지 뚜렷이 대비되는 현상이 출현했다. 인간이 길들인 동물의 수와 종류가 크게 증가한 반면, 사냥한 동물 중의 상당수는 급감했다. 


현재 지구 포유류의 총 몸무게 중 97퍼센트는 우리와 우리가 기르는 동물들이 차지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전투


인간이 원하고 욕망하는 것은 무수히 많고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 미개한 사람이 원하는 것은 사실 야수가 원하는 것에 비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발전의 각 단계에서 사람의 욕구는 늘 소비해왔던 것들을 단순히 더 많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의 질도 더 높아지기를 원한다.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지기를 원하고, 내면에서 자라는 새로운 욕구들을 충족시킬 것들을 원한다. 


마셜은 경제 성장률에 관해 무미건조하게 요점을 정리하기보다는 인간 본성에 관한 심오한 진술을 했다. 우리 인간은 가질수록 더욱더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풍요나 소비가 어느 수준에 이르든 간에 만족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부유해져도 더욱더 많은 것을 계속 원한다. 


인간이 자신이 다음에 바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지만 몇몇 영리한 혁신가나 기업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도움을 주고, 그 욕구를 충족시킬 것들을 특정한 가격에 제공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지구의 유한한 천연자원 중 일부가 고갈될 거라는 가정이 적절하다. 


 Ⅳ. 지구의 날과 그 논쟁에 대하여


에너지 고갈


에너지원은 모든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 중 하나다. 


일부에서는 성장의 한계에서 추정한 에너지 보유량 값조차도 너무 낙관적이라고 보았다. 


생태학자 케네스 와트는 1970년에 이렇게 예측했다.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2000년 무렵이면 원유가 더 이상 남지 않을 속도로 소비하게 될 것이다. 


주유소에 차를 몰고 가서 꽉 채워주세요라고 말하면, 직원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미안합니다. 한 방울도 없어요.


한편에서는 에너지가 그렇게 풍부하지 않다는 것이 우리 인류에게 사실상 다행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에너지가 더 풍부했다면, 인류가 마구 써대면서 인구가 더 빠르게 증가하고, 지구의 자원이 더욱 빨리 고갈될 것이라고 보았다. 


 CRIR이냐 무덤이냐


기근, 치명적인 오염, 자원 고갈, 인구와 사회 붕괴, 이런 문제들이 명백히 엄청난 것이기에 갓 태어난 환경 운동 진영에서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또 이런 행동들이 어떠해야 한다는 데에도 합의가 이루어졌다. 첫 지구의 날 행사가 열릴 무렵에 나돌던 주된 제안들과 권고들을 읽고 있자니, CRIB이라는 약어가 떠올랐다. 


지구적인 문제들이 해결책이 덜 소비하고 Consume Less 재활용하고 Recycle 제약을 가하고 Impose Limits 귀농하는 Back to the land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 글을 마치며 ]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각 발전단계마다 중요한 사건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라고 한다면 산업혁명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산업혁명은 인간이 근육이나 동물 혹은 타인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기계적인 힘으로 이동하는 사건을 의미했다. 


기계적인 힘을 이용하면서 인간은 더 많은 물건을 소비할 수 있었고 나아가 더 많은 시간적인 여유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기계의 발전은 농작물의 생산량도 늘려주었고 이는 인구가 식량에 대한 고민을 벗어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식량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자 인구는 건강해졌고 수명이 늘어났고 결과적으로 인구의 증가속도는 더 빨라졌다. 


인구의 증가가 더 빨라지면서 더 많은 아이디어가 발생되고 결합되고 융합되면서 새로운 산업의 발전 속도를 더 앞당겼다. 


이렇게 앞당겨진 산업혁명은 다시 새로운 사회 변화를 만들어냈고 대표적인 것이 사무실이라는 공간이다. 


농촌이나 공장을 떠나 아무런 생산활동이 되지 못할 것 같은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모여서 인류는 정신적인 노동을 전개해나갔고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의 유입을 앞당겼고 현대화된 도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도시의 중심부는 사무실로만 가득 차게 되고 주변은 거주지역으로 대체되게 되고 공장은 더 먼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육체적인 노동에 비해 정신적인 노동의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짐으로 인해서 공장은 아예 국가적인 이동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자원을 본국으로 가지고 와서 제품을 생산해 다시 재수출하는 과정을 겪었다면 이제는 생산기지와 거점을 만들고 생산된 물건을 가지고 와서 소비하는 곳으로만 변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산업혁명은 더 많은 나라로 전파되게 되고 주변국들의 경제가 발전되게 되고 세계는 글로벌 공급망 체인이라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부터 벌어질 산업 혁명은 좀 더 다른 형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육체적인 노동력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노동력까지도 기계가 대체되게 됨으로써 분업화된 국가별 제조 산업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예전에 비해 적은 인간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공산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또한 자국에서의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게 될 경우 정부의 수입 규제 정책과도 맞물리면서 예전보다 더 효율적인 자본의 활용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자동화된 공장이 다시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워지고 있으며 이는 소비와 생산이 동일시되는 현상으로 발전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선진국은 고부가가치 산업인 IT 기업들의 세계 진출에 도움을 줄 것이고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그 영향력을 점점 더 늘려나갈 것이다. 


이런 상황을 요약해보면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명확해진다.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가 대체하는 것에 있어서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도서 : 포스트 피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