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몰려드는 페르소나 공간의 비밀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페르소나는 심리학에서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순간에서 자신에게 맞는 가면을 바꿔 쓰듯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다고 해서 멀티 페르소나라고 부르기도 한다.
페르소나는 또 다른 내 모습이라고 이해하면 되는데 이 형태가 자신의 내면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도 적용이 되어 공간이 가지는 특별한 정체성을 말하기도 한다.
공간이라는 것도 이제는 동일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정체성을 띄고 사람들에게 특수한 경험을 해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더 현대는 어떤 페르소나를 가진 공간이기에 각광을 받게 되었는지 한 번 들여다보도록 하자.
Ⅰ. 지루한 공간은 죽고 가슴 설레는 공간은 산다.
오프라인, 온라인, 모바일, TV, 라이브 방송, SNS 등 구매 채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냥 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이 다양한 채널을 오가며 매우 비 정형화된 소비 형태를 보인다.
이처럼 구매 채널이 극도로 혼종화하면서 오프라인 비즈니스는 디지털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온라인 비즈니스는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는 전선을 파악할 수 없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시대를 우리는 뉴리테일 시대라고 부르고자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채널이 거침없이 혼종 하는 뉴리테일 시대에 어떻게 하면 열망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가 핵심이 된다.
이것은 단지 유통업계만의 질문이 아니다. 휴먼터치, 즉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서비스 산업, 경제의 모세혈관이라고 할 수 있는 골목골목의 생활편의 산업, 고객이 직접 몸으로 부딪쳐야 의미가 있는 관광, 여가 산업 등 거의 모든 산업의 문제다.
아무리 비대면 기술이 발달하고, 쇼핑 채널이 많아지며 심지어 전염병으로 구매 활동이 제한된다 하더라도, 아니 어쩌면 그럴수록 더 따뜻한 사람의 손길, 편안하고 즐거운 공간, 만져볼 수 있는 상품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강해진다.
사람들은 온 오프라인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쇼핑 경험을 원하는 것이지, 오프라인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오프라인 산업은 하이브리드 채널의 도전에 응전하면서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해야 할 때다.
이러한 시기에 공간 비즈니스의 새로운 활로를 보여준 더 현대 서울의 경험을 되짚어 보자.
Ⅱ. 리테일 아포칼립스, 소매업의 종언?
포브스는 2020년 7월까지 미국에서 1만 3,800개 이상의 오프라인 매장이 폐점했다고 발표했다. S&P 글로벌 자료에 따르면, 미국 유통기업의 파산은 2014년을 기점으로 증가해 2017년 파산한 유통기업의 수는 40개에 달한다.
이후 잠시 주춤하던 유통기업 파산은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경영난이 크게 심화하면서 2020년 다시 높은 수준으로 증가했다.
2020년 12월 16일 기준으로 파산보호를 신청한 유통기업의 수는 51개인데, 이는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보다 높은 수준이다.
같은 현상이 백화점 천국이라는 일본에서도 나타났다. 일본 백화점은 이미 2009년 총매출액 규모에서 편의점에 뒤처지면 역전현상이 나타났고,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한때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던 일본 백화점은 2017년 기준, 전체 소매시장에서 비중이 5퍼센트 미만으로 축소되었고, 유통채널로서의 경쟁력을 잃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온라인 유통업체 12개사의 매출이 오프라인 유통사 13개사의 매출을 앞섰다는 통계가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리테일 아포칼립스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아포칼립스란 세상의 종말, 혹은 세계의 파멸이라는 뜻을 지닌 무시무시한 단어다.
리테일 아포칼립스는 대형 오프라인 유통기업의 위기를 나타내는 신조어로 오프라인 소매업의 몰락과 종말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뉴리테일 시대, 비즈니스의 미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을 파괴적 커머스라고 부른다. 파괴적 커머스란 제조, 도매, 셀러, 벤더, 리테일, 포털, 물류 업체 등이 각기 자기 영역을 깨고 통합되거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파괴적 커머스가 등장하는 것은 뉴리테일 시대의 큰 특징이다.
매경이코노미는 최근 오프라인 상권의 트렌드로 렌트 프리(무상임대)와 키 테넌트(핵심점포)를 꼽은 바 있다.
인기 브랜드는 임대료 면제를 제안받는데, 핵심점포가 임대인보다 우위에 서는 현상에 주목한 것이다.
나아가 집객 효과가 큰 유명 맛집, 서점 등의 핵심 브랜드가 부동산 상가 개발의 기획 단계부터 지분을 투자하며 참여하는 키 테넌트 참여형 개발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런 현상은 상권 개발이 좋은 입지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고객에게 즐거운 경험을 주는 콘텐츠와 브랜드의 유치가 핵심이 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뉴리테일 시대에는 입지의 선정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테넌트를 발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하면, 매체와 채널이 극도로 다양해진 뉴리테일 시대에 사람이 모이는 공간의 핵심은 입지보다 고객 경험이다.
Ⅲ. 페르소나 공간, 소비 관계 비즈니스의 미래를 짓다.
어떻게 공간을 장소로 만들 수 있을까? 바로 공간 요소의 외형적이고 물리적인 변화를 꾀할 뿐만 아니라, 고객이 공감할 수 있는 무형의 가치를 더해야 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그곳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이곳은 나의 공간이다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정체성의 동일시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동일시는 기존의 상업적 전략에서 진일보하여, 취향과 재미, 자연과 개방 같은 다양하고 흥미로운 체험 요소를 고려한 인간적 심리학적 기획이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이곳은 나의 공간이다.
개별 고객이 자기 정체성을 동일시할 수 있는 공간을 페르소나 공간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페르소나 공간이란, 공간이 이용자의 페르소나에 부합하는 개인적 취향, 흥미, 가치관, 라이프스타일 등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기획된 공간이다.
나아가 고객이 공간에서 자신의 취향 등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공간을 말한다.
Ⅳ. 외관 : 콘셉트는 등대다.
더 현대 서울이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고층 사무용 건물과 함께 들어서 있는 파크원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경이 설계했다.
로저스 경은 파리의 퐁피두 센터, 런던의 로이드 빌딩 등을 설계한 거장으로 첨단 공학 기술을 바탕으로 건축재료와 시공을 실험한 하이테크 건축의 거장으로 불린다.
빨강은 로저스의 시그니처 컬러다. 그가 퐁피두센터를 건립할 때부터 고수한 색이다. 사실 퐁피두 센터는 건물 안에 숨겨져야 할 철골과 배관, 심지어 에스컬레이터까지 외부에 그대로 노출해, 설립 당시 대중의 혹평과 전문가들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사실 흉측하다 혹은 신선하다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뉜다는 것 자체가 일단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극명한 호불호와 찬반양론은 도전적인 건축물을 접하는 대중의 일반적인 반응 중 하나다. 수천 년 역사를 담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 한복판에 난데없이 자리 잡은 중국 출신 건축가 이오 밍 페이의 유리 피라미드를 생각해보라.
파격적 양식의 건축물이 런던이나 파리에 세워졌을 때도 대중의 호불호는 명확했다. 더현대 서울은 새로운 건축양식 즉 포스트 모던 건축의 선두에 있는 로저스의 작품이자 초고도화된 도시 이미지를 구현한 하이테크 건축물이다.
Ⅴ. 비주얼 머천다이징 : 하지 않을 용기
구매행위가 일어나는 매장 공간은 생활이나 업무 공간과는 다르다. 단지 쾌적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구매 행위가 발생할 때야 의미가 있다.
공간이 구매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단지 멋진 인테리어만으로는 부족하다. 브랜드와 매장의 콘셉트에 맞게 제품을 전시하는 등 매장 전체를 꾸미는 작업을 비주얼 머천다이징이라고 하는데, 상업공간 인테리어의 화룡점정이 바로 VMD라고 할 수 있다.
VMD는 쇼윈도를 근사하게 꾸미는 일부터 매장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색상, 조명, 상품 배치를 결정하는 일을 한다.
이랑주 박사는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에서 매장에는 반드시 철학이 필요하지만, 그 철학이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상업공간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 그것이 VMD가 하는 일이다.
더 현대 서울의 VMD는 단순함을 추구했다. 가장 트렌디한 공간이 되기를 지향하지만, 단편적인 유행을 추종하지는 않는다.
Ⅵ. 약점은 나의 힘
여의도는 백화점이 들어서기에 단점이 너무 많은 지역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역설적이지만 더 현대 서울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단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상권이 왜소해서 어차피 지역 백화점으로는 가능성이 없으니, 광역상권을 지향하는 점포가 되어야 했다.
편집의 힘을 강조하는 김정운 교수는 제본된 공책보다는 낱장으로 된 카드를 사용하라라고 조언한다.
수시로 끼워 넣고 순서를 바꿀 수 있는 카드여야 상황 변화에 맞춰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책처럼 경직되어 있으면 곤란하다. 카드처럼 미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는 하나의 판을 미리 만들어야 한다.
약점은 나의 힘이다. 우리는 제약과 단점에 너무 위축될 필요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제의 약점이 얼마든지 오늘의 강점이 된다. 그러므로 일단 뜨겁게 시도하라.
[ 글을 마치며 ]
트렌드의 시대다. 오직 트렌디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말이 최근의 리테일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더 현대 서울의 경우는 외관에 대한 호불호부터 시작해서 공간의 활용이 기존 백화점과는 사뭇 다르다.
마치 테마파크와 백화점이 결합된 것 같은 느낌을 주어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사회적인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로 인해서 SNS 공간에서 열기가 뜨겁다.
주말에 백화점을 다녀왔다는 것을 친구들이나 주변에 자랑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개인의 소비가 누군가에게 자랑이 되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현대 서울은 다녀온 것이 마치 많은 사람들에게 동경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공간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집 주변에 있는 충분한 쇼핑센터를 사용하지 않고 먼길을 달려서 더 현대를 가보고 그곳의 분위기를 느끼고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이런 형태는 백화점이라는 공간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고 즐거움을 만끽하는 공간으로서의 활용도가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더 현대 서울이 현재의 리테일 상황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특별한 경험을 하고 체험을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위치적 지리적인 제약을 뛰어넘어 이동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이런 현상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기존에는 이런 곳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었고 광고의 한 부분으로만 치부되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공감을 얻어내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수의 사람들이 각자의 시선에서 각자가 느끼는 것을 공유하고 이런 현상으로 인해서 대다수의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강력한 다양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더 현대 서울이 주는 의미는 리테일의 다변화, 정체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넘어 앞으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는 것 같다.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것을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이 예전에는 시장에 전파되고 피드백으로 돌아오는데 많은 시간과 수고로움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더 쉽게 연결되고 돌아오는 시대이기 때문에 기꺼이 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말하자면 서울을 대표하는 어떤 곳, 한국을 대표하는 어떤 곳은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꼭 명소나 장소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것을 차별화하는 것이 무기가 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지루한 공간은 죽고 가슴 설레는 공간은 사는 것처럼 가슴 설레는 뜻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참고 도서 : 더현대 서울 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