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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May 13. 2022

비겁한 돈

성공적인 투자를 하기 위한 사전 준비를 하자.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돈을 목적으로 삶을 살아서는 안 되지만 돈이라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다양한 이유로 삶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대학생 때에는 유행을 좇으며 옷을 사거나 신발을 사고 싶어지고 회사원이 되어서는 차를 구입하고 여행을 다니고 싶어 진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집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시간이 좀 더 지나서는 노동력에 대한 보상이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노후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을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는 돈이라는 재화에 대해서 항상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돈이 조금 더 여유로울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에 투자에 나서지만 투자의 세계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투자의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면 좀 더 성공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담과 조언 같은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라 정리를 해보았다. 


그럼 비겁한 돈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알아보자. 


Ⅰ. 시간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망상뿐이다. 


시간은 금이다.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참 무서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짧은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우리 인생은 완전히 바뀐다. 예전에 나는 이 말을 그저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해도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시간이므로 황금처럼 소중하다는 뜻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돈이 목적이 되는 삶,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삶을 받아들이면서 이 말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 


시간이 금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시간이 금과 같은 재화라는 뜻이다. 


재화는 사람의 삶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도구이다. 이어서 해석하면 시간은 사람의 삶을 바꾸는 재화이다. 그것도 가장 공평한 재화 말이다. 


우리 모두에게 시간은 공정했다. 모두에게 시간은 동등한 재화였다. 다만 이 재화를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졌을 뿐이다.


투자의 개념으로 보면 더욱 확실하게 보인다. 시간이라는 재화를 어떠한 항목에 투자했느냐에 따라 자산의 규모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마이너스지만, 누군가는 1000%의 수익률을 얻었다. 


시간을 투자에 쓰라는 이야기는 단순히 투자물의 가격이 오를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리라는 뜻만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무언가를 선택하기 위해 고민하는 데 쓰는 시간도 그만큼 중요하다. 이는 절대로 한순간의 선택이 아니다. 그 선택을 결정하기까지 들인 시간의 결과이다. 


모든 선택은 결국 시간을 투자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이폰 하나를 사기 위해 일주일을 검색에 쓴 시간처럼, 애플에 투자하기 위해 그 기업의 가치를 일주일 이상 들여다보고 고민한 시간처럼 말이다. 


자본이라는 재화를 투자하기 위해 그에 앞서 시간이라는 재화를 투자한 것이다. 


투자에 성공하는 모든 이들은 시간이라는 재화의 가치를 알고 있다. 


투자를 시간과 엮어서 생각하지 않고, 오직 돈을 어디에 넣을지만 고민했던 사람이 성공한 투자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투자를 시작한 사람들의 시간은 이상하게도 빨라진다. 


빨리 뭔가에 투자해서 빠른 시간 안에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기를 바란다. 귀가 팔랑거리기 시작하고, 이상하게 이때가 되면 남의 말도 잘 믿는다. 


전문가의 말 몇 마디를 듣고 뉴스 몇 개 읽고는 마음이 급해진다. 공부 한 글자 안 하고 시간을 투자해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하다못해 핸드폰 하나 살 때도 몇 달간 고민하며 유튜브란 유튜브는 다 찾아보고, 어디가 싼 곳인지 확인하고, 발품 팔고 여기저기 물어가면서 살까 말까 고민한다. 


그런데 정작 몇백, 몇천만 원의 돈을 주식시장으로 넣을 때는 하루도 고민하지 않는다. 


투자라는 욕망이 가진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워서일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다급해진다. 


너도나도 돈을 버니까 자신도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한다. 남들이 돈을 버는 모습은 보이지만 남들이 그 돈을 벌기 위해 어떤 시간을 썼는지는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간사하게도 사람들은 돈을 벌었을 때는 떠벌리고 다니지만, 돈을 잃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침묵해버린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 때문에 준비 없이 시작해 돈을 잃은 사람의 눈물이 자신의 것이 되리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 


그렇게 돈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시간을 써야 한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이 늘 걸리는 저주가 하나 있다. 


바로 라면의 저주다. 


비트코인을 샀더라면, 애플 주식을 샀더라면 삼성전자 주식을 샀더라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샀더라면 ~했더라면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저주에 걸리는 것이다. 


내가 사실을 그때 그거 살 뻔했다고 그거 샀으면 지금 부자가 됐을 거라고 말이다. 지긋지긋하지 않은가? 


투자에 성공한 사람들은, 투자하지 못한 이들이 말하는 ~라면의 이점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사람들이다. 


반대로 당신이 현재 그 지점을 아쉬워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당신이 그곳에 아무런 시간을 투자하기 않았기 때문이다. 


 Ⅱ. 시간이란 열심히 쓰는 것이 아니라 똑 부러지게 쓰는 것이다. 


내 꿈은 침대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노동이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서 휴대전화를 보고 지겨우면 TV를 켜서 채널을 30번쯤 돌린다. 


넷플릭스를 켜서 새로운 미드가 나왔나 살펴보다가, 특별히 볼 게 없으면 다시 끄고 휴대전화를 본다. 


배가 고프면 그냥 배달을 시켜서 한 끼를 때운다. 비가 오면 라면이 먹고 싶은데 끓여 먹는 것조차 귀찮아서 컵라면을 먹는다. 


침대에서 만화책을 보고 물이 떨어지면 마트에 전화를 걸어 즉석밥과 함께 시킨다. 라면에 밥을 말아먹을 용도로 말이다. 


대신 이 게으름을 통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에너지를 비축한다. 스트레스 없이 시간을 온전히 쏟을 한 지점을 발견하고, 게으름을 통해 그 지점에 온 힘을 쏟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 나이기에 하고 싶은 일이 걸리면 달라진다. 목적이 생기면 다르다. 한창 공개 코미디 무대에 섰을 때는 개그를 만들어서 무대에 올리는 것이 단 한 번도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게 개그에서 요즘의 관심사인 투자로 바뀌었을 때도 똑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자마자 모든 신문과 TV에 나오는 경제 관련 소식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하루 1000개의 경제 기사를 보는 것이 목표가 아닌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목적이 생기면서 게으르다는 단어는 초집중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었다. 이 모든 것이 게으름을 통해 확보한 여유로부터 출발했다. 


누구보다 게으르기에 하고 싶은 일에 쓸 온 힘이 늘 남아 있었다. 


당신 역시 마찬가지였으면 좋겠다. 당신의 게으름을 받아들이고, 당신의 시간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억지로 스트레스받으며 정작 중요한 일을 낮은 질로 해내지 않기를 바란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높은 질로 일을 해내는 당신만의 패턴과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기억해야 한다. 시간은 차근차근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똑 부러지게 쓰는 것임을.


 Ⅲ. 쉼 속에 반전의 기회가 있다. 


성공한 광고의 시작은 회의장이 아닌 술자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기획은 논리이지만 논리의 발화점은 이성이 아닌 감성에서 시작한다. 


시장을 뒤집고 본질을 꿰뚫는 한 줄의 생각은 절대 고통스럽게 머리를 맞대고 앉아 공무원 시험 준비하듯 회의하는 상황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상은 사람들에게 앞만 보고 달리라고 채근한다. 인간은 경주마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자꾸 달리라고 보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배운다. 


그것을 성실하고 열정적인 것이라고 포장한다. 그러다 보니 쉰다는 것은 나태한 것으로 게으르게 요령이나 피우는 것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야장천 자리에 앉아 엉덩이로 일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는 성실한 사람이 되고, 일을 능률적으로 해서 훌륭하게 끝마친 뒤 자리를 비운 사람은 요령이나 부리고 잔머리 굴리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아직도 그렇다. 직장 상사나 윗사람들은 그놈의 열심히만 주야장천 외치며 절대 쉬는 꼴을 보려 하지 않는다. 쉴 새 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기발하고 번뜩이는 전략을 짜내라고 말한다. 


정작 자신들이 그렇게 노력해도 멋진 전략을 만들 수 없었음을 십 년 넘게 경험해왔으면서 말이다. 


우리 사회의 이상한 강요는 우리에게 쉰다는 행위에 두려움을 갖도록 만들었다. 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쉬면 불안해진다.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집에서 혼자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고 있지만 왠지 모를 불안과 막막한 두려움에 휩싸여본 경험을. 


이렇게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거려도 되나? 누군가는 이 시간에도 열심히 뛰고 있을 텐데.


이러다가 결국 나만 뒤처지는 것 아닐까? 당신도 이렇게 생각해보지 않았는가? 이 모든 것들이 말한다. 


우리는 쉼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제대로 쉬는 방법을 모르고 제대로 쉬지 못한다. 이것이 악순환이 된다. 


쉬어보지 못할수록 점점 더 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쉬어야 한다. 불안해도 어떻게든 쉬어야 한다. 


쉬어야 비로소 삶의 반전의 계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은 낯설다. 낯설다는 것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두려움은 가지 못한 이유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내딛는 한 발을 통해 세상은 언제나 바뀌어왔다. 


천하태평하게 들리는 쉼이야말로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도전이자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이며 나의 세상을 바꾸는 시발점이다. 


Ⅳ. 쓰는 것에 대해 새롭게 정의 내려보기


나는 돈을 쓰는 즐거움보다, 돈으로 어떤 물건을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즐거움이 더 큰 사람임을 깨달았다. 


1억 원짜리 외제차를 사면 사는 순간에는 즐겁지만, 어느 순간 그 차가 익숙해지고 나면 내게 더 이상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반면에 1억 원짜리 외제차를 언제나 살 수 있는 경제적 상황은 늘 내게 변하지 않는 즐거움을 준다. 그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면, 그 물건을 가지지 않아도 더 행복하다. 


1억 원짜리 외제차를 무리해서 사야 할 때는 그게 그토록 갖고 싶었지만 그 차를 무리 없이 사게 되었을 때는 더 이상 갖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가난한 자는 소비에 통제당하고 부유한 자는 소비를 통제한다. 


이 말을 깨닫고 나는 투자로 돈을 버는 순간에도 번 돈을 소비로 증명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소비가 아닌 투자로 늘어날 수 있는 가치에 초점을 맞췄다. 


지금 내가 쓰는 이 돈이 투자에 쓰였을 때 얼마나 더 불어날 수 있는가에 집중했다. 


그렇게 불어난 돈이 내게 얼마만큼의 권력을 줄지, 내게 얼마만큼의 시간을 선물해줄지에 집중했다. 그 권력이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마음껏 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덕분에 투자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도 결코 과소비하지 않고 과시하지 않으며 또한 자랑하지 않았다. 


더 큰돈을 벌기 위해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처음 정한 금액과 계획을 착실히 지킬 수 있었다. 


이건 전적으로 나의 이야기다. 얼마든지 다른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할 수도 있고, 그 과시욕을 채우기 위해서 더 많은 돈을 벌 의지를 만들 수도 있다. 


결코 그게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소비하는 즐거움이 더 커서 세상 모든 것을 돈으로 사기 위해 더욱 열심히 투자할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떠한 방향이든 돈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자기만의 답을 내리면, 자기만의 투자의 방향도 정해진다는 것이다. 


당신도 당신만의 쉼을 통해 당신에게 돈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길 권한다. 


[ 글을 마치며 ]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보면 자본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자산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커지면서 소득 불평등이 발생된다는 내용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의 토대가 자본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조금 더 이해가 쉬워진다. 


자본주의를 영어로 하면 Capitalism이라고 하면 자본 = Capital이고 해석은 재화의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반대는 사회주의(Socialism)로 재화의 소유를 공동으로 하는 것을 말하며 개인의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두 개의 체제에 대해서 좀 더 심도 깊게 들여다보면 자본주의는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인간의 이기심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경제가 발전되는 현상은 타인을 돕기 위한 선한 의지보다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좀 더 많은 재화를 얻기 위해 경쟁할 때에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는 무한 경쟁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시장은 경쟁이 자유롭게 발생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규제만을 준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논리라고 보면 된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은 경쟁을 쫓고 더 많은 이익을 위해서 이동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자본은 경제를 성장시키는 중심이 되고 노동생산성보다 더 빨리 자산이 증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투자라는 행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투자를 하지 않고서는 경제 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임금 상승률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성장률이 둔화되어 경제적 자유는 꿈을 꿀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의 증식을 통한 경제적인 안정감을 얻기 위한 행위로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함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투자라는 행위를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결국 투자라는 행위도 시간을 들여서 공부를 하고 고민을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투자를 한다는 것은 자신이 힘들게 모은 종잣돈이 어떤 곳에 누군가가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자신이 모으기 위해서 노력한 시간만큼의 노력을 들이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년이라는 시간을 돈을 모으기 위해서 노력했다면 최소한 1년이라는 시간만큼은 투자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공부의 기반이 없으면 투자의 기회를 알아볼 눈도 없게 될 것이며 자신이 하는 투자의 성과가 좋은 것인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도 어렵다. 


그런데 우리가 투자라는 행위를 쉽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공부를 많이 한 사람과 공부를 적게 한 사람과의 차이가 반드시 비례해서 수익성을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이 동일한 시간에 투자를 시작해서 동일한 시간에 투자를 끝내면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충분한 공부를 하지 않고서 투자의 세계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분명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신의 선택을 좀 더 현명하게 이끌 수 있고 좀 더 좋은 결과를 분명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전에 투자라는 행위를 즐거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하고 공부라는 자체를 즐거워해야 한다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를 떼어놓고는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없으며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공부가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참고 도서 : 비겁한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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