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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Dec 17. 2023

김미경의 마흔 수업

내 나이에서 17살을 빼라.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나이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여전히 나이 마흔을 30년 전의 안정되고 완성되는 나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아니,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과거의 마흔을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안전해 보이는 현실의 장벽을 벗어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을 깨고 달라진 현실을 직시하게 할 수는 없을까.


그때 발견한 것이 바로 중위연령이라는 개념이다. 중위연령은 국내 인구를 출생연도별로 줄 세웠을 때 가운데 위치한 나이다. 


1994년 통계청이 발표한 중위연령은 29세, 2023년의 중위연령은 46세다. 30년 만에 17년의 차이가 난다. 

벌어진 17년만큼 우리는 인생의 후반전이 길어졌다. 


이제 100세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를 살아간다. 그렇다면 당연히 생애 주기에 대한 재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30년 전 옛날 생각만 하고 있으면 인생 후반전에 엇박자가 나면서 우왕좌왕하게 된다. 


마흔이 되면 어른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 많은 부분이 서투르고 어색하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 마흔을 잘 다스리고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 


Ⅰ. 마흔 희망이 현실로 드러나는 나이


40대는 원래 가장 무거운 인생 숙제를 안고 살아가는 시기다. 


그런데 여기에 마흔의 고질병, 우울과 불안이 더해진다. 


마흔이 되면 어느 정도 자리 잡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집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어요.


회사에서 팀장이 되긴 했는데 연봉은 별로 안 오르고 중간에서 힘들기만 해요. 


남들은 결혼해서 남편이랑 아이도 있는데 저는 결혼도 못 하고 외롭게 살다가 죽을까 봐 겁나요. 


결혼을 늦게 해서 아이가 아직 일곱 살인데 스무 살이 되면 제가 거의 60이에요. 돈은 계속 많이 들어가고, 매달 생활비조차 빠듯하니 이 나이까지 뭐 했나, 내가 잘못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마흔이 된 지금까지 이룬 게 없다는 자괴감, 마흔의 우울은 이 자괴감에서 비롯된다. 


30대까지만 해도 믿었던 모든 희망이 무너져 내리는 현실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결혼한 여성들의 경우에는 이 사람만 믿고 살면 되겠구나가 이 사람만 믿고 살다 간 큰일 나겠다로 급격히 돌아선다. 


꼭 그가 해낼 것 같았던 10년 전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내가 나서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라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그러다 어느 날 현실을 자각한다. 왜 생활비는 항상 200만 원이 모자라지? 버티다 못한 여성들이 돈을 벌러 나오거나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


재취업 현장에 40대의 경력 보유 여성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이에 대한 희망도 현실로 바뀐다. 어렸을 때 영재인 줄 알았던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점점 나랑 비슷해진다. 


결국 영재는 아니었다. 결혼하면서 아이라도 잘 키워야지 했던 결심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남편은 벌고 아내는 육아와 살림을 매니지먼트하고 아이는 공부해서 좋은 대학 입학이라는 성과를 내는 완벽한 원 팀을 꿈꿨건만, 아이는 부모의 소원을 들어줄 마음이 없다. 


결혼 안 한 40대 싱글들 역시 다르지 않다. 여전히 혼자라는 현실, 괜찮은 남자들은 이미 죄다 사라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 


남자가 없으면 돈이라도 있든가 커리어라도 정점을 찍었어야 하는데 이도 저도 아니다. 10년 이상 쉼 없이 일했는데도 내 집 하나 장만하지 못한 현실이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다. 


Ⅱ. 두 번째 인생, 세컨드 라이프가 온다. 


100세 인생, 나는 요즘 이 말을 장례식장에서 실감한다. 


지인들의 부모님 장례식에 가면 90세가 넘어 돌아가셨다는 분들이 적지 않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83.6세다. 지금도 의학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으니 지금의 40대 들은 정말 100세까지 살고도 남을 것이다. 


그동안 사회는 우리 인생을 3단계로 구분했다. 20~30대를 청년, 40~50대를 중년, 60대 이후를 노년이라 불렀다. 


우리 역시 60대 이후를 노후라 부르며 그 시기의 삶을 계획하지 않았다. 


80세까지 적당히 살다 보면 떠날 때가 됐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40~50대는 이 구분이 아무 의미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게다가 요즘 중년층은 날이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 관리를 잘해온 내 또래들도 열 살 이상 젊어 보인다. 


라이프 스타일도 트렌디하다. 20대에 팝을 즐겨 듣던 사람이 60대가 됐다고 갑자기 트로트로 취향이 바뀌는 일은 드물다. 


젊은 시절에 누리던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은 나이가 들어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젊고 건강하고 트렌디한 60대 이후의 시간을 여전히 노후라 부른다. 


나는 예전부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후라는 말에는 그 시간을 채우는 콘텐츠가 없다.


기껏해야 여행이 전부다. 노후라는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보면 줄이고 아끼고 포기하는 것밖에 없다. 


어떻게 인생의 절반을 지나자마자 40년이나 되는 길고 긴 시간을 노후라는 단어 하나로 묶을 수 있나. 생명이 붙어 있는 한, 내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수동적인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꿈을 중심으로 생애주기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20세까지는 유년기, 20대부터 40대까지의 30년을 첫 번째 꿈을 가지고 뛰는 퍼스트 라이프, 50~70까지의 30년은 두 번째 꿈을 가지고 뛰는 세컨드 라이프, 그리고 80~100세까지가 노후다. 


지금 40대들은 퍼스트 라이프의 마지막 10년을 사는 중이고 이제 60세가 된 나는 세컨드 라이프의 중반기에 들어섰다. 


Ⅲ. 다 내려놓으라는 거짓말


인생 숙제를 끝내놓고 60세부터 100세까지 원하는 인생을 살려면 59세까지는 열심히 달려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살고 있다. 50대부터 슬슬 속도를 줄이더니 60대부터 아예 정지해 버린다. 


60대도 버리고 70대도 버리고 80대부터는 그저 연명이다. 


40대를 인생의 정점이라고 생각하니 그 후에는 아껴 쓰는 재무 설계 외에는 어떤 인생 설계도 하지 않은 채 60대 이후의 삶을 사실상 쓸모없는 시간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50세가 되고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빴다. 40대에 워낙 저질러 놓은 일이 많았고 하다 만 일들도 쌓여 있어 그걸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벌어둔 돈도 별로 없었고 강사 커리어도 여전히 불안했고 아이들도 아직 독립을 못해 더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때는 워낙 바빠서 50대로 넘어간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던 것 같다. 


내가 잠시 멈춰 서서 인생 시계를 들여다보며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50대 중반부터다. 


60대를 향해가고 있는데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할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괜찮은 롤모델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사람을 찾기도 어려웠다. 


들리는 조언이라곤 어쩜 하나같이 아껴 쓰고 조심조심 살고, 다 내려놓으라는 흔하디 흔한 말들 뿐인지.

그중에서도 특히 속으면 안 되는 조언이 다 내려놓으라는 말이었다. 


이제야 겨우 가족 부양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제대로 자기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에게 다 내려놓으라니.


60대는 다 내려놓을 때가 아니라 진짜 챙길 것들을 챙겨야 하는 나이인데 말이다. 


Ⅳ. 어떻게 자존감과 품격을 지키며 살 것인가


퍼스트 라이프의 핵심 키워드는 성장이다. 가족과 사회라는 단체 안에서 어떻게 나답게 성장할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다. 


사회 속에서 경쟁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일에 몰입하며 나의 가치를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핵심 키워드가 바뀐다. 치열했던 단체 안에서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개인으로서 어떻게 자존감과 품격을 지키며 살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다. 


나는 이것을 존엄한 삶이라고 부른다. 자기 결정권을 가진 개인으로서 끝까지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 존엄한 삶이다. 


삶이 존엄해지려면 꼭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돈과 철학이다. 두 가지가 모두 있어야 두 번째 꿈이 무엇인지 제대로 답할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돈이 없으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 아무리 나만의 고귀한 철학이 있어도 지켜낼 수가 없다. 


돈 때문에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고, 돈을 가진 사람에 의해 내 삶이 결정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욱더 자식들이 부모의 존엄성까지 챙길 여유가 없다. 


부모도 자녀도 너무 오래 사는 만큼 100세의 존엄과 70세의 존업이 모두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40대부터 경제적 기반을 준비해야 한다. 


Ⅴ. 회사를 그만두면 잃는 일곱 가지


첫째 당연히 월급이다.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진다. 그는 자신과 아내가 한 달에 얼마를 쓰는지부터 꼼꼼하게 따져봤다고 한다. 


이 돈이 사라져도 정말 괜찮은지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 사실을 감당해야 할 아내에게 솔직하게 터놓고 물어본 것이다. 


둘째는 인맥이다. 지금까지는 잘 나가는 방송국 pd 명함으로 비즈니스 파트너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회사를 그만두면 내 이름 뒤에 붙는 수식어가 사라진다. 


셋째는 분업이다. 회사에서는 내가 맡은 일만 잘하면 되지만 회사 밖에서는 모든 일이 내 책임이 된다. 


넷째는 신용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은행이 나에게 친절하지만 퇴사하는 순간 은행은 180도 달라진 표정과 태도로 나를 본다. 


그러니 퇴사 전에 은행의 도움 없이도 당당할 수 있게 자생력 있는 비즈니스를 구축해야 한다. 


다섯째는 전문성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버리고 회사 밖으로 나오면 그동안 자동적으로 주입되면 업계와 트렌드 정보에 뒤쳐지게 된다. 


회사 안에서는 업무 상식이던 정보들이 회사 바깥에 나가면 발품 팔아 얻을 고급 정보가 된다. 


여섯째는 방향성이다. 사람들은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하기 싫어서 퇴사를 고민하지만 회사가 방향을 정해주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덜한 것도 사실이다. 


퇴사하는 순간부터 내가 모든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마지막은 거의 모든 것인 안정성이다. 위의 여섯 가지가 사라지는 순간 내 삶은 송두리째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 글을 마치며 ]


인생을 살아가면서 미래에 나는 어떤 모습인지 상상을 많이 한 적이 있다. 


20대에는 후반에 어떤 모습이 되어서 어떤 상황에 놓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행스럽게도 생각한 것만큼이나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었고 괜찮은 삼십 대 초반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삼십 대 초반에는 너무 시간을 허비한 나머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삼십의 중반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에 정신을 차리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마흔을 준비하고자 했고 마흔이 된 지금 시점에 일차적으로 내가 원하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않았나 자평해 본다. 


그런데 이제부터가 문제이다. 


마흔 이후의 삶 오십이 되었을 때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고민을 최근에 많이 하고 있다. 


오십이 되었을 때에는 지금보다는 좀 더 여유로운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런데 당장 내년이 되면 지금과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해본다. 


그렇게 시간을 조금씩 줄여나가다 보면 당장 다음 반기에 다음 분기에 다음 달에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당장 내일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상상을 해본다. 


이렇게 까지 생각을 좁혀나가다 보면 오늘 내가 어떤 노력을 들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인생의 변화는 한순간에 오는 것이 아니다. 


매일매일 꾸준히 노력해서 조금씩 변화한 것이 결과물이 되어서 나에게 오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이렇게 책을 읽고 정리하고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분명 나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더 많은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것들을 내 삶에 접목시킬 수 있도록 매일매일 정진할 수 있도록 하자. 


마흔은 새롭게 무엇인가를 준비하기에 매우 좋은 나이이다. 그리고 분명 무엇인가 변화를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서 다가올 오십과 육십에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나이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하자. 


참고 도서 : 김미경의 마흔 수업 확장판 ( 김미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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