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우리의 삶은 다양한 고통과 고난이 반복된다.
다양한 어려움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이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어려움들 속에서 가끔은 지치기도 하고 심리적으로 휴식이 필요할 때도 존재한다.
그럴 때에 마음을 어루만지는 한 문장은 삶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 누구도 공감해주지 않는 고민이 있을 때에는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누군가의 문장을 하나 마주하고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그럼 이 책에서는 어떤 조언을 해주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Ⅰ. 절실히 원한 모든 순간이 날개
신이 말했다. 절벽 끝으로 오라.
나는 말했다. 할 수 없어요. 두려워요.
신이 말했다. 절벽 끝으로 오라.
할 수 없어요. 추락할 거예요.
신이 다시 말했다. 절벽 끝으로 오라.
그래서 나는 갔고, 신은 나를 절벽 아래로 밀었다. 나는 날아올랐다.
학교 졸업 후 결혼을 하고 직장도 없이 서울 수유리 북한산 밑에서 셋방살이를 했지만, 내게는 한 가지 꿈이 있었다.
영적 스승들을 만나러 인도로 떠나는 일이었다.
그곳에 가면 삶의 의문에 관한 몇 가지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완전한 깨달음은 아니더라도 영적으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어야만 현실에서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가진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왕드롭프스 깡통에 든 천 원짜리 지폐 서너 장과 동전 몇 개가 전 재산이어서 버스도 못 타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처지에 인도는 상상 속 나라일 뿐이었다.
당나라의 현장 법사가 2년 동안 갈아서 천축구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돈 대신 체력을 비축한다는 핑계로 산을 오르내렸다.
탈진해서 체력을 오히려 바닥났고, 하는 수 없이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림잡아 내 정신세계를 이해해 줄 법한 스무 명에게 손 편지를 썼다.
여행 경비를 도와주면 깨달음을 얻고 돌아와 열심히 일해서 꼭 갚겠다는 심금 울리는 편지였다.
의사와 교수도 있었고, 이름난 화가도 있었으며, 회사에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전 재산의 상당 부분인 왕드롭프스 통의 동전을 쏟아 편지를 부쳤고, 그날 이후 내 발길은 산이 아닌 은행으로 향했다.
입금 여부를 확인하는 그 하루하루 마음은 기대와 희망으로 날갯짓했지만, 돈이 넉넉히 들어오면 슬리핑백과 카메라도 사야겠다고 내심 미소 지었지만, 여비에 보태라며 돈을 보내 준 이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이제야 밝히지만 사실 그 한 명마저도 아내에게 내 위상을 돋보이려고 꾸며낸 거짓말이었다.
내 말을 믿은 순진한 아내는 그 돈을 어디에 썼느냐고 어려울 때마다 물었다.
편지 내용에 심금이 울린 사람은 스스로의 글에 도취한 나 자신 뿐이었다.
현실을 깨달은 나는 중단했던 번역 일에 다시 매달렸다. 그 이후 밤샘 작업을 밥 먹듯 했으며, 단 하루도 허투루 빈둥거리지 않았다.
다른 저자의 원고를 윤문해 주고, 대리 집필도 했다. 오로지 인도에 갈 경비를 모으기 위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꼼짝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기분이었다.
출판사들은 차일피일 지불을 미뤄 포기하게 만들거나, 준다 해도 몇 달에 걸쳐 주었으며 그렇게 받은 원고료는 생활비에도 못 미쳤다.
아내는 가난에 허덕이다 병에 걸렸고, 병이 완치된 후에는 아이가 생겼다.
당연히 더 죽어라 일해야 했다. 경제적으로 추락하는 데는 날개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마흔 살이 넘고 쉰 살이 되어도 인도 여행은 불가능했다.
어느 날, 잠에서 눈을 뜬 나는 나 자신이 미라가 된 환영을 보았다. 이집트 무덤에서 발굴된 것과 같은 천년 된 미라, 몸을 감싼 천을 벗기고 내부를 CT 스캔하다 해도 미라의 주인공이 생전에 가졌던 못 이룬 꿈을 알 길이 없다.
마침내 만삭이 가까워 오는 아내에게 이해를 구하고 돈 되는 물건을 다 팔아 최소한의 생활비를 손에 쥐여 준 뒤 인도의 명상 센터로 떠났다.
여비가 부족해 가계부 쓰듯 밤마다 돈 계산을 해야 했다. 그래서, 한 달 뒤에 돌아와서는 영적 자유를 얻었는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했고, 또다시 인도에 가려고 더 많은 밤을 새워 일해야 했다.
그때의 문장들이 나를 키웠다. 절실했고, 주위에서 미쳤다고 할 만큼 일에 몰두했다.
좌절감이 들 때도, 혼자서 희망에 들떠 머리가 뜨거울 때도 글을 썼다.
현실에서 살아남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길이 없었다. 영적 가르침이 담긴 책들을 번역했지만, 돈이 필요해서 죽어라고 일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노동에 몸을 바치지 않으면 영적 자유에 근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돈을 원한 것이 아니라 꿈을 원했다.
무명작가였던 도스토예프스키를 세계적 문호로 만든 원동력은 돈이었다.
지주 계급 출신이어서 경제적으로 자유로웠던 투르게네프나 톨스토이와 달리, 도스토예프스키는 빈민구제병원 의사인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약간의 재산을 다 써 버린 후 한 푼의 원고료라도 더 받기 위해 글쓰기에 매달렸다.
늘 돈이 궁색해 글 쓰기 전에 먼저 원고료를 받았으며, 빚을 갚기 위해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글을 써야 했다.
그렇게 해서 가난한 사람들과 죄와 벌 같은 돈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다루는 것을 넘어 심리적 고찰의 대상으로 접근한 명작이 탄생했다.
미국 작가 레이먼드 카버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에 결혼해 스무 살에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제재소 일꾼, 배달부, 주유소 직원, 건물 수위, 화장실 청소부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일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차고에서 글을 썼다.
당장 원고료가 필요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완성할 수 있는 단편소설을 주로 썼다.
그렇게 매일 글을 쓴 결과 20년 후에는 단편소설의 대가가 되어 있었다.
카버로 인해 1980년대 미국 문학은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쉰 살에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다면 단연코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것이다.
찰스 디킨스는 단어 수만큼 원고료를 받았기 때문에 단어를 계속 늘리다가 전 세계 2억 부 넘게 팔린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명문장들이 만들어졌다.
모두가 인용하는 소설의 첫 단락도 단어들을 늘려 쓴 결과물이다.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월이자 의심의 세월이었다.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앞에 모든 것이 있으면서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천국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반대 방향으로도 가고 있었다.
나의 시간과 계절이 그러했다.
힘들 시절이 행복한 결말을 가져다준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나 자신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Ⅱ. 달을 보라고 하면 달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자를 보라.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것은 불교의 명언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누군가가 달을 보라고 하면 달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자를 보라고 했다.
당신이 달을 보면 누구에게 유리하며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살피라는 것이다.
포코는 우리가 진리가 받아들이는 지식은 권력을 가진 집단이 만들며, 그 지식이 다시 그 권력 집단을 지탱한다고 보았다.
진리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또는 권력 집단에 의해 정해지는 하나의 지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그 사람은 죽어 본 적도 없고 천국을 본 적도 없으므로, 그 말을 진리라고 믿고 따르기 전에 말하는 그 사람을 봐야 한다.
어떤 사람이 영적 깨달음을 이야기하거나 어떤 정치인이 정의와 국민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은 왜 그것을 말하며, 당신이 그의 추종자가 됨으로써 그 사람은 어떤 권력을 얻는가?
인문학 저자이며 뛰어난 번역가인 남경태는 푸코의 철학을 설명하면서 피노키오의 예를 든다.
피노키오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옳고 그름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문제가 있다. 옳고 그름이라는 것이 당연히 존재하는 것처럼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피노키오는 옳고 그름 자체에 대한 의문을 품지 말고 이미 존재하는 옳고 그름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따라야만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피노키오가 생명을 얻은 바로 다음 날 처음으로 하는 사회적 행동은 학교에 가는 일이다.
옳고 그름을 배워 인간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기성복을 주면서 그 옷이 절대 치수인 양 우리가 그 옷에 맞지 않으면 전적으로 우리 잘못이라고 결론 내린다.
옷이 몸에 맞지 않을 때, 자신이 둥근 구멍 속에 박힌 사각나사 같은 이분이 들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최선을 다해 옷과 구멍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가?
[ 글을 마치며 ]
이 책에서 나오는 두 가지 이야기는 마음에 담아두고 힘들 때에 다시 곱씹어 보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으면 한다.
첫 번째는 절실히 원한 모든 순간이 날개가 되어 준다는 것이다.
삶을 살면서 가끔 남 탓을 하면서 원망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것들이 심리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데에는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시켜 주지는 않기 때문에 너무 오랜 시간 타인의 잘잘못에 시간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문제를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20대 후반에 사회에 나와서 30대를 거치면서 모든 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고 무리한 선택으로 인해서 스스로가 힘들어질 때가 많았다.
어떤 때에는 너무 심한 시련에 심리적인 압박감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과정 속에서 차츰차츰 성장할 수 있었다.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보고 스스로가 판단하고 중심을 잡고 휘둘리지 않는 상태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말로는 쉽지 실천으로 옮기는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꽤 많은 시간이 걸렸고 다양한 어려움이 존재했고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고통의 시간이 반복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분명 한 단계 한 걸음 발전해 나갈 수 있었고 삶에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경험들이 쌓이게 되었다.
아직 인생에서 더 많은 시련이나 어려움이 오게 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예전보다 단단해졌고 다가오는 시련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분명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해 줄 것이고 더 많은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달을 보라고 하면 달을 보지 말고 달을 가리키는 자를 봐야 한다.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매우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신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서 24시간을 모두 보낸다면 그 안에서 다양한 성취를 할 수 있게 되고 새로운 계획도 세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만약 스스로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면 24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지치기만 하고 발전하는 것도 크게 없다.
나아가 그렇게 지난 시간은 나를 잃어버리는 시간이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의 삶을 누군가에 의해서 통제당하고 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런 경제적인 대가가 없는 일을 해보는 것이다.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한다면 너무 힘든 일이다.
이미 자신이 통제하는 시간이 줄어버린 상태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힘을 가지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무엇도 하기 쉽지 않은 상태에서 무기력한 몸을 이끌고 휴식만을 원하는 상태가 된다면 여유로운 시간은 단지 다시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시간을 위한 휴식 시간만이 되기 십상이다.
결국 스스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고 그런 시간을 늘려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가장 좋은 자세라고 생각한다.
달을 보라고 누군가에게 말을 듣기 전에 스스로 달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참고 도서 :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 류시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