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후 미국의 인플레이션 대응 정책

by Grandmer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이 겪었던 고인플레이션 시대(196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는 흔히 대인플레이션(The Great Inflation) 시기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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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 정부와 연준(Fed)이 시행했던 주요 대응 정책을 정리해 보자.


1. 닉슨 행정부: 임금 및 가격 통제 (1971년)


가장 파격적이었던 초기 대응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이었다.


90일간의 동결 :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90일 동안 모든 임금과 가격을 강제로 동결했다.


금 태환 정지 : 달러 가치를 금에 고정하던 브레튼우즈 체제를 끝내며 달러 가치를 하락시켰다.


결과 : 단기적으로는 물가가 잡히는 듯했으나, 통제를 풀자마자 억눌렸던 물가가 폭등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2. 포드 행정부: WIN 캠페인 (1974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Whip Inflation Now(지금 인플레이션을 물리치자)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민간 협력 강조 :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자는 일종의 대국민 운동이다.


결과 : 강제력이 없는 홍보 위주의 정책으로 인플레이션 억제에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3. 카터 행정부와 폴 볼커의 '충격 요법'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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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과 오일 쇼크가 겹치며 물가가 14%까지 치솟자, 지미 카터 대통령은 폴 볼커(Paul Volcker)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했다.


이것이 현대 경제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플레이션 파이터의 등장이다.


고금리 정책 : 볼커는 기준금리를 무려 2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초강수를 두었다.


통화량 제한 : 이자율뿐만 아니라 시중에 풀린 돈의 양(통화공급량) 자체를 엄격히 통제했다.


결과 : 단기적으로 경제는 불황과 실업난에 빠졌지만, 인플레이션 기세를 꺾는 데 성공했다.


4. 레이건 행정부: 공급 중시 경제학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은 볼커의 통화 긴축을 지지하는 한편, 재정 측면에서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감세와 규제 완화 : 기업 세금 깎아주고 규제를 풀어 생산성을 높임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려 했다.


정부 지출 삭감 : 복지 예산 등을 줄여 재정 적자를 관리하고자 했다.


단, 군비 지출 확대로 실제 적자는 늘어난 측면이 있다.


당시의 경험은 인플레이션 기대를 꺾으려면 중앙은행의 강력한 의지와 고통스러운 금리 인상이 필수적이다라는 현대 통화 정책의 핵심 교훈을 남겼다.


베트남 전쟁 이후의 고인플레이션과 이를 잡기 위한 폴 볼커의 고금리 충격(Volcker Shock)은 미국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그야말로 폭풍과 같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자산 시장이 겪은 변화를 핵심 지표와 함께 정리해 보자.


1. 주식 시장 : 잃어버린 10년과 고통스러운 체질 개선


1970년~1980년대 초반까지 미국 주식 시장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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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 수익률의 처참한 하락 : 지수 자체는 박스권에 갇혀 있었지만,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실질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주식은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써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저평가의 시대 (Low PER) : 금리가 치솟자 미래 현금 흐름의 가치가 급감했고,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은 바닥을 쳤다.


1970년대 후반 S&P 500의 평균 PER(주가수익비율)은 7~9배 수준까지 떨어졌다.


현재 20배 이상인 것과 비교하면 극도로 저평가된 상태였다.


볼커 쇼크 정점 (1980~1982년) : 기준금리가 20%에 육박하자 주식 시장은 단기적으로 급락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잡히기 시작한 1982년 8월 기점으로 역사적인 대세 상승장(Bull Market)이 시작되었다.


2. 부동산 시장: 거래 절벽과 모기지 금리의 공포


부동산 시장은 금리에 가장 민감한 만큼, 당시의 고금리는 주거용과 상업용 모두에 치명적이었다.


모기지 금리 18% 시대 : 1981년 미국의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는 평균 18.6%에 달했다.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수요자가 사라지면서 주택 거래량은 급감했다.


실물 자산 선호 (70년대) : 아이러니하게도 볼커 쇼크 이전인 70년대 중반까지는 물가가 오르면서 화폐 가치가 떨어지자, 사람들이 실물 자산인 부동산으로 몰려 집값이 완만하게 상승하기도 했다.


대출 부실화 : 금리가 급격히 오르자 변동금리 대출을 받았던 가계와 저축대부조합(S&L) 같은 금융기관들이 파산 위기에 몰렸다.


이는 훗날 80년대 후반 S&L (저축대부조합) 위기의 단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요약해 보면 인플레이션 기였던 70년대는 주식은 실질 가치 하락으로 횡보했고 부동산은 시물 자산 선호로 완만하게 상승했다.


하지만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테이플레이션이 오면서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증가되었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상승시켰고 볼커 쇼크가 80년대 시작되었고 주식은 단기에 급격히 폭락했고 저점을 형성했다.


부동산도 거래가 급감했고 압류가 증가했지만 인플레이션이 잡혔다.


인플레이션이 잡히면서 회복기를 거쳤고 금리는 낮아지고 주식은 역대급 강세장에 진입했고 부동산도 금리 인하와 함께 회복되었다.


당시 자산 시장이 바닥을 치고 반등했던 결정적인 신호는 인플레이션 수치가 꺾이는 것보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멈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였다.


1982년 여름, 볼커가 통화 긴축 완화를 시사하자마자 증시는 무섭게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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