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할아버지카페 딸 Dec 08. 2022

내 친구의 소개로 만난 남자  

마녀의 커피 한 잔 

내 친구 중 하나는  조금 특이한 습관이 있었어. 장래희망이 중매쟁이나 커플매니저도 아니면서 자신이 아는 사람들을 아무 데나 찍어 붙이는 데 일가견이 있었지. 말이 좀 심했다 싶긴 하지만, 정말 '찍어 붙인다'라고 표현하는 수 밖에는 없는 일들을 자주 저지르고 다녔어. DDM의 새벽 시장을 구경 갔다가 만난 매장 아가씨와 친구가 다니는 회사의 나이 많은 노총각 부장님을 이어주거나, 제주도 여행 때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할아버지와 동네 찜질방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이어 주기도 했어.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랄까? 


나 또한 친구를 비난할 것은 못 되는 것이. 그 애의 소개로 꽤 여러 번 남자를 만났어. 대략 4번쯤인 것 같아. 첫 번째인가, 두 번째는 서로 데면데면한 것이 아무런 느낌도 없이 이삼십 분 이야기만 나누다가 헤어졌어. 그나마 인상 깊은 기억이라면, 남자가 '급한 일이 있어서'라고 하며 먼저 일어났지. 그리고 또 다른 만남은, 나는 호감이 있었지만, 상대가 나를 별로 인 듯했고,  또 한 번은 그 반대였어. 그리고 그 사이에 한 번은 서로 마음이 맞아서 근 일 년 넘게 만남을 이어갔지. 그리고 이번이 다섯 번째 소개였어. 




남자는 친구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어. 남자의 가게는 버스 정류장에서 멀지 않았어. 근처에 노선이 짧은 경전철역도 하나 있어서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하루 종일 길에 다니는 사람이 많았어. 남자는 그곳에서 종업원 없이 혼자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어. 때문에 나를 만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외출을 할 수가 없다고 했지. 대신, 내가 시간을 내어 가게에 들르면 평소에는 마시지 못하는 특별한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했지. 나는 뻔하다고 생각했어. 남자는 여자 친구가 필요하다기보다 연애나 결혼을 빙자해서 가게에서 일을 할 노동력이 필요한 건지도 몰랐어. 내 주위에도 그런 친구나 언니들이 몇 있어서 잘 알았지. 사랑해서 결혼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돈벌이에 육아까지 전부 아내에게 떠 맡기고 자기들은 팔자 좋게 게임질이나 하는 것들. 맞벌이를 빙자해서 집사람은 가게나 사무실에 앉혀놓고 자기는 골프장에 사우나에 그러다 바람까지 피우는 것들! 그 남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마음에 끌리지도 않을뿐더러 목적이 다른데 있으니 시간이며 돈 쓰기가 아까운 거라고. 


그럼에도 내가 기꺼이 남자의 만남에 응했던 것은. 우리 회사 사무실에서 자리를 지키며 늙어가고 있는 선배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아서였어. 회사 이야기는 다음에 잘근잘근 씹어가며 풀어줄 테니 넘어가기로 하지. 그리고 한 가지 이유를 더 대라면. 남자가 나에게 대접한다는 커피였어. 나는 커피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지만, 그래도 비싸고 특별한 커피는 한잔에 오만 원도 넘고 십만 원도 넘는다는 이야기쯤은 잘 알고 있지. 영화 버킷 리스트에 나오는 잭 니콜슨 할아버지가 홀짝홀짝 마시는 코피루왁 같은 커피 말이야. 인스타에 올려서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을 만큼 앙증맞거나 예쁜 디저트나 음료도 아니고, 커피 한잔을 일부러 내 돈 내산 하며 오륙만 원씩 주고 마실 이유가 나에는 없었지. 그런 기회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찍어 붙이는 만남에 생겼는데 거절할 리가 없었지. 


커피 맛 괜찮아요? 


이 커피의 이름은 노르마예요. 

드루이드교의 여사제 이름이죠. 

세상 모든 여성의 아름다움을 모아서 만든 조각상의 이름이기도 해요. 

이 커피도 노르마처럼 세상의 모든 맛을 담아서 만든 커피예요.

덕분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평범한 커피가 되고 말았지만요. 


난, 지금껏 내가 마신 커피가 비싼 커피가 아니라, 그저 그런 평범한 커피라는 사실에 적잖이 실망하고 말았어. 하지만, 나는 그 노르마인지, 소화제인지 하는 커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 남자의 얼굴이 어느 순간 내 앞에 바싹 다가왔지. 얼굴과 함께 남자의 몸에 배어 있는 땀냄새와 커피 냄새가 내 코끝에 닿았어. 나도 모르게 가쁜 한숨이 입에서 흘러나왔지. 아직 겨울은 아니지만 쌀쌀한 날씨였어. 난방기도 켜지 않은 가게에서 나 혼자 더운 열감을 느꼈지. 나도 모르게 내 앞에 놓인 아직 식지 않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어. 이번에는 목구멍이 후끈거렸지. 삼킬 수도 없고, 벹을 수도 없는 이 난감함. 내가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남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었어. 남자의 오른쪽 얼굴에 작은 보조개가 파였어. 


아, 이건 반칙이잖아. 







        

작가의 이전글 모든 사건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