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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Aug 19. 2022

포인트 적립,그 별 것 아닌 시작과 어메,징한 수다.


대부분의 카페는 단골 고객 유치를 위해 포인트 적립 제도를 사용한다. 적정한 퍼센테이지나 포인트를 적립했다가 무료로 음료를 제공하기도 하고,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우리 할아버지카페도 나름, 그것도 이름 있는 카페인지라, 여러 궁리 끝에 지난 겨울 포인트제도를 도입했다.  물론, 신문물에 어두운 할아버지바리스타님과 할머니마담님은 포인트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크게 겁을 내셨다. 하지만, 차마 겁난다는 말은 못하고, '왜 쓸데도 없이 돈만 들여서는...' 대략 보름 정도 딸 사장을 볼 때마다 이죽대셨다. 게다가 딸사장이 없을 때는 포인트, 그런게 우리집에 있었느냐? 무심히 손님들을 대해서 원망이 자자했다. 심지어는 포인트를 적립해달라는 손님에게 우린 그런거 할 줄 몰라. 라고 대답을 하셔서, 밖에 나가 일을 보는 딸사장이 손님으로 부터 전화 항의를 듣는 일도 생겼다. 결국, 딸 사장이 (가게 있을 때는 별 일 아니지만), 자리를 비울 때는 손님의 영수증과 전화번호를 받아 놓았다 나중에 적립해주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뭐, 앞의 이야기로 보자면, 포인트 적립에 대한 사연이 그리 스펙타클 어메이징 할 것 까지야 없다. 점포와 고객의 결속력은 굳건하게 해주고, 가게를 자주 이용하는 손님에게 보다 많은 혜택을 주자는 데 무슨 큰 일이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점점 딸 사장이 생각하지 못한데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현금을 포인트처럼 적립하여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이름이 할아버지카페인지라, 우리가게에는 젊은 손님만큼이나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 손님들도 자주 드나드신다. 어르신들 뿐 아니라, 그 자제들도 가게에 무척 호의적이다. 그래서 자제분들 중에는 어르신들이 자주 가게에 들러 커피나 음료등을 드실 수 있도록 선금을 지급하는 일이 자주 있다. 보통은 십만원정도이고, 많을 때는 이삼십만원씩, 현금을 지불하시거나 통장이체를 해 준다. 그리고 이 큰 금액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나, 딸사장은 화 전화번호 앞으로 현금을 포인트로 적립을 해놓았다. 그리고 어르신이 사용하신 금액 만큼 포인트로 차감을 하는 것이다. 참, 내가 생각해도 잘했다 싶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웬걸. 어르신들이 가진 생각은 너 같은 애송이의 소견머리 쯤이야, 라고 치부할 만큼. 훨씬 신박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상식과 상상을 초월했다. 자제분들이 선금을 주고 적립해놓은 포인트가 실은 현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아신 몇몇 양반들께서 그간에 모아놓은 포인트를 일정부분 환불 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할아버지 바리스타께서 불을 지피셨다. 포인트를 현금으로 돌려달라는 어르신들과 안된다는 딸 사장 사이에서 어른들의 역성을 드신다던가, 딸 사장이 없는틈을 타서 정말 환불을 해준다던가. 상황은 그 쯤해서 멈추지 않았다. 어쩌다 적립금 환불에 성공하신 어르신이 또 다른 어르신을 모시고 우리가게에 와서 생떼를 쓰시는 지경에까지 이를렀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 바리스타는 언제나 딸 대신 어르신들의 편이었다. 그 이유는 역지사지, 어르신들의 사정은 어르신들이 더 잘 알아서랄까? 왜, 있잖아. 다 늙어서 주머니는 가볍고, 자식들 모르게 돈 쓸데는 있는데, 굳이 끄집어내서 털어놓기도 그렇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쩐지 내가 우이동 모든 어르신의 딸내미가 된 듯이 마음이 짠하고 슬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몇 번은 알면서도 모른 척 하기도 하고, 마지못해 자제분들 모르게 뒷돈(?) 거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웬걸. 실제로  어르신들이 우리 가게에서 우격다짐으로 빼앗다시피 환불해간 적립금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쓰였다. 그 포인트 아니, 현금이 어디서 쓰이는지 알 게 된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상에. 자식들 모르게 탁배기 한잔 하실 돈이 없어 카페에 적립된 돈을 가져가셨을 줄이야. 그것도 코 앞이라 할 수 있는 길건너 가게에서.

  

어르신들의 포인트 횡령(?) 문제가 어느정도 고개를 수그렸을 무렵. 


이번엔 과도한 포인트 사용이 문제였다. 우리집엔 현금을 포인트로 적립해서 쓰는 제도 말고, 고객이 구입한 음료 1잔당 1포인트를 지급하는 제도가 있다. 그리고 고객님은 적립된 포인트가 10포인트가 되면 아메리카노한잔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낯 모르는 손님이라면, 우리가게를 자주 찾아달라는 애정공세이기도 하고, 단골 손님이라면 늘 잊지 않고 찾아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그런데, 


아하!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할아버지카페를 매일도 아니고, 하루에 두 세번씩 들러주시는 열성에 공짜 따위 관심없다는 듯 묵묵히 포인트를 쌓아오시다, 어느 날엔가 지금껏 쌓아오신 노력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경우다. 단골 손님 포인트로  열잔 가깝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시고 단골손님의 적립 포인트로 대금을 지불하는 경우다. 아메리카노 10잔의 경우, 포인트로는 대략 100포인트 정도 되고, 판매가로는 30,000원이 된다. 우리집 하루 매출로 보자면, 그리 큰 타격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창 바쁜 시간에 '아메리카노 10잔'이 아무 댓가 없이 나가는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고객님께 적립해드리는 포인트를 아까워 한다던가, 처음부터 속내가 좁고 옹졸한 축에 드는 인물은 아니다. 아메리카노 한 두잔쯤 단골 손님에게 내어 드리는 게 무슨 큰 일이겠는가?  어쩌다 우리 가족의 친지들이 찾아와도 그 정도는 흔쾌히 내 줄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손님의 적립 포인트는 순전히 당신들이 우리가게를 찾아와준 정성과 노력의 산물이 아니던가? ....라고 생각했다가도 앞서의 경우를 마딱드리고 나면 고객님이 야속하다 못해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총이 간다. 사실은 때때로 말대답도 곱지 못할 때가 있다. 손님이 친하자고 하는 말에 네. 네.... 두어번 마지못해 대답을 하다가 못들은 척 해버린다. 아무리 모두에게 친절한 딸 사장이라도, 승질머리라는 것이 있다.   


동네주민들을 고객으로 하는 콧구멍만한 카페에 그다지 많은 규칙이나 금지사항을 정해 놓을 필요는 없다. 물론 카페도 여러사람들이 찾는 장소이다 보니, 지켜야 할 에티켓이나 규칙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문자로 찍어서 손님에게 강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평소 내 생각이다.  제일 좋은 것은 가게를 찾는 손님 스스로 에티켓을 지켜 주면 가장 좋고, 그게 어려울 때는 손님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가게 주인이 설명을 하면 된다. 집에서 입던 홈웨어 원피스에 슬리퍼 끌고 마실 나오는 카페가 딱딱하고 어려우면 누가 발길을 할까?  적어도 우리 가게 손님은 이런 가게 주인의 마음쯤은 알아주시고도 남는 양반들이다, 생각했던 것이 내 마음이었다. 하지만, 근래들어서 앞서와 같은 상황을 자주 마딱드리다 보니, 나 또한 가게 카운터에 손님들이 지켜야 할 사항들을 똑부러지게 조목조목 적어서 붙여놓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 


아, 이런 내 마음을 손님이 알까? ....


잠시 생각을 딴데 둔 탓에 손님이 마시는 커피에 커피분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손님이 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를 비운 후에 알았다. 게다가 그 손님이야 말로 얼마전 포인트로 아메리카노 10잔을 지불 하고 가신 손님이었다. 아무리 야속한 손님이라도 내가 잘못한 일은 잘못한 거다. 황급히 가게를 뛰쳐 나왔다. 저 멀리 멀어지는 손님을 나는 큰 소리로 불렀다. 


손님, 오늘 커피 잘못 나갔어요.  나중에 쿠키 서비스 해드릴께요. 죄송해요.  


그 소리에 손님이 멈칫 놀란듯 하시더니 되돌아 나를 보며 외쳤다. 


아, 깜박했다. 

오늘 포인트, 꼭 적립해두라구.

  

세상에. 손님은 포인트를 사랑하는걸까? 아니면 공짜가 좋으신걸까? 

내심 사나흘간 서운했던 마음이 피식 입으로 새어나오는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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