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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Aug 19. 2022

월급쟁이와 자영업자

나의 마지막 직장생활은 그다지 좋게 끝나지 못했다. 아직도 직장 선배들과는 종종 연락을 하며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실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때를 생각하면 고개가 절래절래 흔들어진다. 회사는 경영난으로 허덕였고, 그리 많지 않은 수의 직원들임에도 저마다 회사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공과를 따져보면, 누구하나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또 누구하나 꼭 잘못을 뒤집어 쓰고 지탄 받아야 할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서로를 헐뜯는 이야기들이 동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갔고, 나 또한 그와 같은 추태를 부린 것에서는 자유롭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감정의 골 또한 깊어졌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아주 접을 무렵에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월급쟁이 노릇은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었다. 그로부터 시간은 고작 5년쯤 흘렀을 뿐인데, 지금 생각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내 스스로에게 참, 발칙하게 느껴진다. 얼마나 지글지글하고 고약했으면 목에 칼이 들어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남의 집 밥은 안먹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러나 참, 희안한 것이 인생사다. 그 시절이 뭐가 그리 좋았다고. 상사는 하는 일마다 다그치고, 동료와 후배들은 모르는 사정에 치받기 일쑤였다. 그런 한 때가 문득 문득 그립고,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이기까지 한다. 우리 할아버지 카페는 대략 아침 8시쯤 문을 연다. 산에 올라가는 손님이나 근처 회사에 출근 하는 손님을 받기 위해서이다. 그 중에서도 회사에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말끔한 옷차림과 그들에게서 맡아지는 깨끗한 비누냄새, 향수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나도 지금 당장 회사에 출근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사실,  그와 같은 마음이 드는 데에는 자영업자 생활이 내가 생각했던만큼 만만하지 않아서기도 하다.  딱, 깨어놓고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내가 내 밥을 벌어먹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직장생활도 알고보면 내 몫의 일을 책임지고, 내 몫의 수당을 받는 일인데, 자영업자가 되어서 돈을 버는 것 하고는 많이 다르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적어도 내일이나, 다음달은 걱정하지 않았는데, 내가 사장님이 되고 부터는 내일이나 다음 달이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 되어야 한다. 결코 막연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고민과 걱정이 줄지를 않는다.  


몸도 힘에 부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게는 연중 무휴다. 물론, 집안에 큰 행사가 있거나, 가족 모두 맘먹고 여행을 가는 사나흘을 제외하고는 일년 내내 장사를 한다. 그런 이유로, 우리 가족은 남동생의 결혼식이 있는 날도 오전 장사를 했고, 설날이나 추석에도 제사를 지내고 나서는 가게에 나왔다. 그것도 대략 7시 삼사십분대에는 가게에 도착해야 8시에 문을 열 수 있다. 가게에 나와서 아무 일도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 가게에 나오자마자, 청소와 진열은 말할 것도 없다. 다음날 팔아야 할 커피를 미리 볶아놓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아이스커피에 들어가는 더치 원액도 대략 하루 걸러 한번씩은 내려야 한다. 원래는 우리카페의 상징인 할아버지바리스타님의 일이지만, 작년부터 몸이 안좋아지셔서 요즈음은 거의 내가 도맡다시피한다. 그래도 볶아진 커피의 검수는 아직도 할아버지가 하시니, 다행이다. 거기다 요즈음은 디저트용 케이크를 두종류나 직접 베이킹을 한다. 사실, 우리집이 연중 무휴인 것을 빼면 개인카페의 사정들은 대부분 비슷해서 그리 앓는 소리를 할 것도 못된다. 그럼에도 카페 주인이라고 하기에는 나날이 꼬질꼬질 해지는 내 행색을 보면, 내가 사서 왜 이고생을 할까? 나는 또 뭐란 말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앞서 이야기 한적이 있지만, 내가 기꺼이 자영업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니다. 나이에 밀려서, 그리고 굳이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일하기를 청할 만큼의 능력이 되지 않아서... 이유야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자영업자와 직장인의 길을 다시 선택해야 한다면, 기꺼이 자영업자가 되련다. 내가 직장인이었을 때에도 직장인의 삶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았지만, 자영업자가 되고서 배우는 삶의 태도 또한 그 나름대로 값진 것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내 삶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 되었다는 것이 자영업자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작년인가, 제작년말이던가. 아직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친구를 만났을 때다. 나이가 있으니, 그녀 또한 스스로의 직장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길면 오년 짧으면 삼년 정도를 예상하는 듯 했다. 그녀의 퇴사 후 계획은 무척이나 단순했다. 퇴사후, 자신을 받아줄 만한 직장에서 대략 삼사년정도를 더 일하고 난 뒤에는 시골로 내려가 정착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녀에게 뭔가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저 우리의 부모님, 혹은 그 이전 세대가 시골에 정착하여 살던 방식을 생각하는 그녀를 보고는 아연실색해지고 말았다. 좀 지나칠수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그녀가 마치 자신에게 남은 삶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보다 한 두살 많기는 했지만,  칠팔년 뒤에도 아직 한창 나이였다. 굳이 옛날보다 길어진 우리들의 평균 수명을 이야기할 것 까지는 없다. 우리 부모님이 젊었던 시절에는 쉰 혹은 마흔 후반 되기 전에 일을 그만 두는 것이 퍽 당연했지만, 요즈음은 나이에 맞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할 나이다. 심지어는 친구의 말대로 시골에 내려가 정착을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까지는 구체적인 삶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자녀가 있더라도 예전처럼 부모와 함께 살며 봉양을 하는 일 또한 요즈음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이쯤해서. 나 또한 부모님을 위해 효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노후준비가 잘 되어 있더라도 우리의 평균 수명이 길어진 만큼 우리는 그 이상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보기에 나의 친구는 안타깝지만, 그와 같은 생각을 눈꼽만큼도 하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어머 얘, 우리집 텃밭을 한달 동안 열심히 갈아도 동사무소에서 월급 안 줘.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튀어나오려던 그 핀잔을 주어 삼키느라 어찌나 애를 먹었던지. 그러고 보면 내가 자영업자로 돌아서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내 직업에는 정년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한달 벌이로 보자면. 흐흐 웃음이 나올만큼 한심하기는 하다. 현재는 그렇다. 현재로선 회사를 다닐 떄 벌던 것 보다야 많기는 하지만. 개업을 하고 일년 후쯤엔 정말 최저생계비를 간당간당 넘길 만큼 번 적도 있다. 일년 중에 서너달은 되었다. 거기다 조금 나아질 무렵엔 코로나 사태까지 맞았으니, 그 참담함은 말로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내가 들이는 시간적 노력이나 노동량을 생각하면 '내가 이러려고 커피 장사를 하나?'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서너번씩 들곤 한다. 그래도 내가 지나온 길을 되집어보면 점점 나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삶을 버텨내는 내성이 그만큼 강해지고, 어찌 보면 삶에 대한 자신감도 생긴 것 같다. 예전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지고 있던 삶의 자신감은 막연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직장을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도전하거나 시작하는 데 그리 용감하지 못했으니까. 설사, 뭔가를 어렵사리 새롭게 시작하더라도, 망하거나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이 늘 앞서 있었다. 직장인으로서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어려웠던 거다. 그러나 지금은. 


물론, 커피장사가 아닌 다른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면, 그간의 노력을 또다시 되풀이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역시, 존재하기는 할꺼다. 그러나 예전처럼 해보지 않고 걱정부터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내가 무엇을 하든, 나 스스로를 책임지고... 이건 너무 솔직히 문어적 표현이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나를 먹여 살리는 것은 나 자신이기에 예전보다는 훨씬 용감하게 세상을 대할 자신이 생겼다. 내 나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는 것은 매달 통장에 찍히는 급여와 수당이 아니라, 내 삶을 책임지고 살아내는 생활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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