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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Aug 19. 2022

잉걸불 사랑

브런치 하면 DAUM. 브런치를 애용하는 한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상도의가 있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되도록 DAUM 사전에 인용된 말을 사용하려고 노력 했으나, -정작 찾아보니- 정말 사전적인 정의만을 요약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네이버의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 말 풀이사전에 나온 내용을 인용한다.  


불잉걸, 또는 잉걸불.


요약 : 활짝 피어 이글이글한 숯불.


벌겋게 달아오른 숯불이나 장작개비의 불덩어리를 말한다. 숯이나 나무가 불에 탈 때 가장 높은 온도를 유지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불잉걸을 ‘잉걸불’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잉걸’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보다 훨씬 더 뜨거운 상태다. 뜨거움의 극치를 나타내는 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불잉걸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 말 풀이사전, 초판 1쇄 2004., 10쇄 2011., 박남일) 


우리 할아버지 카페에는 젊은연인들 보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 남녀 커플들이 자주 다녀가신다. 딱 꼬집어서 말할 순 없으나, 부부와 비슷한 반려 관계인 경우도 있고,  남사친 여사친 커플도 있다. 때로는 이제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서로 어색하면서도 애틋한 마음이 오가는 커플들도 있다. 또 가끔은 커플이 아닌 경우도 있다. 드라마의 한장면까지는 아니더라도 애정의 화살표가 돌고도는 삼각관계 연인들이 가게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젊은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이점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이런 관계가 아닐까 한다. 삼각이든, 사각이든, 아니면 그 이상이든. 서로가 정한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 한, 관계가 퍽 포용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이 사랑은 아닐지라도, 그대의 사랑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물론, 가끔은 모르는 내가 보더라도 척 보면 알아지는, 반갑지 않은 커플이나 관계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계는 보통의 되바라진 젊은 것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점잖고 순수하다. 


가게에 드나드는 어르신들의 개인사를 시시콜콜 늘어놓을 순 없지만. 아무개 선생은 부인과 헤어지고 꽤 오래도록 혼자였다.  또 아무개 여사 또한 혼자 된 지 오년정도 되었다, 는 사실을 동네사람 들 중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보면, 아하, 그양반들 나도 좀 알지,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 그다지 민망해하거나 겸연쩍어하지 않는다. 늘 정해진 시간이 되면 나란히 손을 잡고,  가벼운 산책로를 삼사십분쯤 오가다가 할아버지카페에 들른다. (아참, 요즈음은 함께 다니시는 아무개 여사님이 이웃카페의 붕어빵을 좋아하셔서 이웃카페로 향하는 일이 많다) 내가 알기로, 두 사람은  한 집에서 지낼 때도 있지만, 각자의 집에서 각자의 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함께 산책을 할 때도 있지만, 짧게는 사나흘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그 짧은 시간이 무엇이라고. 두 어른은 서로서로 함께 나누어 먹었으면 하는 반찬이나 간식을 할아버지카페에 맡겨두고 지난다.  이건 아무개 선생과 아무개 여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 중에는 여든을 훌쩍 넘겨 그 보다 더 많은 나이를 바라보는 어르신들도 있고, 또 이삼년 사이 우리가게에 발길이 잦아진 어르신들의 이야기도 있다. 


이들은 겉으로보면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참으로 한결같이 덤덤하고 무던한 사이처럼만 보인다. -남녀관계를 초월해서 서로가 서로를 이눔저눔 칭하는 사람 친구 사이가 아니더라도-동네 친구를 대하는 태도나 연인을 대하는 태도나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아닌게 아니라, 오래된 부부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면 오래된 친구사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긴 하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과 구분 되는 것이 있다면, 시쳇말로 '오가다 만난 남녀의 사이'치고는 그들 사이의 애정은 무척이나 꾸준하고 각별하다. 때로는 서로를 챙기는 것이 지고지순해서 '오가다 만난 사이'라는 표현이 함부로 하는 말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너랑나랑 마음이 맞지 않아 틀어지긴 했어도 사람들로 부터 상대의 소식은 꼬박꼬박 전해듣는다. 그러다 오만정이 진득하게 담긴 말한마디와 꼬깃한 지폐 몇장을 할아버지카페 앞에 턱, 하니 내놓는다. 심하게 앓았대. 밥맛 없을겨. 오면 쌍화차 한잔 달여줘. 솔직히 난 그와 비슷한 말씀을 다른 어르신으로부터 여러번 들었다. 쌍화차는 때때로 대추차, 유자차, 생강차로 바뀐다. 가끔은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은 어르신이 상대의 호의를 거절 할 때도 있다. 그 말씀을 전해드리면, 상대 어르신은 별 다른 감정의 동요없이 이렇게 대답한다. 마음 풀리면 먹으라고 해. 물론, 그렇게 맡긴 돈이 공돈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의 감정은 말로만 전해지지 않는다. 무뚝뚝하고 솜씨 없는 말투를 감싸고 있는 우악한 감정은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만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난, 사실. 어르신들의 그런 무뚝뚝하고 무덤덤한 관계에 대해 단순하게 생각했다. 젊은 시절의 열정이 식어버리고 나이 많은 어르신의 의리와 우정만 남은 사이쯤으로 얄팍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요즈음 얼마간의 일상을 지나며 내 마음의 넓이가 손톱 만큼이나마 넓어졌음을 발견한다. 


얼마전, 가게의 단골 손님인 K삼촌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모님 한분을 소개해드렸다. 당연히, K삼촌도 이모님도 혼자였다. 삼촌과 이모라고는 하지만, 두 어른 모두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 내 생각에는 그저 당신들에게 남은 여생 심심치 않게 보내시면 그만이었다. 잘 되면 백화점 상품권 하나쯤 건지겠지, 하는 얄팍한 속셈도 있었다. 운 좋게도 두 어르신은 한 눈에 서로 끌리는 듯 했다. 가족끼리 상견례를 하신다고 날짜를 잡고, 친지들도 소개했다. 그러다, 갑자기 두 분 사이는 무슨 이유에선가, 틀어지고 말았다. 없었던 일로 하자는 것이 두 어른의 공식적인 의사였다.  


그리고 어느날 저녁무렵 카페에 찾아온 K삼촌은 말 없이 눈물을 보였다. 그 다음엔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할머니 마담님께 전화를 했고, 그 다음에는 매일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하는 시간에 삼촌이 나타나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살아온 시간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길지만, 앞으로의 살 날은 젊은 사람들만큼 길지 않다. 지금껏 살아온 경험으로 앞으로 나에게 남은 시간을 가늠할 수록, 그렇게 삶이 아까울 수가 없다. 삶 또한 살아본 사람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삶은 나,라는 한사람이 사라지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나의 아들 딸, 혹은 손주와 손녀가 설령, 나를 문득 기억하는 어느 날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삶일까? 오직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삶만이 나의 삶일 것이다.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질 수록, 내 안의 삶에 대한 열정은 진하고 뜨거울 수 밖에 없다. 다만, 젊은 시절과 다른 것이 있다면, 숱한 경험 아래서 나에게 다가오는 바람이나 흔들림이 대수롭지 않을 뿐이다. 


밤새 탄 장작불이 겉으로는 허연 재만 남아서  불씨하나 드러나지 않아도, 

그 아래는 그 무엇보다 붉고 뜨거운 불씨가 잠자고 있다. 


어르신들의 사랑은 그런 잉걸불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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